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적 기억은 대체로 뚜렷이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다. 에피소드가 하나씩 생각나고 가끔 어떤 상황이었는지가 생각날 뿐이다. 그리고 가끔 생각나는 건 내 마음과는 달리 다른 행동을 하는 내가 기억난다. 어린 아이라 그런지 사실은 이런 마음인데 이걸 몰라주면 아예 엇나가고 마는 성향이었나 보다.
유치원을 다녔음에도 유치원에서 일어난 일들은 단편적이고 한 장면처럼 기억이 난다. 흙 놀이터에서 놀았던 것, 재롱잔치에서 임산부 역할을 했던 것, 유치원 선생님을 따라 율동을 배웠던 것 등, 그중 단연코 기억이 또렷이 나는 건 바로 유치원 선생님의 세모입이다.
어린아이 눈에도 선생님은 젊은 선생님은 아니었다.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90년대생인 나의 시대를 고려해 요즘처럼 젊어 보이지 않는 걸 고려하면 아마 30대 중후반이시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나와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선생님은 노래를 가르쳐주시고 그와 맞는 율동을 알려주시는데 열심히셨다. 노래를 배우는 건 재밌었지만 그중 나에게 가장 큰 흥미는 노래를 부르실 때마다 거꾸로 된 세모가 되는 선생님 입을 구경하는 일이었다. 선생님은 칼 단발이셨고 딥한 립스틱을 진하게 바르시는 걸 좋아하셨다. 화장품은 잘 모르지만 버건디보다 진한 색감을 꽉 채워 바르셨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의 입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마치 입술만 공중에 떠있다고 생각될 만큼 나에겐 그 시간이 어느 시간보다 집중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항상 선생님을 따라 세모입을 따라 하려 노력했다ㅋㅋ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떤 노래를 가르쳐주셨는지는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아마 입을 따라 하느라 온 집중력이 다 그곳으로 모였는지도 모르겠다.
유치원에서 노래를 배운 날은 엄마한테 선생님 세모입을 따라 하며 보여줬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웃어주셨던 기억이 난다.
가끔 유치원 선생님의 세모입이 그립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그럴지도 모르겠다. 몇 장 남아있는 유치원 사진을 보지만, 노래를 부를 때만 나오는 세모입은 찾을 수 없고 칼단발과 진한 립스틱을 바르신 선생님만 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