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 쌩신입으로 취업하기
포트폴리오를 거짓말 조금 많이 보태 500번 정도 고치다 보니,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이력서를 써서 지원해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이력서에 바로 적기보다는 메모장을 펴 나는 그간 어떤 걸 해왔는지 나열해보았다.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나이 때부터 나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해왔다.
공장 생산직부터 이마트에서 베지밀을 팔기도, 학원과 과외를, 카페에서 레스토랑에서 편의점에서 등 이렇다 할 특별한 일은 하나 없지만 나름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어왔다. 그리고 중국에서의 1년 유학과 1년 반 정도의 호주 생활.
나름 쉰 적 없이 일을 하거나 경험을 쌓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써놓고 보니 사회에서 원하는 종류의 경험은 하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대게 사회에서 원하는 이야기는 이런 경험을 통해 내가 어떤 성장을 이루었는지가 중요하지, 쉴 새 없이 경험만 쌓은 이력은 중요치 않아 보였다. 또, 이력서에 아르바이트 경력만 내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합격을 부른 자기소개서는 대게 이런 식이 었다. 카페에서 일을 하더라도 나의 아이디어로 매출이 몇% 올랐다던지, 내가 그곳에서 일하면서 주도적으로 어떤 성장을 이루었는지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자기소개서를 보아하니, 대체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매출을 수치로 따질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역시 취업선에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보았을 자소설을 쓴 것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내가 그간 쌓아온 경험은 그저 돈벌이 수단이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그야말로 알맹이 없는 텅 빈 이력서가 되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렇게 살아온 과거를 다시 바꿀 수도 없는 일이었다. 차근차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게 바로 자기소개서 아니더냐~
생각해보니, 21살 때 일했던 레스토랑은 사장님 역시 처음 창업한 가게라 아르바이트생에게 여러 기회를 주셨다. 화장실 가는 길을 꾸며본다던지 메뉴판을 손수 적어본다던지 너무 추워 길거리에 사람도 없을 시기에는 전단지를 돌리러 나가 본다 던 지 등 매출을 올리기 위한 일에 많은 일을 가담했다는 걸 찾아냈다.
호주 워홀 시절에는 다른 가게보다 잘 안 되는 카페에서 일하면서 매출을 올리기 위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보기도 했다. 메뉴가 더 잘 보이게 한다던지, 플레이팅을 더 예쁘게 한다던지. 물론 이 행위들이 가게 매출에 얼마큼 도움을 준지는 잘 모른다. 사장이 네가 있어서 우리 가게 매출이 올랐어! 정도가 되려면 눈에 띄게 액션을 취하지 않는 이상 어렵다고 생각한다. (고로 인터넷에 떠도는 20%의 매출을 올렸다와 같은 소리는 난 그리 믿지는 않는다.)
어쨌든 생각해보니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매출을 오르기를 바랐었지 아무 생각이 없지는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순수한 마음은 아니었다. 매출이 오르면 아르바이트생에게 콩고물이라도 하나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 조금, 한가한 것보다는 바쁜 편이 시간이 잘 가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들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나는 적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자소설을.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 회사생활은 딱 4개월이었다. 내 나이를 생각하면(나이를 들먹이긴 싫지만) 턱없이 부족한 경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마저도 나는 쥐어짜서 이력서를 완성시켜야 했다. 그렇게 싫어서 그만둔 회사였지만, 짧고 굵게 배운 것도 한 몫했다. 일 량이 엄청났던 곳, 그리고 직접 마케팅을 해 영업해야 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다양한 소통을 해보았던 경험이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약삭빠른 사람인지, 간사한 사람인지 깨달았다.
전 직장에 치를 떨었던 사람이 이력서 앞에서는 작지만 너무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그렇게 내 대단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는 탄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