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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rephath Sep 20. 2024

어느 작가 지망생과 공시생의 연애이야기

오늘도 정숙이는 쓰레빠에 츄리닝을 입고 과자를 씹으며 동네 어귀를 어슬렁 거린다. 그녀는 원래 작가 지망생이었다. 이책 저책 다 써보다 마지막으로 도전하고 있는 장르가 순수 연애소설이었다.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그녀가 도대체가 그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최대한 많은 순수 연애소설들을 읽으며 간접경험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녀가 연애소설들을 읽는 태도는 대체로 비판적이었다.‘아주 지랄들을 해요’‘그래서, 사랑해서 헤어져? 이 무슨 병신같은 짓이야?’ 수많은 연애소설들을 그렇게 씹어먹어가던 그녀가 매일 만나게 되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또한 그녀에게는 아주 지랄을 하는 얼굴이었다. 그는 그녀의 아래층에 세들어 사는 사람으로서 방음이 안되는 집 구조상 그의 전화 통화 소리나 방귀소리까지 다 들린다. 그녀는 그가 아주 혐오스러웠지만, 아침 세수할때마다 만나는 사람에세 ‘난 당신을 혐오하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항상 가벼운 아침인사를 나누는 사이인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거북스런 존재였다. 하루는 작가로서의 그녀의 미래가  점점 희미해질 무렾 그녀는 하루 날 잡아 술이 떡이 되게 마셨다. 펑펑 울었다. 우는 소리가 하도 크고 처절해서 밑층의 청년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무슨 나쁜 일이라도 당하고 있는 것 아닌 가 싶어 2층에 올라가 노크를 했다. 그를 보자 마자 목을 끌어안은 그녀는 한참 만에 토사물을 그의 어깨에 뱉어냈고, 그는 그 시간에 빨래를 하고 그녀의 술시중을 들어야 했다. 혐오도 그런 혐오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더욱 혐오스러워진 그녀에게 아침 인사를 했다. 꼴을 봐서는 필름이 완전 끊긴 상태로 전혀 기억을 못하는 것 같았다.‘그래 차라리 기억을 못하는편이 낫겠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목에 수건을 두르고 세수를 했다. 남자가 물었다 ‘해장 하실래요?’‘어 저 술마신 것 어떻게 아셨어요?’‘아, 네, 좀시끄러워서…’‘어머머 밤에 잠이나 자세요, 왠 남의 술마시는 것 까지 귀를 꽂고 듣고 그래요?’‘귀를 꽂고 들은 적 없고요, 전 단지 당신의 안전이 걱정 됐을 뿐이에요. 오버하지 마세요.’‘아니 오버라니, 오버는 누가 해 놓고 난리야, 쳇’

이 혐오스런 대화를 끝내고 정숙은 다시 글을 쓰러 방으로 들어갔다. 흠~ 뭔 연애를 해봤어야 연애소설을 쓰던지 말던지 할 것 아닌가? 다른 모든 장르에 실패하고 마지막 남은 만만한 장르가 연애소설이라 생각하고 쓰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쉽지가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래층 총각은 츄리닝 상의를 빨아서 널고 있었다. 순간 떠 오른 어제의 끊긴 필름, 분명 아래 집 총각이 올라왔었고, 그를 끌어안았고,,, 그의 어깨에 구토를,,, 으악!!! 쪽팔려 죽을 것 같았다. 그럼 지금 빨고 있는 저 츄리닝은 내 토사물인 것인가? 아! 신이시여. 어찌 나에게 이런 쪽팔림을 주시나이까???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계속 모른척 하고 있을 것인가? 저 남자가 언젠가 그 사실을 약점잡아 날 협박이라도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깔끔하게 사과를 하고 넘어가는 게 낫겠지???

그녀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저,,, 제가,,, 어제 밤에,,, 어떤 실수를 한 것 같은데,,, 제가 선생님 옷에,,,‘’아 저녁 드셨어요? 안드셨으면 제가 김치찌게 끓였는데, 해장도 하실겸 드시죠. 어제 일은 잊도록 하겠습니다.‘ 아! 이 남자 생각보다 배려심 있고 친절하구나 싶었다.‘네 그럼 한 술 뜰도록 할게요.’ 그렇게 둘은 아침을 같이 먹게 되었다. 김치찌개는 의외로 맛있었다.속이 풀렸다.‘아 감사해요 덕분에 맛있는 아침으로 해장했어요.’

‘오늘 저녁에 시간 어떠세요? 커피나 같이 하실래요? 제가 커피를 만드는 취미가 있어서.’‘네 좋아요 그럼 저녁에 뵐게요.’

그는 정말 전문가 수준으로 커피를 만들었다. 브리카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 원액을 만들어 스팀우유를 얹어 맛있는 카푸치노를 만들어 주었다. ‘아 제가 카푸치노 좋아하는 줄은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마셔 본 카푸치노 중에 제일 맛있는 것 같아요.’‘아 과찬이십니다. 그저 취미로 이것 저것 만들다 보니…저는 터키식 이브리크를 가장 좋아해요. 달콤 쌉싸름한 맛도 일품이고 만드는 과정도 아주 잼있어요.’‘여기부터는 그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그저 거의 커피에 대한 박식함에 감탄할 뿐이었다. 커피를 잘 얻어마신 그녀는 ‘식사 안하셨으면 나가실래요? 제가 살게요. 사과와 보답의 차원에서…’‘사과나 보답은 됐구요, 그냥 저녁 같이 먹어요.‘ 둘은 근처 삼겹살 집에 가서 고기를 먹었다. 삼겹살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또 소주, 삼겹살 먹는 동안 둘이서 소주를 다섯 병을 깠다. 여자는 첨엔 또 어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까 걱정됐지만 까짓거 한번 드러낸 치부, 두번은 못할 일 있냐는 생각이 취기와 함께 올라와 둘은 어느 새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었다. 아래층 청년의 이름은 정도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인 공시생이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공통점이 둘을 더 가깝게 만들었고 어느새 상 위에는 그들이 비운 소주병이 한가득 쌓이게 되었다. 꼬인 혀로 그녀가 물었다. ’연애 해 본 적 있어? 연애말이야 연애. 내가 연애소설을 쓰는데 이노무 연애를 해 본적이 있어야 말이지. 도통 연애하는 년놈들의 마음이 이해가 안되는데 어떻게 연애소설을 쓰냐고?‘’연애? 까짓거 해보면 될 거 아냐? 그거, 나랑 해 나랑. 우리 오늘부터 1일째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얘기들을 많이 했지만 그 다음날 필름이 끊긴 와중에도 사귀기로 했다는 사실은 확실히 기억이 났다. 이런!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이 남자 진짜 사귀자고 들이대면 어쩌지??? 아침에 세수하러 내려가는 길에 그를 만났다. ’저기 어제 얘기들은 술취해서 한 말들이니깐 너무,,,‘’아 물론이죠. 저도 술 먹고 한 얘기 마음에 두지는 않습니다.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일단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다가 문득 괘씸해졌다.남자가 여자에게 사귀자고 해놓고 술김에 한 얘기라고 신경쓰지 말라니, 이건 너무 모욕적이다. 정숙은 다시 내려갔다. ’이것보세요 정도씨. 아무리 그래도 사귀자는 말을 여자에게 술김에 했다고 취소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이건 너무 예의가 아닌데요?‘’그럼 사귀어요 우리, 전 분명 취소한단 말 한적 없어요.

그렇게 해서 둘은 사귀게 되었다. 그 이후 그들의 얘기는 여느 연애 스토리와 별반 다를바 없다. 좋다가 싸우다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정숙은 그들의 얘기를 쓰고 있다. 언젠가 책으로 펴낼 지도 모른다.

특별한 소문이 있다면, 정도는 다음 해에 공시에 봍어 공시생이 되었고 이후 결혼 얘기도 오가는 모양이다. 그들은 아직도 연애중이다. 여느 연인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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