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해소하는 취미 찾기
심리치료사 선생님과 어머니 셋이 모여서 주 1회 자조모임을 하고 있다. 어제의 주제는 이별이었다. 한 분은 친한 지인을 하늘나라로 보내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선생님은 과거의 일들이 우울로 남아 있고, 미래의 불안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라고 하였다. 과거와 미래, 우울과 불안은 지금 현재의 것이 아님을 알고, 지금 밟고 있는 내 땅 위에서 명상하기를 추천하였다. 그리고 우울과 불안을 느끼는 사건에 대해, 느낌을 적어보고 그 느낌이 일어나게 된 나의 욕구가 무엇인가-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보라 하였다.
지난해에 나의 직장에 꽃밭 동호회가 생겼다. 장애인을 위한 운전연습장의 잔디밭을 꽃밭으로 만들자는 꽃 가꾸기 동호회였다. 마침 나는 야생화를 키우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차 있어서 텃밭이라도 빌려서 씨앗을 심을 참이었다. 기회는 이때구나 싶어 여러 해 다년생들과 1년생 야생화들을 심기 시작했다. 아마 2021년 5월부터였을 것이다. 잘 키워서 운전 연습하는 분들에게 꽃들을 보여주리라, 풍성해지면 환자분들에게 꽃을 선물할 일도 있겠지. 아주 큰 기대로 시작하게 되었다.
내 정원을 만들 땅을 분양받았다. 호미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땅이 척박하였다. 옆의 도로에 겨울철 미끄럼 방지용으로 뿌려놓았던 염화칼슘을 눈이 그친 후에 이곳에 치운 덕분에 모래로 뒤덮여 있는 땅은 유분기도 없었고 영양분도 없어 보였다. 개미가 많았는데 씨앗과 뿌리들을 개미가 다 먹는 모양이었다. 무언가를 심어도 자취를 감추는 밭이었다. 여러 꽃들을 심어 보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화원에서 모종을 사다가 심어 놓고 물을 줘도 며칠 내에 시들어 죽었다. 그나마 야생의 환경에서 잘 사는 백일홍, 천일홍, 국화, 장미들은 살아남았지만, 영양분이 없어서 꽃이 작고 꽃을 잘 피우지를 못했고 식물의 전체적인 키도 작았다. 땅을 갈아엎고 상토와 퇴비를 사다가 땅을 기름지게 만들었다. 여름휴가 기간 동안 물을 주러 다시 출근하는 날도 있었고, 출근해서는 식물의 상태를 살피러 아침, 점심, 저녁에 들렀다. 퇴근 후에 꽃밭에 들러 풀을 뽑고, 집에서 키운 모종을 심느라 1시간 정도 밭일을 하다 퇴근을 했다. 덩굴을 지으면 멋진 풍경을 만들어 줄 장미, 클레마티스들을 나름 거금을 들여 구해 심었는데 좀처럼 자라지 못하였고 더러 죽기도 하였다. 겨울 동안은 내년을 위하여 퇴비를 주고 간간히 물을 주고는 했다. 그렇게 1년 동안 실패가 경험으로 축적되었고 겨우내 모종을 만들어 다음 봄을 준비하였다. 1년 동안은 꽃밭이 아주 볼품없었다.
이듬해 신세계가 열렸다. 화단에 물 호스가 생긴 것이다. 수도꼭지와 연결된 호스는 수도꼭지를 열어두면 조금씩 물을 똑똑 떨어트렸다. 척박한 땅에 물을 공급해주니 땅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 2022년은 본격적으로 야생화를 심어야겠다 다짐을 했다. 올해의 목표는 겹 접시꽃, 겹루드베키아, 겹 백일홍, 겹 나팔꽃, 클레마티스, 장미 톱풀, 플록스, 다양한 장미들과 국화들, 머루포도 등등을 풍성하게 보는 것이었다. 점점 이곳은 나의 힐링 장소이자, 퇴사 방지 존이자, 나의 자식 같은 식물들을 키워나가는 곳이 되어갈 정도로 애착이 갔다. 점심마다, 저녁 퇴근 후 꽃밭에 들르고 변화 중인 꽃밭 사진을 찍고 뿌듯해했다. 이것 또한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었고 성취감이었다. 자식을 키우듯 식물을 가꾸고 잘 커준 것에 고마워하며 꽃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였다. '반려 식물'이라고 식물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반려 동물 못지않게 애착을 갖게 된다.
봄, 여름이 되면 꽃들의 잔치가 열린다. 너무 더운 여름에는 사람들이나 식물들이나 지친다. 그렇지만 야생화들은 참 꿋꿋하다. 기특하다.
장마가 끝난 후 꽃밭은 꽃보다 풀이 더 많아졌다. 내년에 정원은 야생화들이 알아서 꽃씨를 내어주고 자연스럽게 자라기를... 풀만 뽑아주고 정원의 조화를 보며 이후에 더 정비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풀이 너무 많아져서 주말에 꽃밭에 출근하여 풀을 뽑고 까만 비닐봉지에 잡풀들을 차곡차곡 담아서 버리려고 올려놨다. 풀이 무성해지면 지저분하고 깜장 비닐봉지가 올려져 있으니 그게 눈에 거슬렸다. 어디에 버려야 할지 몰라서 문의했고, 청소직원분께서 친절히 비닐봉지를 버려주신다고 해주셨다. 요청한 지 3일 차인데 오늘은 치워주셨으려나... 점심 식사를 하고 루틴처럼 커피를 한잔 들고 힐링 스폿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간 순간 나는 가슴에서 무언가가 쿵 내려앉은 것을 느꼈다.
처음 꽃밭을 분양받았을 때의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어제까지 꽃이 무성하였었는데!
내 꽃들은 다 어디로 갔지? 누가 다 베어버린 것이지? 헛웃음만 나왔다. 꽃밭 주변에는 꽃도, 식물도, 사람도 없었다. 내 안에 적막이 몇 분간 흘렀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