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해 나에게 말 걸기
점심시간이 아직 20여분이 남았다. 담당 직원은 자리에 없을 것이고 어떻게 된 상황인지 당장 물어볼 수가 없다. 처음에는 멍하기만 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여러 시끄러운 생각들이 스친다.
'내 꽃밭이 지저분해서 다 베어버리라는 상급자의 지시가 내려진 걸까?'
'쓰레기봉투를 치워달라는 것을 잘못 알아들었을까?'
'내가 뭐라고 말했었나?'
어제 심리치료사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과거의 일들에 매여 우울해 있고, 미래의 불안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라 했다. 과거와 미래, 우울과 불안은 지금 현재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지금 밟고 있는 내 땅 위에서... 명상하라.
지금 나의 마음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지금 내 느낌은?
황당함, 어이없고, 화가 난다. 베어 버릴 계획이었다면 일정 기간을 두고 고지해 주었으면 미리 식물들은 옮길 수 있었는데, 짜증이 난다. 내 정성과 시간이, 내 노력이 헛되이 된 것에 대해 안타깝다. 혼란스럽다. 아쉽다. 아깝다.
나의 지금 욕구는? 무엇을 바랐던가?
배려와 협력. 효율성. 식물들을 없애기 전에 미리 이야기해주었으면 좋았잖아.
내 식물들의 시간은 이미 지나갔고 아깝고 안타까워도 이제 되돌릴 수 없다.
나는 이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 부탁을 드렸던 관리 직원을 찾아갔다.
관리 직원이 청소 직원분께 어떻게 요청을 했는지 물었다. 지금 당황스러운 감정들을 말했고 내가 이 꽃밭에 대해 쏟은 정성에 대해 말했다. 청소 직원분이 어떻게 알아들으신 건지도 궁금해서 관리 직원과 청소 직원분이 직접 이야기해주었으면 했다.
몇 시간 후에 나는 청소 직원분과 전화 통화를 하였다. 모두 베어버리는 것을 포함한 청소로 알아들으셨다고 한다. 나름 열심히 정성을 쏟아 깨끗하게 청소하였는데, 이런 말을 듣게 되어서 당황했다고 한다.
나는 일단 상황을 알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 쓰레기의 위치를 물었다. 장미, 제라늄, 국화, 클레마티스 등등은 가지를 물이나 흙에 꽂아두면 뿌리가 나와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기에 아쉬웠다. 아직 쓰레기를 수거해가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위치를 알아내고 찾아서 갔으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
그날 동료들은 입을 모아 도와주겠다고 하였다. 관리 직원은 도울 일이 있으면 말하라고 선뜻 손을 내밀어 준다. 일단 이 봉지들 속에서 건질 것은 건져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 청소 직원분들이 몇 분 더 계시니, 이 쓰레기들을 그 옆에 공터에 엎어달라고 요청하였다. 내가 이 것들을 풀어헤칠 수 있는 시간이 점심시간에 한정되어 있고 자칫 주변이 지저분해질 수 있으므로 내 손밖의 일로 판단했다. 그 영역의 전문가인 분들에게 부탁을 드리고, 나는 점심시간에 가서 그것들 중 몇 가지라도 얻어야 할 것 같았다.
다음날, 이 가지들 중에 제라늄, 장미 몇 개의 가지들을 살려냈다. 쓰레기를 다 갖고 올라오시겠다고 하였는데, 살릴 만한 것들 몇 개 추려서 가져오셨다 한다. 3개의 봉지에서 뿌리째 딸려 나온 아이들은 밭에 조금 심었다. 삽목이 될 만한 것들은 물에, 흙에 꽂아주었다. 조금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이쯤에서 끝내기로 한다. 잘못 전달이 되어서 미안하게 되었다고 하신다. 되었다. 나는 사과를 들었고, 주변의 사람들의 에너지를 받았다. 모두 도와주려고 애썼고, 마음을 달래주려고 찾아왔다. 그래, 이만하면 잘 살았어.
이별의 마음을 쉽게 정리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가족이 떠났을 때, 연인이 떠났을 때, 사랑한 것들이 떠났을 때, 마음을 추스르고 다잡았다고 생각했어도 시간이 한참 지난 어느 시점에 그 감정들이 훅 올라온다. 나 또한 일 년 후쯤 새싹들이 올라올 즈음에 지금의 시점을 후회할 수 있다. 아, 국화 한 가지라도 살렸어야 했는데... 이런 마음이 들 수 있고, 지금은 내가 모르는 어떠한 감정이 올라올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지금의 최선은 지금의 감정과 내 안에서 올라오는 욕구를 파악하려고 노력했고,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이야기했다. 지금 나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과 위로를 받으며 헤어 나오려고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사람과의 이별은 아마도 이 과정보다 더 힘들 것이다. 경중을 따지자는 것보다는 지금 현실에서 나를 잘 알아차리고 그 상황을 흘려보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감정에 집중하였으면 좋겠다. 이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넘겨 버리면 그 감정들이 미래에 우울과 불안으로 밀려올 수가 있다. 몇 년 전에 다쳤던 꼬리뼈가 갑자기 아파져서 정형외과를 찾은 적이 있다. 몇 년 전에 이미 치료를 다 했다 생각했었는데 몇 년 후에 그 상처가 다시 통증을 일으켰다. 아마도 마음의 상처 또한 몇 년 후에 갑자기 훅 튀어나올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에서 나의 감정이 어떤지, 나에게 최선을 다해 말을 걸어보는 게 낫겠다.
지금 나는 일단 무기력하다. 어쩔 수 없다. 늘어져야겠다.
이 무기력을 며칠간은 좀 갖고 있다가 느낌을 글로 써보고 꽃들에게 애도를 표한 후 걸으련다. 내 몸속의 세로토닌을 많이 생성해 내서 활력을 되찾기 위해 걸으련다.
걷든, 수다를 떨든, 어떻게든 움직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