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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dhi kim Dec 18. 2022

인지능력의 무한 확장 <방법>에 관한 설명(Ⅳ)

체성 감각(somatic sense)을 키워라(1)

신경에 새로운 경로, 신경가소성을 활용해 다양한 질병치유나 또는 학습능력 증대와 같은 실용적인 쓰임새만이 핵심 영역으로 다루는 관련 자료들을 보면서 필자는 뭔가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마치 대상이 거울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상대의 상태를 느낄 수 있다는 거울 촉감 공감각을 더 발전시키면 거울 앞에 서 있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 물질 나아가 지구 존재하는 모든 것까지 느낄 수 있는 공감각의 활용도가 아주 높은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공감각이 강한 사람은 질병의 하나로 취급되는 자료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신경 가소성이나 공감각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면 우리 인지능력의 무한 확대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그 방법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필자가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확정적인 미래 진단 뒤에는 의례히 메타버스도 언급하면서 학회나 관련 자료 들에는 이런 시대에 어떤 장치들이 어떻게 개발되고 어디까지 왔는가 하는 기술적인 문제만 열을 올릴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시대가 오면 인간은 어떻게 되나, 인간의 운명을 AI가 지배해도 좋다는 건가. 왜 인간이 그런 모든 장치들보다 더 나아간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가정이나 계발은 생각조차 아니 언급조차 없는 것인지 정말 신기할 뿐이다. 인간의 인지능력을 계발할 수 있다면 로봇보다 몇 배 더 나은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으며 그래야 그 로봇들을 활용해서 조정할 수 있는 데 말이다. 

 

이즈음 내 글을 읽은 지인이 그런다. 글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용이 연역적인 설명보다는 귀납적인 설명이기에 그런 것 같다. 인간 인지능력의 높은 가치를 체험한 필자로서는 그것을 설명하기엔 별 수 없이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증명하는 몸의 특성과 구조를 채용해 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아 왔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필자는 오히려 그런 능력을 이렇게 과학적으로 해명? 할 수 있다는 것에 엄청난 감격과 희열을 느끼며 글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는 이유는 딱 하나, 앞으로 맞이하게 될 인공지능과 메타버스의 시대 우리 인간은 그리고 미래 후손들은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대안을 절박한 심정으로 제시하고 싶은 절절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자료 하나를 알게 되었다. 카라 플라토니(Kara Platoni)가 쓴 <감각의 미래>로 출간했는데, 원저는 <We Have the Technology; How Biohackers, Foodies, Physicians, and Scientists Are Transforming Human Perception, One Sense at a Time>2015 출간. 2017 번역이다. 출간 이후 엄청난 관심과 열풍이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과학 전문 기자인 저자가 각 분야에서 인지영역의 뛰어난 능력자들을 만나며 정리한 내용인데 아마도 어려운 인지과학 영역이 실제로 그런 특이한 능력을 소유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간 것이 크게 주효했고 의미가 깊었던 것 같다. 필자가 그 저자를 미리 알았다면 혹은 우리가 서로 소통이 있었다면 아마도 필자의 이야기도 들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대목은 특히 책 3장의 다음 내용 때문이다.

 

포레스트는 가상현실 장치나 착용형 액세서리를 사용하는 대신 몸을 개조하여 인식의 장을 넓히고 싶어 한다. 감각을 개조하고 싶어 하는 바이오 해커들이 가장 많이 시도해본 새로운 감각은 자기 감지력, 즉 자기장을 인식하는 감각이다. 이 능력은 자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철새, 바다거북, 여러 종류의 곤충, 박테리아가 자기장을 인식한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식으로 자기장을 인식하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인간에게 이런 능력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과학자들은 그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지는 않는다.”  


 앞선 글에서 필자는 “세포에 작은 건전지가 있어…”이런 내용에서 인지능력을 확장시키는데 이 건전지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후에 설명하겠다고 했다. 오감 혹은 육감을 통한 자극이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뇌로 이동하고 여기서 전기신호가 해석을 받아 명령을 내리고 등등, 일련의 인식 과정은 길게 나열되지만 사실 그 과정은 불과 몇 초 안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만나 첫인상을 결정짓는 데는 3초에서 5초 사이라는 말이 나오는 근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단순한 첫인상 만이 아니라 오감을 통한 맛이나 냄새 등등, 대상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인지능력은 바로 이 자기장을 활용함으로써 그 인지 능력이 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필자는 이 자기장을 느끼고 알 수 있으며 자기장이 강한 곳에 가서 충전?을 받아 인지능력을 향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자기장의 강도 수치는 필자 개인의 단순한 느낌에서 온 주관적인 단정이 아닌 것임을 이즈음 과학적인 데이터로 알게 되었다. 미국 연구소에서 그 수치를 데이터와 그래프를 통해 시간별로 지역별로 내는 것을 보고 필자의 느낌이 맞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약어로, KP-index라고 하며 센터 이름은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Space Weather Prediction Center>이나 줄여서 NOAA SWPC라고 한다. 독자 여러분들도 한번 들어가 보기 권한다. 


필자가 카라 플라토니와 예전에 소통이 있었다면 “인간에게는 자기장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을 거”라는 그녀의 주장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자기장의 강도나 종류 그리고 어느 지점이 강 한가 하는 포인트까지 짚어낼 수 있는  필자의 이야기도 그녀의 책에 소개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뒤늦게 몹시 안타까웠다. 그렇게 되면 인지능력 확장의 방법까지 소개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언젠가, 현직에 있을 때 지구학 전공자이며 유수의 대학을 나온 현직 교수에게 필자는 기대에 부풀어 이런 사실들을 털어놓으면서 함께 연구해보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인문학 전공의 필자는 실험을 할 만한 도구도 실험실도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의 태도는,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느냐는 거다. 과학은 증명으로 밖에 말할 수 없는데 어떻게 인간이 그걸 느낄 수 있는가 하고 노발대발한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집어치우라는 식의 자세였다. 꼼짝?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이번에 알게 된 카라 플라토니의 책을 보면서도 그녀의 책에 열정적인 찬사를 보내 인쇄까지 나온 전문가 한분에게도 자기장이 아니라 인지능력에 대한 특이한 예시를 설명한 적이 있었지만 역시 과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그런 말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아예 답이 없었다. 인간의 능력은 전공영역이나 학력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계발하는가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는 사실을 왜 알려고 관심조차 안 두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거기에 특정한 레벨은 필요하지 않다. 꽂은 꽃 그 자체 로서의 본질적인 가치를 가질 뿐이지 거기에 장미꽃이다 호박 꽂이다 하는 식의 차별적인 레벨은 그다음 작업이지 않는가. 인간 본질 로서의 중요한 점은 두 번째 레벨 차원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로 바라 보고 평가해야지 그다음 분류 작업에서 평가가 들어간다면 그것은 십 중 팔구 그릇 치기 일쑤다. 일상생활에서 그런 일들은 무수히 마주치게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익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겉모습과 가진 것에서 평가하는 무수한 사람들.      

 

인간이 지닌 가치는 그 자체로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은 결코 변할 수 없는 불변의 진리이다. 다만 얼마만큼 계발해 낼 수 있느냐? 그리고 그 계발된 결과물들을 어떻게 온 인류와 함께 나누며 혜택을 누릴 수 있는가에 가치의 크고 작음이 있을 따름이다. 그 길에는 여러 가지 갈래가 있을 수 있으나 필자는, 자신의 인지 능력 확장을 통해 인간 본연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역할이 스스로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마치 소명의식처럼 누구나 깨달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각 분야에서 이런 소명의식을 자기 것으로 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져 온 게 아닐까.    

 

인간 존재가 지닌 이런 위대한 가치를 절절히 느끼고 있는 필자로서는 세월호도 그리고 이번 이태원 10.29 참사도 그냥 젊은 청춘이 아깝게 목숨을 잃었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 모두는 미래 세계를 위해 인류에게 어떤 능력을 발휘할지도 모르는 우리의 귀한 인재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느낌이 더 절절하다. 참사가 있던 날 밤 숨죽여 밤새 뉴스를 지키며 처음에 2명 그리고 50명으로 사망자 발표가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며 마치 가슴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주체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고인들에게 명복을 올리며 유가족 여러분들에게 고개 숙여 조의를 표한다. 같은 시간대에 숨 쉬고 있었다는 죄인 아닌 죄인의 느낌은 가슴 한귀퉁이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음을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인다.      

 

체성 감각을 키우는 이야기는 다음 회에서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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