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매력적인 포지션!

럭키슈퍼, 고선경 시인

by 시숨

럭키 슈퍼

고선경 시인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

전봇대 아래 버려진 홍시를 까마귀가 쪼아 먹네요


나는 럭키슈퍼 평상에 앉아 풍선껌을 씹으면서

나뭇가지에 맺힌 열매를 세어 보는데요

원래 낙과가 맛있습니다


사과 한 알에도 세계가 있겠지요

풍선껌을 세계만큼 크게 불어 봅니다

그러다 터지면 서둘러 입속에 훔쳐 넣습니다

세계의 단물이 거의 다 빠졌어요


슈퍼 사장님 딸은 중학교 동창이고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닙니다

대기업 맛은 저도 좀 아는데요

우리 집도 그 회사가 만든 감미료를 씁니다


대기업은 농담 맛을 좀 압니까?

농담은 슈퍼에서도 팔지 않습니다


여름이 다시 오면

자두를 먹고 자두 씨를 심을 거예요

나는 껍질째 삼키는 게 좋거든요

그래도 다 소화되거든요


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

맨발이면 어떻습니까?

매일 걷는 골목을 걸어도 여행자가 된 기분인데요

아차차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는데요


바람이 불고 머리위에 열매가 쏟아집니다

이게 다 씨앗에서 시작된 거란 말이죠


씹던 껌을 껌 종이로 감싸도 새것은 되지 않습니다


자판기 아래 동전처럼 납작해지겠지요


그렇다고

땅 파면 나오겠습니까?


나는 행운을 껍질째 가져다줍니다





아, 이 매력적인 포지션!


시적 화자는 럭키슈퍼 평상에 앉아 있습니다. 그곳은 번듯한 대형마트가 아니라 전봇대가 보이고 나뭇가지에 달린 홍시도 볼 수 있는, 일상이 숨 쉬는 공간입니다. 시에 담긴 포지션이 퍽 매력적입니다.


시 속에 대기업을 언급하면서도, 대기업을 부러워하거나 자기를 아래에 두기보다는 “대기업 맛은 저도 좀 아는데요.”라며 능청스럽게 이야기합니다. 평상에 앉아 풍선껌을 씹으며 버려진 홍시를 보고, 씨앗을 이야기합니다. 어딘가 어설프지만 자존심 있고, 모르는 것 같지만 꽤나 아는 이 포지션이 정이 갑니다.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

이 시가 건네는 농담을 들으며 뭔가 입에 걸리는 껍질의 불편함이 있지만, 그 속에 단물도 있고 씁씁한 삶의 맛도 담겨 있어 몇 번을 다시 들여다 봅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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