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 그게 뭔데?

변하지 않는 것

by 보보


집으로 돌아온 뒤 부모님을 찾았다. 그리고 드릴 말씀이 있다 하여 셋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긴장으로 손에서 땀이 계속 났던 것 같다.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지만, 내가 겪은 일들을 최대한 거르고 순화하여 담담히 말하려 노력했던 기억은 난다. 당연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의 표정은 매우 심각해졌다. 피곤해서, 그래서 잠깐 그런 것 일거라는 일말의 작은 희망을 가지고 우리는 동네에서 가장 큰 병원을 찾았다.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뇌 MRI와 뇌파검사라는 것을 받아보게 되었다. 알바로 번 돈이 고스란히 검사비로 나가게 되었지만 오히려 뿌듯했다. 부모님께 손 벌리기 죄송해서 알바를 한 것이기도 했으니까. MRI를 찍기 위해 차갑고 동그란 굴속으로 들어갔다. 머리맡에서 윙윙거리는 크고 낯선 기계소리에 오싹한 기분까지 들었다. 뇌파검사를 위해서는 수십 개의 전극을 머리와 얼굴에 붙였는데, 그 모습이 꼭 엑스맨 영화에서 나오는 뇌파 증폭 헬멧 같아 웃음이 났다. 머리에 줄줄이 전극을 붙이는 걸 언제 해보겠어?


뇌파검사 후 머리에 남은 젤을 닦으며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우리는 빨리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듣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기대와 달리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경한 단어였다.


“뇌전증입니다. 옛날에는 간질이라고 불렀었죠.”


뇌전증 그게 뭔데? 처음 들어보는 병명에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몰라 어떤 반응도 하지 못했다. 당황했던 것 같다. 그저 얼른 괜찮은 거라 말해주길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의 말로는 뇌전증은 유전되는 병도 아니거니와 나의 경우에는 약만으로도 완치 가능성이 높은 예후가 좋은 병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뇌전증은 치매, 뇌졸중과 함께 세계 3대 신경계 질환으로 국내에서도 치매, 뇌졸중 다음으로 많은 병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뇌전증을 가지고 있다는데, 나는 그 병을 이날 처음으로 제대로 알게 되었다.


뇌전증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나는 그중 측두엽 뇌전증이었으며 발작의 종류는 부분발작에 가까웠다. 발작에도 종류가 있어? 싶을 수 있는데 나의 경우 움직이다가도 동작을 멈추고 멍하게 어딘가를 응시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 등의 증상만 있었다. 발작이 심한 경우에는 완전히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만이 뇌전증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 어린아이 일 때 뇌전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만약 아이가 멍을 자주 때린다면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멍 때리는 게 진짜 멍 때리는 게 아닐 수 있다니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뇌전증을 직접 겪고 나니 새삼 뇌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직 인간의 뇌에 대해 우리는 모두 알지 못하지만 밝혀진 일부분만으로도 신기한 것들이 많다. 공포에 관여하는 건 ‘편도체’가 있고 또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에 따라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분도 저마다 다르다. 그만큼 뇌는 중요하고 신비로운 기관이다.


합병증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뇌전증 자체로만 본다면 그리 심각한 병은 아니다. 그렇지만 뇌전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은 정말 다양하다. 죽을지도 모르는 중증의 병이 아니니 평범하게 감기 같은 것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발작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위험하고 살아가는데 힘이 드는 심각한 병이라 보는 사람들도 있다. 안타깝게도 사회에는 후자의 인식이 절대적으로 강하다. 과거 ‘귀신병’이라 부르던 걸 생각하면 뇌전증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낮은지 말 다했지. 이 얼마나 무지하고 상처 주는 별명인가.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을 마치 귀신이 들린 것처럼 기괴하고 끔찍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뇌전증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병을 최대한 숨기고 드러내지 않아야만 했다. 아니, 숨겨야만 했다. 안타깝게도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뇌전증을 가진 사람을 만나지 못한 이유다.


그렇다면 내가 뇌전증에 걸리게 된 이유가 뭘까? 완벽한 정답은 없다. 보통 소아일 때, 외적인 뇌손상 혹은 엄청난 고열에 시달리는 등의 요인으로 생기거나 뇌출혈 등 다른 병과 함께 합병증으로 오거나 한다는데 그중 나에 해당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야기 끝에 의사가 내린 결론은 과도한 스트레스였다.


뇌전증 진단을 받고 몇 년이 지나 서울 신촌의 유명 대학병원에 갔었을 적의 일이다. 어머니는 유명 대학 의사 선생님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스트레스받으면 안 되죠? 애가 뭐든지 혼자 스스로 해결하려 하는 편이에요.”


그러자 의사 선생님이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보통 그런 사람들이 많이 와요.”


그 말은 그런 사람들은 병이 날 수밖에 없다는 말로도 들렸다. 나는 어릴 적부터 바쁜 부모님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것뿐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건 모두 혼자 하려 했다.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하는 것이 내게는 습관처럼 당연한 것이 되었고, 이제 해결할 수 없는 일조차도 끌어안고 고민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생각과 현실의 괴리에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했다.


이수은 작가님의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라는 책에서 말하기를 ‘감당하기 버거운 일이 닥쳤을 때 좌절에 압도당하면 사람은 무기력해지며 이것이 오래 지속되면 일상이 망가진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러한 무기력 상태가 계속되면 우울증이 될 수도 있다. 뇌파검사를 받을 때 심리 검사도 늘 같이 받았었는데 그 이유가 뇌전증을 가진 사람들은 우울증인 경우가 많아서였다. 우울증이 먼저인지 뇌전증이 먼저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어쨌든 극심한 스트레스가 지속되다 보면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게 정말 없는 이야기는 아닌가 보다. 본래도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는 말을 믿었지만 이제는 확신한다.


요즘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없다고는 하나, 그걸 당연시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종국에 큰 눈덩이가 되어 덮쳐올지 모른다. 나처럼 말이다. 그러니 힘들다고 느껴질 때면 가벼이 넘기지 말고 환기하고 케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힘들다는 걸 인정한다고 해서 나약한 것은 아니니 마음껏 스스로를 다독여주길 바란다. 완벽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단어일 뿐이다. 완벽을 쫓는 게 아닌 자신만의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면 된다.


나의 뇌 MRI에는 작은 특이점이 있었다. 아몬드 모양을 가진 편도체가 비정상적인 뇌파의 자극으로 인해 부풀어 오른 것이었다. 사람이 주먹으로 맞으면 붓듯이 편도체라는 것도 반복되는 자극으로 인해 부어오른 모양이었다. 다행히 이 경우는 꾸준히 약을 먹어 발작이 줄면 자연스레 좋아지는 부분으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나의 상태는 양호했다.


약도 처방받았겠다, 앞으로의 나는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음 마주하는 낯선 병이 무섭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집으로 돌아온 날 밤잠을 설쳐야 했다. 나중에는 기억도 나지 않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온갖 잡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찼다. 병으로 인해 내 삶이 변하는 것은 아닌지 불확실한 나의 미래가 무서웠다. 어느새 베개가 눈물로 축축하게 젖었다. 새벽 5시가 되어서야 겨우 기절하듯 잠들 수 있었다.


진단받은 첫 몇 달은 병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깨달은 것이 있다. 병이 있다고 해서 내 삶이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어느 날 문득 들여다봤을 때 점이 생겨나있는 것처럼, 뇌전증 또한 새로운 특성일 뿐 그걸로 나라는 사람 자체가 변하는 일은 없다.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우리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답을 내리기 힘든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가 있다. 나 또한 그러했으나 책 속에서 뜻밖의 우문현답을 만났다. 젊은 나이에 뛰어난 신경외과 의사로 교수 임용을 앞뒀던 저자 폴 칼라니티는 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쓴 책인 <숨결이 바람 될 때>에서 이 질문의 답을 ‘나라고 암에 걸리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라고 답했다. ‘이럴 수는 없어!’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다는 그의 답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의사로서 수많은 암환자들을 만난 그였기에 가능한 통찰이지 않았을까?


절망에 빠져 칭병하지 말고 긍정적인 태도로 있는 그대로 받아드려 보자. 그럼 생각보다 나는 크게 변한 게 없다는 걸 알게 될 것이고, 주저앉은 자리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다. 이미 아프거나 아플지 모를 그대들에게 당신은 변함없이 당신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소중한 한 사람이라는 가치가 병에 훼손되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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