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도 넘은 일이다. 가족끼리 지방의 한 작은 목욕탕을 가게 되었다.
여느날처럼 몸을 가볍게 씻어낸 뒤, 뜨끈한 물로 들어갔다.
목욕탕을 좋아하는 1인으로서,
가장 기대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날따라 목욕탕에는 그다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어른들은 모두 더 뜨거운 탕이나 사우나를 즐겼고,
나 혼자 너무 뜨겁지도 그렇다고 미지근하지도 않은
온도의 탕에 들어가 노곤함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한 할머니께서 탕에 먼저 들어가 계셨다.
할머니는 졸리신지 연신 꾸벅꾸벅 외줄타듯
탕속으로 고꾸라질 듯 다시 깨길 반복하셨다.
조금만 더 젊으신 분이었더라면 단잠을 깨우지 않았을 텐데,
나이도 지긋하시고, 혹시나 탕 속으로 빠지셔서
큰일이 날 것 같은 두려움이 일렁였다.
할머니딴에는 아직 정정하다 생각하실 수 있지만
그때의 어린 나에게는 할머니의 연세가 더 지긋하게 느껴졌으리라.
그런데, 탕 속에서 졸고계신 할머니께
할머니 위험하니 탕에서 나가는 게 좋겠다는 말이 절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괜한 오지랖기도 하고.
그렇다고 그냥 두기에는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어
결국 선택한 방법은
처음엔 에취.를 했는데
할머니께서 한치의 미동도 없이 계속 졸고계시지 않은가.
더 크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엣.취! 했더니 조금의 미동, 그러나 다시 조시길 반복했다.
부러 재채기 하지않는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잠깐의 쉼을 넣어 재채기를 다시 시작했다.
더 크게 해야지.하고
엣.취!!를 했더니 할머니가 잠에 깨셨는지 움직이시더니 다시 조시는 것..!
내 재채기가 더 커지고 있는걸 아무도 모르길 바랄 뿐이다ㅋㅋ
몇 번의 억지스러운 재채기 덕에
할머니는 아이구.하시면서 탕 속에서 나가셨다.
미션 컴플리트!
속으로 외치며 나 자신을 뿌듯해했다.
그런데, 왠지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정말 할머니께선 나가야겠다 생각하셔 탕을 나가신건지,
재채기가 거슬려 나가신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때의 나는 온전한 만족을 느끼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달라지나 보다.
어찌됐건, 난 잘한일이라 생각하련다.
그때의 나, 너무 귀엽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