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멍 때리고 있었다

혼자서는 알 수 없는 일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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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증상은 겨울부터 이미 시작됐던 것 같다. 다만 혼자서는 인지할 수 없는 증상인지라 앞으로 내게 무슨 일이 닥쳐올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렇게 23살, 4학년이 시작되었다. 이맘때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많았다. 그 탓에 식욕도 뚝 떨어져 늘 밥을 깨작거리며 남기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친구들은 내게 기운이 없어 보인다며 걱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것이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좀처럼 우중충한 기운을 벗어던지지 못했다.


오전 강의 가 끝난 후 늘 그랬듯 우리는 가장 싸고 맛있는 중앙도서관 옆의 학생식당을 찾았다.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돈까스였을 것이다. 라면 다음으로 인기 있는 음식이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돈까스를 받아 자리를 찾아가던 도중 퓨즈가 나간 듯 갑자기 멈춰 섰다. 그건 내가 내 신체에 내린 명령이 아니었다. 눈을 감았다 뜨는 정도의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여전히 식판을 들고 서있었기에 그런 줄 알았다. 그때 어느새 내 앞에 선 친구가 말했다.


“계속 불렀는데 몰랐어?”


“뭐?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함께 있던 친구의 말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눈을 감았다 뜨기 전과 똑같은데, 친구가 나를 불렀다는 기억이 없었다. 급히 친구의 표정을 살폈지만 다행히 걱정의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의 말로는 대략 10초 정도를 멈춰 섰다고 했다. 세어 보니 꽤나 길다.


이때부터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음에도 애써 모른 척 넘겼다. 잠시 피곤했나 보다 하고 말이다. 이런 증상이 있는 병은 알지 못했거니와 심각한 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회피한 것이다. 하지만 발작은 강의를 듣는 도중에도 찾아왔고,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이따금 찾아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다 들켜버렸다. 이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었다.


내가 뭘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늘어나며 극도의 불안에 시름했다. 양쪽에서 두 가지 목소리가 튀어나와 싸웠다. ‘그럴 애들이 아니야!’라는 목소리와 ‘하지만 혹시 만약에라도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하고 말이다. 하지만 부질없는 고민이었다. 친구는 나도 흘리지 않고 있던 눈물을 대신 흘려줬고, 병원까지도 같이 가주겠다고 선뜻 이야기해 줬기 때문이다. 내가 아프고 이상해도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내게 용기를 줬다.


이제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인지하였으니 병원에 가야 하겠지만,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했다. 만약 큰 병에 걸리기라도 한 거라면? 덜컥 겁부터 났다. 게다가 이 사실을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는 지부터도 난관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아 이지경이 되었음에도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 어쩌면 고민 중독이었을지도 모른다.


스트레스 중 하나는 겨울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가 구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개강을 한 달 정도 앞두고서야 겨우 주말아르바이트로 빵집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더랬다. 일은 힘들었지만 용돈벌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기뻤다. 그리고 교내 도서관 아르바이트도 신청해 두었었는데 집에서 열심히 치킨을 뜯어먹던 중 문자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중앙도서관입니다. 교내부직자로 선발되었음을 알려드리오니 3월 2일 08:50~17:00에 도서관 1층 학술정보지원팀 사무실을 방문하시어 시간배정받고 근무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평일에는 도서관, 주말에는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공부했다. 주말아르바이트를 그만둘 법도 한데 두 개 다 한 것은 넉넉하지 않은 집안형편에 나라도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도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욕심의 부작용은 가혹했다. 일을 하는 도중 발작이 일어난 것이다. 내가 일하던 프랜차이즈 빵집에서는 빵을 굽는 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오븐을 사용한다. 일이 일어난 그날도 여느 때와 같았다, 발작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빵을 구워내고 트레이를 빼내기 위해 오븐을 열었을 때였다. 갑자기 매니저님이 나를 불렀고 나는 깜짝 놀라 어리바리하게 대답했다.


“네, 네?”


“힘들어 보이는데 앉아서 쉬고 있어요.”


매니저님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지친 것 같으니 쉬고 있으라며 나를 의자에 앉혔다. 힘든 티를 냈다는 것에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의자에 앉아 반성했다. 그때 매니저님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오븐 앞에서 멍 때리고 있길래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서 걱정했어요.”


그 말에 혹시 내가 다른 이상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까, 매니저님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시지는 않을까 마음 졸였지만 다행히 매니저님은 내게 쉬고 있으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 상황파악을 끝낸 나는 곧 다시 일어나 아무렇지 않은 척 일했다.


두 아르바이트 중 하나를 그만둬야 한다면 당연히 몸이 고된 주말 아르바이트였다. 도서관 아르바이트는 그나마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혼자 작업하는 일이 많아 사람을 상대하며 긴장할 일도 적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트에 실린 책들을 다시 자리에 찾아 꽂아두는 일은 나의 일상에서 몇 없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결국 빵집 사장님께 몸이 좋지 않아 더 이상 일하기 힘들 것 같다 말씀드리고 빵집을 나오게 되었다. 나의 퇴사 절차는 무척이나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사장님은 오래 일하겠다가 한 달 남짓밖에 일하지 않은 내게 눈치 주지 않고 오히려 아쉬워하고 진지하게 걱정해 주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좋은 분들과 일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의 큰 관문만이 남았다. 그건 바로 부모님께 말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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