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선택권이 없다. 두 남녀가 섹스를 한 결과 랜덤하게 태어나는 것이 인간이다. 생명의 시작에 선택권이 없다면 그 종결에 자살이라는 참혹한 과정이 아닌 자연스런 선택권이 있어야 공평한 것이 아닌가? 생을 종결짓는 유일한 방법이라곤 신께 죽여달라고 비는 것 외엔 별 방법이 없다. 이 불공평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게다가 그렇게 랜덤하게 시작한 인생마저 다 평등하지가 않다. 재벌 2세로 태어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도대체 인생이란걸 신이 부여한 것이라면 신은 공평한가? 그런 신께 생을 감사할 수 있을까? 이런 생의 불공평함에 대한 질문에 대해 보통 종교 등에서 제시하는 답은 사후 보상이다. 그래서 살아서 신을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 영생복락을 누린다거나, 성서에는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통해 살아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의 운명이 사후에 역전된다는 등의 희망을 제시하곤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 항상 중요한 것은 현재이다. 믿거나 말거나 식의 미래에 대한 약속이 과연 이 삶의 불평등에 대해 명쾌한 답을 줄 수 있는가?
나는 홀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다. 가난했다. 월 생활비 30만원 정도로 한달을 살아갔다. 어릴 적에는 별 불평이 없었다. 어릴 적에야 다 그렇지만 입에 밥 들어가고 엄마만 있으면 별 불평이 없다. 나 또한 그랬다. 항상 내 손을 잡아주는 엄마가 세끼 밥을 먹여 주니 부족한 게 없었다. 물론 친구들이 갖고 있는 고가의 장난감이나 비싼 만화잡지 같은 것이 내게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난 그런 건 당연히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없는게 당연하니 불평할 일도 없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지나면서 물가는 오르고 소득은 점점 줄어들고 엄마는 점점 더 힘든 노동을 해야만 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내 도시락 반찬이 다른 애들에 비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가난한 청소년기를 뚫고 지나갈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가 공부하는 것 뿐이었다. 공부는 썩 잘하는 나 였기에 우리 집의 모든 희망은 나에게 쏠렸다. 재수를 하긴 했지만 의대를 진학한 나는 이제 우리의 이 모든 가난을 역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내가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의사가 되었다. 정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거의 망가져 가던 냉장고도 최신형 two-door 냉장고로 바뀌었고 예전엔 꿈도 꾸지 못하던 자가용이란 것도 생겼다. 이웃에 엄마와 친하던 아줌마들 까지 시기질투를 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나는 수련을 받아야 했다. 수련을 받기 전에 돈 맛을 본 나는 수련에 적응이 안됐다. 결국 수련을 포기하고 계속 야간당직 등을 하며 돈을 벌기로 했다. 그런데, 돈이란 것이 참 간사한 것이 나 뿐만 아니라 엄마까지 그 간의 가난을 보상받고 싶어했다. 그래서 엄마와 나 사이에 묘한 긴장이 생겨났고 내가 버는 돈은 조금도 모이질 않았다. 돈을 벌어 모아 미래를 계획하려던 내 목적은 무참히 깨어졌다. 엄마의 씀씀이는 거의 밑빠진 독에 물붓기 였다. 버는 족족 써버리는 것을 넘어 마이나스 통장까지 만들어도 그 씀씀이를 다 메꾸지 못했다. 그러던 중 결혼을 하게 됐는데, 결혼을 다그치던 엄마 마저 그 결과가 어떨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 이상 엄마는 전처럼 돈을 쓰지 못하게 됐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자녀가 생긴 내가 더 이상 엄마의 씀씀이를 두고 볼 수 없었다. 몇 차례의 갈등 후 엄마는 더 이상 내 돈을 예전처럼 쓰지 않게 되었고 비로소 내 경제 생활에도 안정이 찾아왔다. 가계를 아내가 관리하게 되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소비로 인해 부자로 살지는 못한다. 겨우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을 정도이고, 간신히 아이들 키우며 밥 먹고 사는 정도이다. 중산층도 아닌 중하층 정도랄까.
죽을 고생을 하며 살아왔다. 뭐,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고생고생을 하며 겨우겨우 살아왔다. 결코 평등하다고 볼 수 없는 인생이다. 금수저 물고 태어 난 집 애들은 나보다 한참 공부를 못해도 지금 나보다 100배는 더 잘 살고 있다. 이런 것들이 과연 사후에 평등하게 조정될 것인가? 나보다 더 고생하고 더 불평등하게 살아온 사람들 또한 사후에 그 모든 것이 보상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