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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 Jul 02. 2024

1. 수영장에 수건 없이 갔다면

1일 1 유쾌 찾기

나는 매주 월, 수, 금 새벽 수영을 다닌다. 

다닌 지도 어언, 5개월 차가 되었다. 

연달아 5개월을 다닌건 아니지만 나도 어엿한 중급자가 된 것이다.


이젠 새벽수영을 가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날씨가 여름을 향해 가면서 밝아진 탓이다.


수영 가는 날 아침엔 일어나자마자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양치만 하고 전날 준비해 둔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그나마 수세권인 나는 도보 10분이면 도착하는 곳에 수영장이 있다.

얼마나 러키비키인지!


내 수영장 루틴은 가기 전과 후로 나뉘는데,

1. 전날 밤에 챙겨둔 수영가방 그대로 가지고 집을 나선다.

2. 수영을 다녀온 후 바로 수영모, 수영복, 샤워타월은 물기가 있어 건조대에 말려둔다.

3. 밤에 다 마른 수영준비물들을 가방에 마구잡이로 넣어둔다.


이렇게 1>2>3번 순으로 반복된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한 번도 수영장 갈 준비물을 놓고 간 적은 없었는데,

수영수건이 습식타월이라 빨 일이 많지 않아

주말에 세탁기에 넣어두곤 새 수건을 챙기지 않아 발생한 일이었다.


수영강습이 끝나고 샤워가 끝날 때까지 모르다,

몸을 닦으려는데 그제야 아차! 싶었다.

'아! 수건 안 가져왔다!'


감사일기를 오래 써서 그런지,

이런 순간에도 짜증보단 

다행히 강습시간보다 좀 일찍 나와 사람이 많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를

생각했고, 그다음엔 여름이라 감사합니다!

빨리 마르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수건이 없어 물기를 어떻게 말리느냐가 관건이었다.


나는 맨손으로 몸에 맺혀있는 물방울을 쓸어 공중에 털어재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뚱이를 힘껏 공중에 띄워 내 기준에 최대한 물기를 털어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ㅋㅋ


한 다리씩 바닥을 향해 쿵!

두 다리 모두 바닥을 향해 콩콩 뛰기도

팔을 풍차돌리기마냥 마구 돌리기도 했다.


혼자 고군분투 하는 모습이 웃겨서

혼자 웃음이 터졌다. 아무도 없어 다행이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보았다면 나사하나 빠졌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몸은 선풍기바람이며 사우나의 도움을 좀 받았는데

긴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당장 말릴 방도가 없었다.

등뒤로 주르륵 떨어지고 기껏 말려놓은 몸뚱이 위로 물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휴지로 머리를 닦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최대한 머리끄덩이를 한데 뭉쳐서 쥐어짜기 시작했다.

누가 보았다면 본인 머리를 뭐 저렇게 가혹하게 구나 싶을지도 모르겠다.


아픔보단 이 물기를 최대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는 만들어야 했다.

머리숱이 많아 여러 갈래로 나누어서 짜보기도,

묶음을 한 손에 쥐어 비틀어 짜면서

조금씩 물기가 잦아들었다.


휴.


그리곤 옷을 재빨리 입었다. 

드라이기로 여기저기 말려보지만

평소보단 오래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좀 지나니 수건이 없던 사람 같지는 않을 정도로

말끔히 마른 모습으로 수영장을 나섰다.


재밌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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