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초저녁에 함 번 잠들었다가 밤에 깬다. 고통에 지쳐 잠들었다가 고통 때문에 깨는 것이다. 언젠가 질병으로 인해 찾아온 이 만성통증은 악마와도 같다. 나를 한없이 깇깊 잠에 빠뜨려렸다가 또 깨워서는 사람을 통증에 시달리게 한다. 이 통증은 진통제로 조절되지도 않는다. 최고로 강한 진통제를 써야 겨우 버틸 수 있는 정도이다. 악마가 찾아와 영혼을 거래하며 통증을 없애준다면 기꺼이 응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이 통증은 악마도 외면해 버렸나 보다. 아무도 나누어 가질 수 없고 오롯이 나 혼자 겪어내야 한다. 한 번씩 펑펑 울곤 하는데, 그래봐야 통증이 나누어지지 않는다 누구의 손을 잡아도 누구에게 안겨도 통증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이 통증과 나는 남은 여생을 함께해야 한다. 악마와의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그래 한번 같이 살아보자. 네가 이기겠지, 죽음의 순간이 되어서야 나는 이 통증에서 벗어나고 넌 이제야 내가 이겼다며 떠나갈 테지. 그래, 반드시 이겨주겠다. 통증에 굴복하여 자살하는 패배는 없을 것이다. 죽음의 순간에 너를 향해 웃어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