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다.

나의 감정과 욕구 알기

by 김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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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정신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아마도 더 일찍 찾아가는 게 맞았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육아하는 1년 동안 도움을 받을 곳이 없어 몸도 마음도 지쳐있던 나는 정말 힘들었었다. 잠이 없는 힘센 아들 녀석 덕분에 잠은커녕 밥을 먹을 시간도 없이 아기띠를 매고 아기를 안고 지냈었다. 이때 체중이 성인기 이후의 최저를 찍었었다. 여하튼 처음 정신과를 방문했을 때 상담도 하였고, 약 처방도 받았었다. 약은 극도의 각성 수준을 만들어 내 수면시간을 단축시키고 낮 동안에도 전혀 졸리지가 않았다. 밥 맛도 없어서 자동적으로 다이어트가 되었다. 잠이 부족하여 두통이 찾아왔다. 약이 잘 맞지 않아서 힘들었었다. 의사에게 들은 인상적인 말은 '님도 저도 30년 후에 벽에 똥칠하며 살 수 있으니, 지금을 즐기세요'라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었지만, 기분이 더 안 좋아졌었다.


언어치료를 받으러 오신 그 할아버님은 평생 외로우셨었던 것 같다. 언어치료는 일대일 치료로 거의 이루어지고 1평 남짓의 공간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눈맞춤을 하며 입모양을 보게 된다. 그런 치료 과정에서 그분의 어떠한 마음이 동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인가부터 불쑥 내 팔 안쪽을 만지고 손을 잡고 등을 쓰다듬는 행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더듬거리는 말로 "사랑하고 싶어"라고 하였다. 좁은 공간에서 일대일로 치료하는 공간에서 휠체어 없이 잘 걷고 잘 움직이는 이 분이 30분 동안 어떠한 돌발 행동을 해올까 겁이 났다. 치료가 끝나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날이 많아졌었다. 주변의 동료들에게 자세히 이야기하지 못했고 조금 불편하다 이야기하면 농담으로 듣고 '잘해주지 말아라'는 말이 돌아왔다. 갑갑했다. 그러다가 울음이 폭발했다. 그것도 모든 의료진이 모인 콘퍼런스 자리에서. 주체할 수 없이, 사적인 자리도 아닌 포멀한 공간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우울증이라고 생각하고 정신과를 찾았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심리상담사와 상담을 한 이후에 그것은 우울이 아니고, 나만 겪는 비밀스러운 일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성추행을 당하고 그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힘들어하고, 더불어 주변의 위로나 해결 방법도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나간 사건에 대해서 시정할 수도 없고, 아픈 그분을 찾아가 따질 일도 아니다. 그때의 나는 대처 방법을 몰랐고, 타인이 해결해 주기만을 바랬던 것 같다. 스스로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내가 정확하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상황만을 회피하려 했던 부끄러운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무서웠다. 싫었다. 치료 시간 동안 나의 임무를 성실히 하지 못하는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내 일을 통해 나의 효율성을 느끼고 자기 효능감을 높이고 싶었다. 환자분과 연결되는 느낌을 원했지만, 그보다 더 그분에게 배려받고 전문성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이제야 알게 된 나의 느낌과 욕구이다.


그 말을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할 것이 아니라, 분명한 어조로 나의 느낌과 욕구만을 이야기했어야 했다. 환자분이 잘 못 알아듣더라도, 그때의 분위기와 어조가 있으니까. 그때의 내가 전혀 말하지 않고 침묵했었다는 말은 아니다. 최선을 다해 설명하였지만, 친절하게 말하였었다. 보호자에게도 말했어야 했는데, 관계가 깨질까 봐 두려워서 말하지 못하였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 지레짐작을 한 것이었다. 동료나 상사에게도 단호하게 말했어야 했다. 내가 기대하는 대처가 오지 않더라도 말했어야 했다. 제대로 말하지 못하여 마음의 상처가 더 깊어지지 않도록. 관계가 나빠지지 않도록.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더 상황에 잘 대처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어떠한 기운이 있을 때,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지금의 나는 어떤 느낌인가?

무엇이 충족되지 못하여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가.

불안한가? 짜증이 나는가?


'왜'라는 판단을 하기에 앞서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

평화로움? 안전?

타인이 존중해 주기를 원하는가?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가?

누가 나를 위로해 줬으면 좋은가?



이러한 감정을 헤아리고 그 이후에 어떻게 하면 나아질지를 고민해 본다. 이렇게 해보려고 노력 중이다.

생각에서 머무르지 않고 끄적일 때 더 분명하게 나와 대화할 수 있다.


나는 어떤 느낌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렇게 나는,

내 안의 나를 더 들여다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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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나는 이 사건에 대해 스스로 해결하였다.

일단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이 사건이 왜 우울한지 왜 불안감을 주는지 생각해 보았다. 할아버님들의 행동들이 나를 두렵게 하였고 그 마음을 보듬어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 결정하였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사건은 그 하나의 사건일 뿐이지, 다른 것들과 연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앞선 할아버님의 사건 때문에 같은 연령대의 분들에게 같은 사건이 일어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 사건은 그 사건일 뿐. 그 시간은 흘러갔고 이제 나는 안전하다. 그것을 나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힘든 사건에 대해 마음으로 분석하는 것은 힘이 된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일은 의사를 찾아가는 것보다 백배이상의 효과를 주는 명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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