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이치-
-두 번의 현직 대통령 탄핵-
우리 대한민국이 어쩌다 두 번씩이나 현직 대통령을 파면하게 되었나?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자들, 평론가들 그리고 그 정치인들... 저마다 갑론을박 해대며 그 원인 분석도 다양하다. 그들의 모든 의견들은 맞다. 이론적이어서 맞고 각자의 감정에서도 그렇다 더구나 각 당의 이익을 대변한다는데 틀리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확신을 열심히 피력했을 테니 거기에 내가 옳다 그르다 평가할 계제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나처럼 나이가 들면 저들이 보지 못하는 아니 알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느끼게 된다. 윤석열 탄핵을 보면서 내가 무릎을 치며 놀라는 지점은 다른데 있다.
나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던 날 당시, 잠자리에 들면서 핸드폰으로 우연히 켠 뉴스를 통해서였다. 너무나 놀라서 불을 끈 채 숨죽이며 밤새도록 사망자의 수를 헤아려 알려주는 뉴스를 계속 따랐다. 온몸이 떨려 왔다. 차마 무어라 표현도 못할 정도의 충격이 몰려오며, 들었던 한 생각! 너는, 반듯이 그 자리에서 쫓겨날 거야.
충분히 일어나지 않아도 될 참사는 우연이 아니라 인위적인 사고였다. 그 증거는 정부 고위 책임자들이 앞다투어 내미는 한마디에 몽땅 들어있다, "우리는, 책임 없어." 다.
나는 종로에서 나고 자라 전통 보수의 맥을 이어받은 분위기에서 자연스레 선거는 무조건 여당에 표를 주어야 나라가 안정된다는 논리에 익숙했던 사람이다. 그러다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대통령이, 정부가 무엇 때문에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을 품게 되었다. 철학을 전공한 내가 최초로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는, 그냥 세상은 저절로 잘 굴러가는 줄로만 알았다. 이런 무지를 일깨워준 사건이 세월호였다. TV에서 생방송으로 보여주는 장면을 보면서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 팔팔한 꽃 같은 청년들을 감히 누가, 왜, 저렇게 만드는가 하는 분노에 치를 떨면서 원망의 화살이 자연스레 정부 국가로 향하면서, 공부? 가 시작 되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이유를 파내지 않고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알았다. 국가가, 정부가, 대통령이 무슨 책임감으로 어떤 철학으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말이다. 그 자리는, 국민이 뽑아준 그 자리는 반듯이 국민의 '도구'로만 존재해야 한다는 것. 개인이 온갖 사치와 부를 누리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잠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세웠다는 사실을 그들은 까마득이 잊어버린 것이다. 아니 처음부터 그런 생각조차 못한 무자격자였다.
윤석열이 선거에 후보로 나오던 당시, 나는 브런치에 글을 썼었다. 내가 뽑을 대통령은 자신이 공언했던 약속을 '반드시 지켜냈는가' 하는 공직자로서의 삶의 흔적에 따라 결정한다는 것. 세월호 원인 규명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던 사람이 윤석열이었고 전 정부 마지막 임기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그를 보며, 예민한 시기여서 차마 글로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저 약속 잘 지킨 사람이 내가 뽑을 대통령이라고만 했었다.
이태원 참사를 접하면서, 그도 이제 박근혜처럼 쫓겨나겠다는 한 생각이 들었고, 드디어 그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근거는 간단하다. 세월호나 이태원 참사처럼, 생때같은 귀한 목숨들을 강제로 빼앗아간 그들이 벌을 받지 않는다면 어찌 세상에 정의가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신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으며, 국가라는 울타리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살 맛이 나겠는가.
이태원 참사뿐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 일어나는 참사들을 접하면서, 관심도 책임도 나 몰라라 하는 정부를 그리고 그에 분노하는 국민들의 소식을 보면서, 언젠가는 때가 오리라 생각했다. 아니 기다리는 중이었다고 해야 할까.
나이가 들면, 젊은 사람들이 미쳐 못 느끼는 감각이 생긴다. 그동안의 나이테를 통해 형성된 지혜라고 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것은, 사회적인 것뿐 아니라 인간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저러면 안 되는데... 가 결국은 안 되는 경우로 종지부를 찍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문제는 각자가 얼마나 삶에 진정성 있게 다가가며 살아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사람을 대하면서 잔머리를 먼저 굴리는 사람이 가장 매력이 없다.
사람을 대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경우가 가장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
사람을 대하면서 대상의 겉모습에 따라 대접을 달리 하는 경우를 본다면 가까이하면 안 된다.
사람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
늘 배우고자 하며 배움에 정성을 쏟는 사람과는 항상 함께 하려고 해야 한다.
늘 상대를 존중해 주는 사람과는 평생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이 이야기는 정치인 그리고 공직에, 나아가 고위직에 올라갈수록 적용돼야 하는 항목이어야 하지 않을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 세월호 11주기를 맞이해서, 그들의 영령에 깊은 참회와 사죄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