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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하 Sep 07. 2022

프로필 없음

행복함을 찾는 첫 단계

마흔을 겨우 몇 달 앞둔 지금,

회사를 퇴사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

세 가지 중 언제나 할 수 있는 일 만을 선택하면서 살아온 서른아홉 해.

그중 처음 하고 싶은 일을 한 것이 퇴사다.

퇴사를 후회하지는 않지만 누군가 나에게

어떤 사람이세요? 무슨 일을 하세요?

라고 묻는 게 조금 두려워졌다.


프로필을 적으려고 보니 그간 내 행적엔 너무나도 별게 없다.

무언가 이뤄낸 것 없이 세월을 낭비하며 산 사람처럼

나를 소개할 무언가가 없어서 당황했다.

일단  직업이 없었다.

물론 이전 직업도 누군가에게 내세울만한 것이 아니었고 직업만으로도 내가 누군지 보여줄 수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오히려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버틴곳이지만) 그래도 회사원이었고 직장인이라는 범주에는 들어갔는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없어졌다.

또 특별한 경험이 없었다.

스물에 세계를 여행했다거나, 인생에 커다란 시련을 겪으며 삶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거나, 부당한 일을 크게 겪어 세상에 저항했다거나. 누군가에게 들려줄만한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특출 난 재능이 없다.

뭐든 필요한 만큼 하고 살았을 뿐인 건지 이거 하나는 내가 잘해, 좋아해 하는 것이 없다.

취미 하나 없는 가난한 삶을 살았구나를 보여줄 수는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언제나 열심히 바쁘게, 조금은 힘들게 살았는데 나를 소개하려니 적을 것이 없다.

프로필을 채울 것이 없더란 말이다.

-소개紹介
알고 있지 못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것을 설명하여 알려 줌.

누군가에게 이제 나를 어떻게 소개할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들이 알고 있지 못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것을 차근히 설명해 주겠다.

 나는 부모의 부재에도 그 흔한 가출한 번, 일탈 한번 없이 조용한 사춘기를 보냈고 재수 없이 때에 맞게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원에 들어갔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직장생활과 결혼생활을 했고 드디어 이제 조금 시간을 냈다고.

처음으로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나는 분명 매 순간순간 허투루 살지 않았다.

그 순간순간이 늘 고단했고 행복했다.

인생의 2막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는데 오랜 시간을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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