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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개와의 동거

by Zarephath

눈빛도 흐리멍텅할 때, 그 흐리멍텅한 눈으로 꼼지락거릴때 직접 이웃 집에 가서 간택해 왔다, 우리 강아지. 인간도 애기 때 기억이 전혀 없는데 개는 애기 때 기억이 없는게 당연한다. 그러니, 이 강아지는 지가 개인 줄을 모른다. 아마도 지가 크면 인간이 될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조금 컸을 때 데리고 산책이란 걸 해 볼려고 데리고 나갔다. 데리고 나가 땅에 놓았더니 이게 휙 하고 내빼는 것이다. 겨우 쫓아가 버릇을 들이겠다고 엉덩이를 몇 번 때렸더니, 사람을 빤히 쳐다 보더니 본격적으로 내빼기 시작했다. 논두렁을 건너 산비탈을 올라 뛰기 시작하는데 도저히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겨우 쫓다가 산비탈을 내려오는 이 놈을 겨우 잡았다. 숨이 차서 견딜 수가 없는데 이 놈은 계속 버둥거렸다 하도 열이 받아서 땅에다 휙 던져버렸다. 그 다음날 가 보니 좋다고 꼬리 흔들며 날 맞이하고 있었다.

못생긴 전형적인 시골 바둑이인 이 놈 이름을 또롱이라고 지었다. 나름 자아가 있다고 지 이름 부르면 어찌나 신나게 반응하는지 모른다. 어느날 또롱이랑 산책을 하는데 어떤 허연 짐승이 휙 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이 놈 또롱이가 정신을 못차리는데 헐떡거리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 허연 짐승이 몇번 더 나타났는데 알고 보니 유기견 이었다. 아주 예쁘게 생긴 하얀 잡종 강아지였다. 그런데 들춰보니 암캐였다. 여차하면 데려다 키울 생각이었는데 암캐라서 안될 일이었다. 하루를 데려다 있어봤는데 암캐가 뿜어대는 호르몬 때문에 이 놈 또롱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 도저히 키울 수가 없어 쫓아 내기로 하고 쫓아 냈는데, 이 암캐가 또 웃긴 놈인게 안 가는 것이다. 우리집 주변에 누워 뻗어 있다가 어슬렁거리다가, 아주 지가 우리집 개나 된 것처럼 행동했다. 결론은 둘 중 하나를 중성화 시켜 키우는 것이었다. 비용을 동물 복지재단에서 부담하고 중성화 수술을 해주는 제도가 있어서 거기 의뢰했는데, 여성 생식기의 부속기는 늙으면 질병의 원인만 되기 때문에 암캐를 중성화 시키라고 했다. 수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암캐를 중성화시키기로 했다. 이제 우리 식구가 될 거라서 이름도 지어 주었다. 또실이라고 지었다. 또실이를 수술하고 우리 집에 데려 와 병간호를 했다. 여성 호르몬이 이전처럼 나오질 않아서 인지 예전처럼 헐떡거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또실이가 오기 전에는 또롱이를 그냥 집 안에 풀어놓고 키웠는데 또실이가 오고 나서는 너무 집 안이 난장판이 되어 둘을 현관에서 키웠다. 전에는 집 안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침대에서 자고 하던 놈이 갑자기 현관 신세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 이 놈은 하루 종일 으르렁 거린다. 밥을 줘도 으르렁, 쓰다듬어 줘도 으르렁, 안아줘도 으르렁,,,게다가 이 놈은 지가 개인 줄 모르는 놈이 되서 나랑 서열 정리가 안됐다. 그래서 나만 보면 항상 으르렁 거린다. 그런데 참 웃긴게 으르렁 거리다 물려고 하다가도 이빨이 닿는 순간 미묘하게 힘조절을 한다. 나를 다치게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렇게 또실이 때문에 으르렁 거려도 또 또실이를 엄청 이뻐한다. 눈이며 귀며 입이며 싹싹 핥아주고 안아준다. 아마도 또롱이는 또실이에게 양가감정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또롱이는 아무래도 야성이 남아있는 듯하다. 얼마 전에는 날아오르려는 비둘기를 덮쳐 목을 물어 죽인 일이 있다. 뭐 별로 범죄는 아니라도 왠지 두려웠다. 경찰서에서 와서 잡아갈 것 같고. 아 하여튼 골때리는 개다.

그렇게 난 시골에서 개 두마리를 키우며 살고 있다. 미친개 또롱이와 순둥이 또실이. 여튼 둘다 내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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