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서너 달에 한 번 있는 정기 진료가 다가오던 때였다. 병원에서 접수 일을 하고 있던 난 이 시기가 되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일하던 곳에서는 연차, 반차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만약 일이 생기면 그때그때 이야기하고 쉬는 게 다였다. 누구도 '연차 써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형 병원이 아니다 보니 직원 수가 적어 한 명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의 일을 나눠해야 했다. 그러니 누구든 하루라도 빠지면 눈치를 볼 수밖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병원 진료를 가지 않을 수는 없다. 먼저 원장님께 이야기하고 난 뒤 다른 분들에게도 병원에 다녀온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래? 그럼 가야지.”
원장님은 늘 흔쾌히 다녀오라고 말하셨지만 같이 일하는 직원들에게 말하는 것은 꽤 어렵다. 달에 한 번도 아닌 몇 달에 한 번 빠지는 것에도 사람들은 '또?'라는 반응이다. 평소에는 같이 먹을 것도 나눠 먹고 이야기하는 직장 동료 사이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예민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가 보다. 그러면 괜히 눈치가 보여 예쁘게 봐달라는 의미의 간식을 드리기도 했다. 왜 그렇게 까지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래도 계속 같이 일할 사람들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조금 지치기는 하지만 나름 순조로운 편이다. 병원 진료를 보러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할 가장 어려운 관문은 센터장님이었다. 모두 센터장님을 어려워 하지만 나는 해야 할 말은 하는 편이라 그를 피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나조차 정말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때가 있는데, 그게 연차 아닌 연차를 쓸 때였다.
똑똑똑-
센터장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 난 미리 연습했던 대로 병원 볼일이 있어 하루 쉬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나를 흘긋 쳐다본 그는 알겠다는 말과 함께 의외로 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다녀와서 결과 보고하세요."
결과 보고? 1년 넘도록 일하면서 해본 적 없는 것이었다. 그는 내가 쉴 때면 늘 집요하리만치 내 병명을 물어왔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궁금해서 물어보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난 직장에서 내 병을 오픈하고 싶지 않았기에 정기적으로 하는 검진이라 얼버무려왔고 이번에도 그러했다. 그런데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나 보다.
병원에 다녀온 다음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문을 벌컥 열고 나온 센터장님이 나를 불렀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여태 해온 것처럼 인사드리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의자에 앉기 전까지는 말이다.
"의자에 앉아요."
금방 말하고 나갈 생각이었던 난 조금 당황스러웠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쉰 일을 결과 보고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가 없음으로써 불편했을 수 있으니 가볍게 다녀온 보고를 했다. 하지만 그가 바란 건 그런 보고가 아니었다. 심문이 시작됐다.
"어디가 아픈 거예요?"
"예전에 몸이 안 좋았던 적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검사와 진료만 받습니다."
"병명이 뭡니까?"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냥 무슨 병인지 물어보는 것도 안 됩니까?"
"죄송합니다. 그건 개인적인 부분이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나를 내려다보던 눈빛이 점점 매섭게 변해갔다. 미간에 잔뜩 힘을 준 그가 말했다.
"어디가 그렇게 아파? 아프다고 쉬면서 주변에 민폐나 끼칠 거면 일하면 안 되지! 그럴 거면 일 그만두고 요양이나 해!"
쏟아지는 폭언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 만큼은 울고 싶지 않았다. 얕보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점점 높아지는 언성에 눈물이 터져버렸고 결국 뇌질환이라는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뇌전증이라는 것만은 끝내 밝히지 않았다. 부당함에 굴하지 않겠다는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나의 대답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그는 바짝 당겼던 상체를 다시 꼿꼿이 세웠다. 그러고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차분한 투로 설교를 이어갔다. 반박하고 싶은 것들 투성이였지만 '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제 이야기가 끝날지 모른다.
이제 막 배를 채운 듯 만족스러운 표정의 그를 뒤로하고 방을 나온 난 곧바로 탈의실로 달려갔다. 탈의실 구석의 벽을 마주 보고 앉아 입을 틀어막았다. 그제야 참았던 눈물들을 모두 쏟아냈다.
머릿속으로 만감이 교차하며 충격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했다. 상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개인적인 사항을 말하도록 강요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몇 번이고 대답하기를 거부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 강압적인 태도로 돌아왔다. 목소리가 크다고 이기는 건 아니지만 결국 나는 쓰라린 굴복의 치욕을 맛봤다.
이대로 내가 그만둔다면 정말 그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한 난 마음을 다잡고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몸을 움직였다. 그렇다고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그와 같은 공간 가까이 있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고 심장이 쿵쾅거렸다. 며칠은 손이 떨렸다.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될 때면 마주 보는 것조차 힘들어 눈이 아닌 미간이나 인중을 쳐다보며 대화해야 했다.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가 말했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라고. 누군가는 이 말을 육체가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할 수 있다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왜냐하면 이 명언은 사실 건강한 육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베날리스는 당시 사회를 풍자하는 시를 많이 쓰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원문의 맥락에서 보면 검투장의 검투사들과 시민들에게 건강한 몸을 가진 것 만큼이나 정신도 올바르고 건강하기를 바라며 한 말이었다. 하지만 주객전도 되어 본래의 의미와 전혀 다르게 알려진 것이다.
그러니 건강한 육체를 가졌다고 해서 정신까지 무조건 건강한 사람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육체보다 정신적 올바름이 먼저다. 폭언을 퍼부었던 그는 나보다 건강하지만 건강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병이 있음으로 인해 상처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병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분위기에 움츠러든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다. 그리고 완치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그럴 때도 완전한 건강을 최고의 가치라 여긴다면 누군가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건강 그 위에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러니 비록 육체가 건강하지 못하더라도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건강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겪었던 일들을 글의 형태로 옮기다 보면 당시의 감정이 울컥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럼에도 쓰는 건 아픔을 들쑤시며 자학하려는 것이 아니다. 도려내는 것이다. 그래야 새살이 돋아날 수 있으니까. 나를 옭아매던 고통과의 이별이며 시간의 파도에 흘려보내는 과정인 것이다.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에서 세실이 말한 것처럼, 다시 슬픔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슬픔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