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오늘 하루, 나의 루틴.

병원에서 일하는 언어재활사의 하루.

by 김양희



8시가 조금 넘어 출근한다. 컴퓨터를 켜고 병원 가운으로 갈아입는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병원 내의 메신저를 연다. 병원 내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지 확인한다. 가끔 병원 서무과에서 처리해야 할 다급한 일이 있기도 하고, 주치의에게서 환자분의 경과를 묻는 쪽지를 받기도 한다.


오늘의 치료 스케줄을 정리하기 위하여 치료 프로그램을 연다. 대개는 일주일의 스케줄을 월요일 아침에 예약해 놓고. 매일매일 입원하시는 분들은 아침 일찍 통화를 하여 그분들의 스케줄을 잡는다. 다른 물리치료, 작업치료의 시간표를 보고 겹치지 않게, 나의 시간표와 그분의 시간표와 겹치지 않는 시간으로 배정해보고 병실로 전화를 한다. 보통 입원 당일에 환자분들은 기본적인 검사를 다니시기에 병실에 안 계시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 같이 생활하고 있는 보호자 분과 연락하는 일에 다소의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치료는 매일의 스케줄이 아니고 주 2회나 주 3회만 하기 때문에 시간표를 잘 배정해야 하기에 중요하다. 특히나 언어치료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분들도 있기에 빠르게 연락해 주어야 안심하신다. 또 물리치료나 작업치료와 맞물리게 되면 다른 시간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환자분도 바쁘고 나 또한 다른 분들의 시간표로 꽉 차 있는 상태라 시간표를 배정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지만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치료시간은 30분.

환자분들마다 모두 다른 단계에 있기 때문에 각기 다른 치료 프로그램을 준비한다. 종종 환자분들의 컨디션에 따라서 계획했던 프로그램의 내용의 변동은 있다. 치료 프로그램을 잘 준비하는 일, 치료 시간 내에 변수를 잘 조정하는 것도 치료사의 경험치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치료시간 30분, 소독시간 5분.

화장실 갈 틈도 없이 8시 30분부터 12시까지의 오전 시간이 흐른다.



점심식사.

점심식사 후 커피 마시는 힐링타임. 가볍게 걷거나 휴식을 취하여 오후를 맞이한다.


오후 1시 치료 시작.


오후 1시부터 4시까지의 시간이 휘리릭 지나간다. 가끔 환자분의 건강이나 외진으로 못 오시는 경우도 있고 스케줄을 잊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에는 병실에 전화해보기도, 보호자분에게 연락해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연락이 되지 않을 경우 환자분을 찾는 병원 내의 방송을 부탁하고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버린다.


이 병원에서는 오후 4시 30분부터 각종 컨퍼런스, 교육, 회의가 있어서 대략 4시 30분까지는 치료 업무는 종결한다. 다른 병원에서는 9시부터 6시까지 치료를 이어가는 곳도 많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10분일 수도 있지만, 보통 상담을 하느라 쉴 새가 없다고들 한다.



4시 30분까지 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대개 4시부터는 서류 업무를 한다. 4시부터 물 마실 틈도 없이 치료 내용을 작성하고, 내일의 치료 계획을 짜고 준비한다. 평가를 했을 경우에는 몇 일동안 틈틈이 이 시간들을 쪼개 평가서를 작성한다. 새로운 환자가 입원해서 초기 평가를 하게 되면, 환자를 만나기 전에 차트를 열어 환자의 상태를 기록하고 공부한다. 환자의 기본적인 정보부터, 병이 발생한 뇌의 영역은 어디인지, 발병일은 언제인지, 현재 인지적, 언어적인 능력은 어떠한 상태인지, 이전에 언어평가나 치료한 경험은 있는지. 의사가 기록한 차팅을 통해 최대한의 정보를 얻고 필요한 평가가 어떤 것인지를 판단하여 평가 준비를 한다. 중간 평가나 종결 평가를 하는 경우도 있고, 각 환자에게 맞는 평가 준비를 한다.


내 환자의 컨퍼런스가 있는 날은 회의실로 올라간다.

환자의 평가 내용을 미리 정리하고 치료 프로그램의 계획을 발표한다. 각 치료실에서 의사실에서 사회사업실과 간호사실에서 의견을 종합하여 논의한다.


업무시간의 끝에 언어치료실에서 매일 회의를 한다. 4명의 치료사가 각기의 치료실에서 치료가 이뤄지는데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들 중에 회의 내용이 있을 수 있다. 병원 내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 치료실 내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매일매일 발생한다. 서로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오해가 없고 병원 내에서의 일이 수월하게 진행된다. 사건은 객관적으로 묘사할수록 좋은 것 같다.


이외에 잡다한 여러 가지 일들은 비일관적으로 종종 일어난다. 교육을 듣거나, 서류를 제출하거나, 의무기록을 정정해야 한다거나, 물품을 신청하고, 치료실에 필요한 여러 물건들을 의견을 받아 취합하고 기안을 작성하고 결재를 맡아 물건들을 받아 와야 하고. 때마다 간호사나 지역사회 종사자들에게 언어치료와 관련된 대면/비대면 교육을 준비해서 강의하기도 하고. 때로는 국제 강의를 영어로 준비해서 발표를 하는 일도 있다. 병원 내에서 타 영역의 전문가들에게 언어치료와 관련된 강의를 준비해서 발표해야 할 때도 있다. 쉼 없이 흘러가는 치료 시간이 여유롭지 않은데, 가끔씩 이러한 일들이 있을 때에는 마음도 몸도 분주하다.






어느 날인가 아이가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직업탐구라는 숙제를 들고 왔었다.

엄마의 직업을 물으면서 어떤 점이 제일 힘든지 물었다. '엄마는... 응가하러 갈 시간이 없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참 우습게도 장트러블이 있는데, 유동적으로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화장실이 제일 문제일 때가 많다. 그래서 내 옆의 동료는 장기간의 지속적인 변비를 달고 살고 있고, 나는 반대로 민감성 장증후군이 생긴 듯도 하다. 옆의 동료는 성추행이나 언어폭력 등이 힘들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종종 겪는 일이기도 하다.



언제가 뿌듯하냐는 질문도 있었는데. 언어치료를 막 시작할 시점에 내 생각은 그랬다. 모든 치료를 종결하고 환자가 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좋은 성과를 냈을 때, 환자가 고마워할 때 뿌듯한 감정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부터는 뿌듯한 감정이 더 자주 이는 것 같다. 치료 30분을 잘 준비하고 치료가 끝나고 치료실을 나서는 환자분을 볼 때마다 뿌듯한 감정이 인다. 잘 준비해서 마쳤구나. 하는 감정들. 특히나 최신의 새로운 지견을 적용하여 계획한 치료들, 잘 작성된 논문을 읽은 후 적용한 치료를 마쳤을 때 뿌듯한 감정이 배가 된다. 하루에 만나는 환자분이 많아질수록 뿌듯함이 더 생긴다. 그럼에도 종종 의식하지는 못한다. 그만큼 치료에 집중하는 에너지가 크기에 피로감도 크다. 종종 모든 일과가 끝나는 하루의 끝에 등부터 뒷목까지 올라오는 통증과 피로감이 나를 압도할 때도 있다.





아, 이제 정리하고 아이들 보러 가야겠다.


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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