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는 평범한 소녀였다. 평범이란게 뭔지 물어 보면 주희를 가리키면 된다고 할 정도였다. 그녀는 꿈도 소망도 별로 없었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동네 어귀에서 슬리퍼 끌고 다니며 동네 청년이란 청년들과 다 인사하고 다니다. 어슬렁 거리며 들어와 저녁먹고 자는게 그녀 인생의 전부였다. 아무도 그녀가 특별해 질 거라거나 뭔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학도 남들 가듯이 그냥 그렇게 들어갔다. 삼류대 듣보잡 학과였지만 그녀의 평범한 생활을 영위해 주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그녀에게 사건이 일어났다. 어떤 남학생이 좋아한다면서 사귀자는 것이다. 주희는 이 또한 평범하게 해 내었다. 만나서 영화보고 팝콘 먹고 커피 마시다 집에 오는 게 그녀에게 나타난 변화라면 변화였다. 그러나 여기에 반전이 있었으니 그 남자는 대형교회 목사의 아들이었으며, 그녀의 조용하고 조신한 이미지에 반했다고 한다. 목사도 여자가 튀는 데 없이 조용하니 좋다며 맘에 들어했다. 대형교회 목사의 아들은 그 교회를 물려받을 차례였고 그럼 자연스레 주희는 대형교회 목사의 사모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난관이 있었으니 주희는 종교가 없었다.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주희의 부모님들은 당장 기독교인인 척 하며 근처 교회에 등록하고 성경책을 들고 다녔다. 주희도 목사가 하는 말을 거의 절반은 못알아 들었다. 그러나 주희 특유의 무난함으로 대화들을 받아넘겼고 결혼을 앞두고는 성경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항상 신고 돌아다니던 슬리퍼와 항상 입고 다니던 츄리닝에, 손에 추가로 들려진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성경책이었다. 주희는 어딜 가나 성경을 읽고 신앙도서를 탐독했다. 하나도 특별할 것 없던 그녀의 인생에 찾아온 결혼의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무엇 하나 열심히 해본 적이 없던 주희도 이번에는 달랐다. 정말 본인이 구원받았다고 착각할 만큼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평생에 그렇게 열심히 해 본 일이 없었다. 목사가 하는 말의 절반 정도를 알아듣다가 70%~80%정도 알아듣게 되었고 급기야는 목사보다 성경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대형교회 목사는 거의 기업주의 위치가 아니던가. 이번 만이 주희가 이 지겨운 인생을 정리하고 잘나가는 인생의 첫걸음을 땔 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으니 무슨 종교가 무슨 종교인지 모르던 주희가 마구잡이로 사 읽던 책에는 불교 책도 섞여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목사와의 대화 중 ’아, 네, 우리의 업보를 예수님이 대신지시고 돌아가심으로써 우리가 열반에 이르는 것이지요‘라고 해버린것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 뭔가 수상한 것을 느낀 목사는 어려운 교리들을 질문했고 주희는 하나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결혼은 이걸로 물건너 갔다. 다시 슬리퍼에 츄리닝을 입고 동네 어귀에서 어슬렁 거리던 주희는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아, 씨, 정말 좀 구원좀 해 주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