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병에 걸려도 행복할 수 있을까

by 보보

2017년 기준 대한민국 뇌전증 환자 수 약 37만. 나는 그중 한 명이다. 한국에 뇌전증 환자가 그렇게 많은지 병에 걸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도 뇌전증이 흔한 병이라고 말하셨다. 모두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던 걸까? 뇌전증에 관한 것은 텔레비전에서도 책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2016년도에 처음 뇌전증을 진단받았다. 그래서 29살 현재 뇌전증 7년 차다. 카카오 브런치 자기소개에도 썼지만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기까지 7년이 걸렸다. 그전에는 내 이야기를 글로 써서 보여줄 것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길다고 한다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짧은 시간. 7년은 뇌전증을 안고 살아가며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두려움과 편견을 스스로 깨뜨린 의미 있는 나날이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수 있을까?

긴장해서 발작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직장에 들어가서 일할 수 있을까?

머리가 나빠지지는 않을까?


내 안에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직접 경험하고 부딪히며 그것들은 단지 내가 만들어낸 두려움일 뿐이란 걸 깨달았다. 긴장한다고 해서 다시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고 발표하는 것도 다른 사람과 같이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직장에서 평범하게 일했으며 머리는 오히려 지금이 더 좋아진 것 같다고 느낄 정도다. 걱정하던 것이 무색하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동안 내가 해온 모든 것들이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새의 몸짓이었던 것 같다.


위대한 인물들 중 알고 보면 뇌전증을 가지고 있던 이가 많다. 소크라테스, 도스토옙스키, 노벨, 알렉산더, 고흐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다. 게다가 오랜 옛날엔 뇌전증을 신의 축복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니 참 신기하다. 지금은 귀신 들렸다고 하는데 말이다. 둘 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차라리 전자가 낫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까 내 말은 뇌전증은 괴담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뇌전증은 존재해왔고 귀신 들려 사람을 해치는 일도 없다. 그리고 위인을 예로 들었다고 해서 천재라 오해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내가 7년 동안 그런 능력을 발견한 적이 없으니까. 일단 나는 아니다.


사실 뇌전증이 있다고 해서 크게 불편한 건 없다. 웬만하면 약으로 조절이 가능해 첫 발작 이후 또 발작을 할 가능성도 낮다. 뇌전증이라 불편함이란 사회생활과 사회적 시선 때문인 이유가 크다. 조절이 잘 되는 뇌전증이라도 사회에서 일이 불가능한 것으로 분류되고 병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불필요한 관심을 받기도 한다. 내가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것들이다. 그런 것들을 이 책에 담았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에 행복을 느끼는 나의 이야기들도 담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행복을 느낀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대하는 것, 내가 병에 걸리고 깨달은 것이다. 바보같이 하고 싶은 것을 미루고 행복을 미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금’이 중요한 것인데 말이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우선 현재에 충실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뇌전증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며 위로받듯 내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한 순간 들었던 생각이었지만 바로 글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쓰고 나니 오히려 나 자신이 위안을 받아버렸다. 참 감사한 일이다. 뇌전증뿐만 아니라 아프거나 지치고 행복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이 이야기의 끝에 자신만의 행복을 찾길 바란다.


인생이 180도 바뀌었다는 말을 성공의 표현으로 많이 사용하고들 한다. 왜냐면 지금의 나와 정반대여야 성공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180도 여야만 하는 걸까?"


비록 지금의 내 모습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좋은데 말이다. 그러니 완전히 변하지는 말고 45도 정도 바뀌었다고 하련다. 친구가 말하길 90도의 반은 애매한 느낌이라고 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작게 볼 수 있는 성장이더라도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만족하고 좋다고도 말했다. 이렇듯 우리는 꼭 180도 바뀌어야 성공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다. 45도의 삶도 꽤 괜찮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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