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기능을 키워라─
준희는 베팅하기를 즐긴다.
사람들은 누군가 베팅을 건다고 하면 언뜻 주식이나 도박 부동산 투기 등을 떠올린다.
천만의 말씀. 돈이란 따라오는 거지 내가 쫓아가는 게 아니다.
준희도 몇 번의 그런 기회를 제안받았다. 그리고 그 제안이 유효할 것이란 확신도 있었다.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유는 귀중한 시간과 노력을 그런데다 할당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준희가 거는 베팅은 주로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즈음 당장 급한? 베팅은 지난번 걸린 감기로 몸무게가 2킬로 늘었다.
그것을 원위치로 돌려놓는 일이다.
몸무게란 자신이 규정? 한 것보다 올라가면 끌어내리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첫 계기를 놓치면 아마 막무가내로 올라갈 것이라 그전에 끌어내려야 한다.
몸무게를 원위치시키는 단기 베팅뿐 아니라, 준희는 평생 자신에게 베팅을 걸면서 살아온 듯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식에게 그리고 소유욕을 충족시키는데 베팅하며 평생을 바치는 듯하다.
"내 자식만큼은 이렇게 되어야 해" 또는" 나는 적어도 이 정도는 갖추고 살아야 해"
어느덧, 그대들이 원하는 걸 다 성취했다 하자.
그러나, 죽음에 임박해서 그대 손안에 쥐어진 걸 펼쳐 봐라.
그 손안에 뭐가 남았을까??
빈손이다. 남은 게 하나도 없다.
평생 허구?를 좇아 살아온 인생이란 것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때, 죽음이 마냥 두려울 것이다.
그 당연한 귀결을 자기 인생에서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더 무섭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죽음은 온전히 혼자의 몫이다.
준희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 가운데, 톨스토이의 단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가장 극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평생을 검사로서 호의호식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온 주인공, 이반 일리치가 어느 날 갑자기 건강 적신호로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서 직장에서 그리고 가족 간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겪게 된다. 그가 잘 나갈 때 그토록 대우해 주던 사람들은 직장에서도 심지어 아내와 딸까지도 이반 일리치에게서 서서히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주인공은 그제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되뇐다.
"지금까지 나는 내내 산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산을 오르는 것으로 보였겠지.
그러나 내 삶은 사실은 항상 발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톨스토이 단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평생을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본일 없는 이반 일리치의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일 것 같다. 허구를 좇아 평생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았건만 죽음을 앞두고 정작 본인 손에 남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반 일리치'의 이 마지막 메시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이쯤 해서, 이 글을 읽어 온 독자는 아마도 묻고 싶을 것이다.
"그럼, 주인공 준희는 죽음에 임박해서 과연 손안에 가져갈 것이 있다고 하는 건가?? "
누군가 준희 보고 당신의 삶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그녀는 주저 없이 말한다.
'평생을 자신 스스로에게 베팅 거는 삶'.
그리고 '신의(信義)'를 항상 준법처럼 여기는 삶'이라고.
신의는 신뢰이며 그래서 항상 자신의 말과 타인이 했던 말에 대해 지나치게? '믿음'으로 대처하다
실망하는 경우도 허다하게 겪고 살아온. 그러면서도 여전히 그러고 살고 있는 사람.
돌이켜보면, 아마도 준희는 삶의 허망함을 극복해 내기 위해 그런 고난과 인내를 견디면서까지 나약한 인간의 문제에 끊임없이 도전장을 내미는 베팅을 해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위대함이 어디까지 일까를 늘 캐고 또 캐고 해 왔던 것 같다.
준희는 이제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감각능력과 인지능력을 가졌다고 스스로 인정한다.
그리고 이제는 이런 능력을 어떻게 얻을 수 있게 되는가 하는 방법론을 하나하나 설명해 나감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지기를 열망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에 대한 보답이며, 준희가 인생에서 얻은 엑스트라 '알파'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개인적인 감상을 넘어서 많은 사람과 나누고자 하는 딱 하나의 이유가 있다. 준희는 말한다.
"이 능력은 실생활에서 많은 도움이 되며, 무엇보다 자신에게 인간의 자긍심을 꽉 채워 주기 때문이다. 이런 자긍심은 무엇을 가졌다거나 누리는데서 오는 만족감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절실하게 느끼게 할 정도로 풍요롭다. 아마도 이런 경지에 가보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 못 할 존엄한 인간의 자긍심은 세상에 어떤 권력도 재물도 부럽지 않은 행복감을 안겨 준다."
준희가 끊임없는 도전과 인내로, 마치 매 순간 베팅을 거는 강한 의지력으로 얻어낸 이 '알파'는 준희만큼의 노력이 아니더라도 이제 누구나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준희가 그 방법을 알아냈고 알려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 혹시 "나도 도전하고파~"라는 감상이 들었다면 한 번쯤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참으로 소중하게 태어난 인생을 그냥저냥 헛것만 좇다가 이반 일리치처럼 마지막에 후회하는 일은 적어도 없어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가게 될 죽음에 임박해서 적어도 내 손안에 뭔가를 쥐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사랑과 확신이 확고하게 서야 한다.
그다음은, 모든 관심을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만 향해야 한다.
그리고, 베팅을 걸어본다.
왜냐하면, 중간에 그만 둘 확률을 줄이기 위함이며 또한 승부를 걸으므로써 단계마다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서다.
"나, 한번 해봐야지"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온전히 나에게로 향하게 하면서 곱씹어 보는 말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디 멋진 장소에 갔다고 하자.
제발, 셀카 찍는데 허비하지 말고 그 풍경을 하나하나 마음으로 느껴보며 바라본다.
그리고 큰 나무가 보인다면 다가가서 내 몸에 어떤 변화가 감지되는지 오랫동안 서 있어 본다.
처음에는 아무런 감상도 느낌도 없을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거듭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매번 갈 때마다 그리고 어딜 가든지 큰 나무가 있다면 그 옆에 한동안 서서 몸에 어떤 느낌이 오는지 본다.
이런 작업은 기회 있을 때마다,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반복해서 실행해야 한다.
마치 운동선수나 예술가가 마음에 흡족한 결과를 얻기까지 끊임없이 연습 또 연습을 반복하듯이.
마치 화분에 물 주며 크는 식물들을 바라보듯이, 그렇게 자신을 가꾸듯이 해보는 것이다.
일단, 하기로 작정했다면 절대로 중도에 포기는 말아야 한다.
싹이 움트다가 그만 말라버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준희는 인생이란 참으로 살아갈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절절히 느낀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적어도 뭔가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인간의 삶 아닌가.
뭔가에 대한 절절한 소유욕구도 부질없고,
누군가와 짙은 사랑마저도 결국 떠날 때는 혼자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미리미리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야외에 나가면 큰 나무 옆에 서보는 일은 다음 한 주도 쭉 지속해야 한다.
내 몸에서 어떤 세포들이 반응하고 있는 가를 기다리며 지켜보는 일이야 말로 세상 최고의 베팅이다.
"왜?"
반듯이 얻어지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이나 '꽝'이 나오더라도 절대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반듯이 얻을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