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시를 읽는데 숨가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폭포가 글이 되어 내리는 듯한, 강렬한 시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사실 폭포는 절벽에서 곧장 쏟아지는 물줄기일 뿐, 무서움을 느끼는 생명체가 아니다. 그런데도 ‘무서운 기색도 없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우리는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높이가 주는 공포감 때문이다. 그러나 폭포는 오로지 곧은 절벽을 따라 곧게 떨어질 뿐이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물결은 모양이 없다. 물방울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흔들림일 뿐, 그 형태조차 규정하기 어렵다. 그 미약한 존재들이 어떤 거창한 의미도, 소박한 목적도 부여받지 않은 채 그저 떨어진다.
고매하다는 것은 높고 뛰어남을 뜻한다.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의 기준을 지키는 태도이기도 하다. 폭포는 그저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변명도, 망설임도 없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사람은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다가도,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야 비로소 본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그러나 폭포는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에도 동일하게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보는 이가 있든 없든 변하지 않는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폭포를 묘사하는 데 화려한 수식은 없다. 곧은 소리는 그 자체로 소리다. 끊임없이 이어지며 다음 곧은 소리를 불러낸다. 낙하는 멈추지 않고, 소리는 계속해서 자신을 반복한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번개처럼 떨어지는 물방울은 잠깐의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나태와 안정은 폭포와 어울리지 않는다. 오직 날카로운 직선의 낙하만이 폭포를 설명할 수 있다.
김수영은 폭포만을 말하는 듯하지만, 어쩌면 끝내 인간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날카로운 직선으로 거리낌 없이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며, 우리는 곧은 소리가 아닌 휘어진 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두려워하고, 눈치를 보고, 나태해진 우리의 모습이 이 차가운 낙하 앞에서 조용히 드러난다.
폭포는 지금도 곧게 떨어지고 있다.
나는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