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명 나는 일

by 수호천사

칼로 무 베기


아끼던 칼 한 자루를 꺼냈다.

가자미 회를 뜰 때

가자미 척추뼈를

끊는 용도로만

쓰던 중식 칼이다.


모든 게 불확실한 시점

이 땅에 언제까지 머물러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도구에 불과한 칼을 아낄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한몫했다.


청무우를 썰었다.

미끄러져 내려가듯 부드럽다.

가볍게 눌렀을 뿐인데

무우가 밀리듯 둘로 갈라진다.


평소랑 똑같은

소고기 무우국을

만드는 일이

칼 한 자루 바꿨을 뿐인데

신명 나는 일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지겹다면

혹시 책장에서 먼지 덮고 있는

책을 펼쳐보지 않은 탓은 아닐까

주방의

칼날이

무뎌진 탓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신명 나는 일들을

찾아서 해봐야겠다.

더 늦기 전에…


칼질하면 신명 나는 나는

웃음이 절로 나는 나는

전생에 혹시 무사였나

아니면 숙수였나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나님께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