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ddhi kim Jul 15. 2024

내 몸을 애정한다

- 애정 없이는 감각기능을 키울 수 없다-

준희가 가장 ''여기는 말이  "사랑한다" 다. 영혼 없는 이 한마디 멘트가 온통 돌아다닌다. 

홍보고 광고효과가 있다는데 어쩌랴.

 

문제는, 이 말이 개인 간 혹은 애완동물 등 살아있는 개체에 사용할 때이다.

과연 사랑한다는 말의 깊은 의미를 알고 말하는가.

적어도 ‘사랑’이란 단어는 반듯이 애정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럼 혹자는 그런다.

 

“그럼, 애정이 있지~”

 

‘애정’한다는 것은 ‘소중히 여긴다’는 의미이고 또한 상대와 감정적으로 교감이 있음을 의미한다. 일방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몹시 소중히 여겨 결코 양보 못할 정도로 상호 간 정서적인 교감이 확실한 관계 일 때 사용하는 단어다.

 

이런 근본적인 의미의 애정이 있어야 비로소 사랑한다는 말을 사용할 자격이 주어지며, 이럴 때 사랑한다는 말의 진정성이 우러나오게 된다.

 

준희는 카톡 이모티콘에 사랑의 하트 문양이 안이 비어 있는 하트와 빨간색이 가득한 하트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비어 있는 게 그냥 사랑이고 빨간색은 애정이 함께 듬뿍 들어있구나.

 


 -내 몸을 애정한다는 것-

 

어느 준희는 지인과 실내악 연주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옆에 앉은 그녀가 핸드폰에 있는 자신 사진들을 쭉 보여준다. 하루에 돌아다녔을 집안 공간에서 마다 찍은 얼굴 사진이었다. 그리고는 말한다.

 

“왜 이렇게 찍을 적마다 다르게 보이지? 이건 너무 늙어 보이고, 이건 아주 잘 나왔네. 이건 또 왜 이래?”

 “늘 이렇게 본인 사진을 찍어요?”

“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찍어요. 얼굴 보는 재미 에요.”

 

그녀 앞에서는 아무 말도 안 했지만 정말 충격적?이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그 사진들을 보여주며 준희의 평가 한마디를 원했던 거 같다.

그녀가 하는 행동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애정해서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큰 착각이다.  

 

이것은 자신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아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고 애정하기 때문에 그런다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천만의 말씀이다.

 

또 있다.

한때, 컵에 들어가는 사이즈의 작은 강아지가 크게 유행했다. 그러다가 그 강아지가 생각보다 커졌다며 반품?을 요구하며 매장을 찾는 다든지 아예 유기한다는 소식이다.

그 사람은 그 강아지를 한때 사랑한다며 신나게 데리고 다녔을 것이다.

 

‘애정한다’는 것은 남에게 보여 주기식으로 얼굴을 가꾸고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멋으로 강아지라는 생명체를 '소품'쯤으로 여겨 이쁘다고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지난 21화에서 나왔던 이반 일리치의 가족 이야기도 상호 간에 애정 없이 그럴듯하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묶여 살았던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이반 일리치의 부인이나 딸이 남편을 아버지를 애정했다면 결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가족을 그렇게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중하게 여기면서 감성적인 교감을 하고 살았다면 절대적인 위로가 필요한 시점에 결코 그렇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핵심은, 자신의 몸을 진정으로 애정하지 않는다면 몸의 감각을 키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어떻게??

 

-내 몸 들여다 보기-


우리는 자신의 몸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고 또한 이해하고 있을까?

얼굴에 뭐가 났나 주름이 어디에 생겼나 피부는 왜 이리 까칠한가

몸에 각선미가 엉망이네 살이 자꾸 쪄서 고민이네 등등 외모를 가꾸기 위한 관심이다.

아니면, 몸속 어느 장기가 병이 나서 고통이 있을 때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 느꼈다고 한다.


준희가 의미하는 관심과 이해는 그런 외모나 건강이 아니다.

내 몸을 애정하려면 먼저, 스스로 자신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간은 힘들어서 소리를 지르는데 그 몸 주인은 여전히 술을 마신다.

폐를 비롯해 세포들이 힘들어 쌕쌕거리는데 그 몸 주인은 여전히 담배를 뻐끔거린다.

몸속은 과잉지방으로 여기저기 부풀어 오르는데 그 몸 주인은 여전히 맛난 것을 거절 못한다.


이런 예시들은 모두 내 몸을 진정으로 애정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내 몸을 들여다보지 않아 모르기 때문이다.


극적인 예를 들었지만, 혹시 내 몸속 세포와 장기들이 얼마나 주인을 위해서 치열한 수고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인체 세포수는 30조 개인데, 이 가운데 3300억 개의 세포를 하루에 갈아 치운다고 한다. 1초당 380만 개가 세대교체로 나고 죽고를 반복해서 20대 건강한 청년인 경우 몸전체의 교체회전주기는 평균 80일 걸린다고 한다.


무심코 먹고 자며 살아가는 동안에도 내 몸속 세포들은 그 주인을 위해? 치열하게 생사(生死)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준희는 늘 몸에 감사한다. 그리고 애정한다. 몸에 어디 불편한 데가 없나 보살핀다. 마치 나약한 사람을 보살피듯이 자신의 몸을 살펴본다.


왜, 우리는 내 몸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까?

세상 모든 것을 으레 있어야 할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데서 그러지 않을까.

마치 늘 마시는 산소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것처럼.


산책길을 걷다 보면 편하게 걸으라고 깔아놓은 매트를 본다.


"참, 고맙다~ 이렇게 매트로 길을 열어주니 너무 좋네!"

"이거 다 우리가 낸 세금이에요!"


당연히 , "그렇다"라고 호응하면서 함께 감사와 즐거움을 표할 것을 기대했던 준희는 순간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다. 물론 세금으로 공사를 했겠지.

그래, 편안하고 안전한 산책길을 걸을 수 있게 한 누군가의 기획과 노고에 왜 '감사'마음이 안 생길까??

준희는 아마도 그 사람은 자신의 몸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안 할 거라고 생각한다.

                        

-내 몸과 교감하기-


준희는 아침이면 식사 전에 몸속을 들여다본다.

눈을 감고 의자에 앉아 잠깐의 집중으로 소망사항을 염원하고, 곧이어 자신의 몸속을 하나하나 느껴본다.


이제 준희는 마치, 복사기에 놓은 종이를 환하게 켜진 기계가 그 위로 한번 쓱 지나가면 내용물이 복사해서 나오는 것과 같이 몸을 읽어 낸다. 순간 이동처럼 몸이 스크린 되면서 그날 몸 어디가 문제가 있는지 혹은 약해 있는지를 파악한다.


이 방식은 처음부터 이렇게 된 게 아니다.


이 방법은 상당 기간 연습이 필요하다.

내 몸과의 대화가 아니, 교감이 시작되는 첫 출발점이다. 이 방식은 몸의 감각기능을 키우는 자본? 이 된다.

마치 나만이 가지고 있는 쌈짓돈처럼.


인체 해부도를 연상하거나 아니면 앞에 놓고 심장 위장 비장 췌장 간 등이 내 몸 어느 위치에 있나 확인하고 천천히 자신의 몸속을 들여다보듯이 생각만으로 짚어 본다.

위장 비장 췌장....

그러면서 하나하나 느껴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못 느낀다.

내일모레 글피... 하루하루 매일매일 하면 어느 날인가 문득 느껴진다.

그 느낌은 본인이 전날 술을 많이 마셨거나 소화가 안되거나 했을 때 그 부위를 빨리 느낄 수 있다.

그 부위가 안 좋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는 일은 하루라  빼놓으면 허사다. 매일 잊지 말고 실행해서 마치 습관처럼 아침 식사 전에 안 하면 밥을 못 먹을 정도로 몸에 익숙해져야 한다.

마치 안전벨트를 매는 습관이 든 사람은 안전벨트를 매기 전에는 자동차 시동을 걸 수 없는 것처럼.


이 방식은 준희가 온라인 강의할 때 한 학기 석 달 동안 대학생들을 상대로 직접 해 본 결과다.

빠른 사람은 열흘 아니면 적어도 한 달이면 자신의 몸속 장기들을 느끼기 시작한다.

데이터로 적어내게 했더니, 처음에는 과제라서 한다고 생각했다가 나중에는 이렇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특정 장기가 안 좋은 부분을 제일 먼저 느끼게 되었다고도 한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참가자 70퍼센트가 자신의 몸에 대해 이렇게 소중하게 느꼈던 적이 있었는가 하는 고백이었다.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느낄 때 다른 사람도 저절로 소중하게 생각된다.


산책로에 펼쳐진 매트를 밟으며 누군가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 없다면 결코 자신에게도 감사함이 없는 것이다. 자신을 애정하게 될 때 모든 것을 애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공감능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내 몸에 응답하기-


내 몸을 들여다볼 줄 알고 어디가 안 좋은 가를 느끼게 되었다면 이제 그 몸에 제대로 응답해야 한다.

그러나, 걱정 안 해도 된다.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고 교감이 일어나면 내 몸의 요구에 대한 응답은 저절로 하게 된다.

술도 자제하고 담배도 절제하고 음식도 참으면서 내 몸에 응답해 주게 된다.

 비유하자면, 마치 독약이 든 것을 알고는 도저히 먹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알고는 못한다.

 

이렇게 내 몸과 정서적인 교감이 일어날 때 비로소 당신은, "내 몸을 애정한다.""나를 사랑한다."

라고 말 할 수 있다. 마치 매일 식물에 물 주듯이 몸에 애정을 부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감각기능이 발달되고 이 능력을 바탕으로 인지능력이 확장된다.



 

    

 

이전 21화 몸에 베팅을 걸어 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