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돌이켜보면 병원에서 근무하던 2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힘들기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즐거운 일이 더 많았던 건 모두 환자분들 덕분이었다. ‘아, 출근해야지’라고 힘겹게 몸을 일으켜 출근하면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버틸지 걱정부터 앞선다. 그래도 하나, 둘 사람들이 오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정신없이 일하기 바빴다.
내가 다니던 병원에서는 아침마다 커피머신으로 블랙커피를 내려뒀어야 했는데 진한 커피 향이 아침의 긴장을 풀어주어 좋았다. 병원에는 정말 다양한 환자분들이 찾아오시는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창 몰리는 시간대에 오신 한 아주머니가 대기하는 분들을 뒤로하고 다짜고짜 내게 접수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요? 급해서 그런데 먼저 해줘요!”
하지만 치료실은 이미 만석에 홀에는 일찍이 오신 분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렇기에 바로 치료해드릴 수 없었다. 나는 정중히 지금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드렸다.
“지금 치료실이 모두 차서 바로는 어려우세요. 그리고 먼저 기다리던 분들도 계시니 조금 기다리시면 차례 되셨을 때 바로 불러드릴게요.”
이렇게 설명드려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시는 분들은 계속 요구하시기도 한다. 속된 말로 진상이라고 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면 인류애가 박살 나기도 한다. 다행히 아주머니는 작은 실랑이 후 기다리기로 한 듯 자리에 앉았다. 조용히 자리에 앉는 아주머니를 보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래 지나지 않아 아주머니의 차례가 다가왔고 이름을 부르자 기다렸다는 듯 치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지나 치료를 마친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왔다. 그대로 지나칠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게 다가오시는 게 아닌가? 혹시 불편한 사항이 있어 따지려는 건 아닐까 걱정하던 차에 아주머니가 말했다.
“조금 전에는 미안해요.”
갑작스러운 사과에 당황한 난 ‘아녜요 괜찮아요!’라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그때 본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미안함이 담겨있었다. 지금까지 짜증내고 화내는 환자분들을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바로 말로써 사과하시는 분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기억에 남아있다.
사과라는 것이 별것 아니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의외로 듣기 힘든 말이기도 하다. 특히나 감정 기복이 심하고 다혈질의 사람이라면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같은 직장 동료 사이에서도 겉치레로 하거나 아예 하지 않기도 한다.
짜증과 화를 받아내는 일상에 무뎌진 내게 그 사과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조금 웃길지 모르지만 ‘사람이 사과를 할 수 있다니?’ 같은 생경한 느낌이었다.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사과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뉴스에서 범죄자, 정치인, 연예인 등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사과라며 고개 숙이는 모습을 비춰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경한 느낌을 받는 것은 진정성을 느낄 수 없는 사과를 봐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 번은 접수증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내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환자가 있었다. 모르고 그랬을 수 있다. 그게 필요하다고 말하자 그는 접수증을 버렸던 쓰레기통 앞으로 걸어가 멈춰 섰다. 그런데 아무런 제스처도 없이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할 뿐이 아닌가? 그러고는 다시 나에게로 와 말했다.
“그냥 해주면 안 되나? 커피랑 쓰레기들이 있어서 꺼내기 좀 그런데.”
결국 내가 쓰레기통을 뒤져 접수증을 찾아 꺼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멀뚱히 쓰레기통을 뒤지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딱히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이렇게 보면 처음에는 짜증을 냈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해 사과하던 아주머니가 훨씬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른다더니 평범하게 생기신 분들이 더할 때가 왕왕 있다.
흔히 ‘인류애가 박살 났다’라고 말하는 인류애는 사람으로 다시 솟아나기도 하더라. 한바탕 소란을 일으키고 나간 환자 탓에 울 것 만 같을 때였다. 치료받으러 오신 다른 환자분이 운동하다가도 내게 다가와 위로해주신 적이 있다. ‘누가 뭐라고 했어요? 나쁜 사람이구만!’이라며 대신 화내 주신 덕분에 다시 웃음을 되찾았었다.
자존감 지킴이처럼 ‘늘 상냥하게 웃는 선생님 보면 나도 기분이 좋다.’ 라거나 착하다, 예쁘다 말해주시는 어머니 환자분들 덕분에 2년이 넘는 병원 근무생활에도 영혼 없는 얼굴이 아닌 웃는 얼굴로 일할 수 있었다. 내가 받은 사랑과 감사한 마음을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대충 할 수가 없었다. 그분들은 내게 있어 단순히 환자가 아닌 어머니 같은 분들이었다.
병원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몸만큼 마음도 쇠약해진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은 좀 더 세심하게 챙겨드리고 따뜻한 말 한마디 더 해드리려고 노력한다. 특히 할머니 환자분들은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말을 달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다. 그럴 때면 난‘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자식 분들이 들으시면 슬퍼하실 거예요. 오래 사셔야죠!’라고 늘 말씀드린다. 우리 할머니가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신다면 정말 슬플 것 같아서 한 말이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두 손을 꼭 잡아드리고 싶다.
한 번 아프고 난 탓인지 부쩍 감사한 것들이 많아졌다. 친구, 가족들과 맛있는 걸 먹거나 별거 아닌 이야기에도 즐겁게 웃는 일상 속 작은 순간순간들에서 행복을 느낀다. 인생이 아름답다고 하는 이유도 그런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행복과 아름다움은 닮아있다. 그렇다 보니 부족하거나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충분히 ‘지금’을 즐기려고 한다. 물론 타인이 봤을 때는 ‘고작 그런 걸로 행복할 수 있다고?’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준이라는 건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자신의 행복은 자신의 손으로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