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살은 어디에나 있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 Chapter 1.
- 소 잃고 외양간 부수기
당장 생각나는 글을 적으려고 하니, 최근에 퇴사한 역마살 회사가 떠오른다. 아마 역술인이 보았다면 그곳을 이렇게 평했을 것이다. '지독한 마구니가 끼었구나'라고 말이다.
직원이 12명 정도인 아주 작은 규모의 회사였다. 내가 근무한 기간은 1년 2개월 정도이다. 그 기간 동안에 퇴사한 직원의 수가 대략 8명이 넘어가니, 옆자리 동료가 바뀌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소제목에 적은 것처럼 회사에 역마살이 끼다 보니, 직원들의 입퇴사 또한 굉장한 역마살의 기운이 가득했다
출입문에 소금을 뿌려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구니가 가득했던 것 같다. 서두에 적었어야 할 내용이 지금 기억이 났다. 퇴사한 그 회사는 토목 설계를 하는 회사였다. 작은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수익이 꽤 큰 편이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학생이든 사회인이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을 눈에 담게 될 때가 있다. 그중에 하나를 꺼내보려고 한다. 작은 질문으로 시작해보려고 한다.
첫 번째 질문 : 소를 잃었다면 당신을 외양간을 고칠 것인가?
질문만을 놓고 생각해 본다면, 외양간을 고치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만약 질문을 조금 바꾼다면 어떨까?
두 번째 질문 : 소를 잃었지만, 당장 나에게 손해가 없다면 외양간을 고칠 것인가?
두 번째의 상황이 된다면 고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나에게 당장의 피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당장이 아닐지라도 피해는 발생할 수 있다.
몸을 담고 있던 그곳의 상황 또한 두 번째 질문과 같았던 것 같다. 직원들이 나간다고 해도 나에게는 피해가 없으니, 회사에도 피해가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지 말았어야 했다. 망원경이든 현미경이든 깨어내서 최대한 들춰봤어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보려고 부단히 애를 썼어야 했다.
직원들이 끊임없이 나감에도 불구하고 꿈돌이 대표는 본인의 꿈을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성장 가능성이 큰 회사이다' '가까운 미래에 너희들 또한 한자리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는 꿈나무를 열심히 심어두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대표는 차라리 과수원을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꿈은 원대했으나, 그릇은 간장종지였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적은 것이다.
토목 설계에는 여러 분야가 있다. 나는 그 분야들 중에 구조라는 분야의 엔지니어이다. 엔지니어라는 직종 특성상 직원들이 성장하는 과정에 투입되는 시간이 너무나도 길고, 이러한 시간을 꿈돌이는 거부했다. 그 꿈돌이의 거부는 충성스러운 그의 신하들에게도 전해졌다.
나는 수차례 팀장에게 '직원들에게 트레이닝과 교육할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얘기를 했었다. 그 결과로 돌아온 피드백은 늘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라는 얘기였다. 그 결과로 본 설계에 투입시킬 수 있는 인원은 극소수였다. 절반 이상의 직원들이 하는 업무의 대부분이 엔지니어가 아니라 해도 할 수 있는 가벼운 업무였다.
그러다 보니 일을 진행시키는 극소수의 인력에게 업무가 집중되었고, 보다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 것은 내가 아닌 꿈돌이의 결론이다.
퇴사하기 한 달 전으로 되돌아가 보기로 한다.
드디어 꿈돌이가 중대한 결정은 내린 시점이다. 꿈돌이는 늘 인력이 부족함에 대한 큰 고충을 겪고 있었다.
그 고충에 대한 설루션으로 '회사 이전'이라는 놀라운 결정을 발표하였다. 이 발표는 공지 혹은 회의 형식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모든 직원을 한 명씩 회의실로 불렀고, 1:1로 마주 앉아 '회사 이전'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다. 이 발표가 놀라웠던 이유는 직원들의 통근거리에 대한 문제 때문이다. 대부분의 직원들의 통근시간이 왕복 시간으로 1시간 30분씩 늘어나게 되었다. 또 다른 문제는 직원들에게 전달한 '이전 날짜'에 관한 문제였다.
꿈돌이가 직원들에게 '회사 이전'을 전달한 날로부터 대략 한 달 후에 회사가 이전한다는 내용이 몹시 놀라웠다.
끊임없이 뽑아온 직원들을 계속해서 퇴사했고, 인력 충원의 고심 끝에 꿈돌이가 내린 결정은 '회사 이전'이다. 소를 끊임없이 잃었기에 차라리 소가 많은 곳으로 이사를 가자는 것이다. 거리상의 문제로 인해서 나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내가 입사했을 당시에도 회사는 다른 위치에서 이사를 온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또다시 이사라는 선택을 하는 '역마살 꿈돌이'였다.
회사는 끊임없이 소를 잃었고, 나는 외양간을 부수고 나왔다.
통근 상의 거리가 늘어남은 직원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이다. 한 달이 되지 않은 짧은 시간 안에 직원들에게 결정을 요구한 것은 왜일까? 생계라는 중요한 선택에 있어서 이직이라는 선택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세 번째 질문 : 나는 소인가? 외양간 주인인가?
상황에 따라 사람은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된다. 내가 맡고 있는 역할에 무엇인지, 그 역할 속에서 요구받는 것이 과연 타당하고 합당한 지에 대한 의문이 늘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