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 넣어줘도 되나요

소소하게, 행복하게, 나도 가게

by silvergenuine

친구 1: "선생님, 오늘 서아 왜 안 와요?"

친구 2: "나 알아! 서아 가족들이랑 여행 간댔어."

'맞다, 오늘부터 서아 가정체험학습이었지.'

신청서류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본다.

'4월에 동남아라니, 저렴하고 한적하게 잘 다녀오겠구나.'

부럽다.


며칠 뒤 서아가 까매진 얼굴로 돌아왔다.

"오, 서아! 잘 다녀왔어?"

서아가 씩 웃으며 간식가방을 교탁에 올려놓는다.

"엄마가 친구들 주랬어요. 그리고 이건 선생님 드리래요."

망고맛 젤리 1 봉지와 코코넛 커피믹스 몇 개가 들어있다.

아이들 간식은 문제가 없지만, 교사에게 주는 커피믹스는 김영란법 때문에 마음에 걸린다.

얼마까지 받아도 되더라? 알아보니 학년말에는 가능하지만 학기 중에는 아예 안된다고 한다.

하긴 어느 버스기사님은 커피값 800원 사용했다고 해고까지 당하셨다는데, 내 목도 안전하지는 않다.

'어디 받기만 해 봐라, 뭐 하나 걸리면 내가 이걸로 신고할 것이여.'

이러한 학부모의 음모로 보지는 않으련다. 그래도 그냥 받았다가는

"우리 선생님은 선물 보내니깐 그냥 받던데?"

와 같은 말로 규칙의 일관성을 해칠 수가 있다.

하지만 커피 믹스 몇 봉은 사뿐한 마음인 걸. 소소한 정성에 거창하게 거절하기가 너무 애매하다.

곤란한 마음을 밀쳐놓고 서아에게 말했다.

"이런 걸 챙겨주시고 감사하네. 애들이 좋아하겠다. 이따가 아이들 모두 오면 네가 직접 나눠주자. 체험학습보고서는 가져왔어?"

제출한 보고서를 보니 체험 모습을 컬러프린트해서 정성스럽게 작성해 왔다.

"우와, 이 정도면 아이들 보여주면서 발표해도 좋을 것 같다. 이따가 수업 시간에 아이들 한번 보여주자."


예전에 봤던 한 신문기사에서 교사가 반 아이들에게

"해외여행 가본 사람 손 들어보세요."

라고 했다가 '해외여행 안 가본 우리 아이가 상처를 받았다'며 학부모에게 고발을 당했다고 하던데, 수업 시간에 체험학습 다녀온 썰을 풀어달라고 하다니 내가 너무 간 큰 교사인가 싶다.

우리 학교는 가정체험학습으로 해외에 다녀오는 학생이 많지 않아 이런 기회를 통해 간접경험을 해보면서 시야를 넓히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친구가 여행 다녀온 얘기를 들어봅시다. 자랑이 아니라 경험해 본 걸 우리랑 나누는 거예요. 거기 못 가봤다고 속상해하지 말고 그냥 재미있게 들어봐요. 그리고 이 친구가 먼저 다녀왔을 뿐, 우리라고 못 갈 것 없으니깐 나중에 가고 싶으면 가면 됩니다."


망고 젤리를 서아가 하나씩 나눠주니 아이들이 "고마워." 하며 받는다.

그 와중에 "전 젤리 안 먹어요." 하며 거절하는 아이도 꼭 있다. "그럼 나 !" 하는 아이들을 제지하며 집에 가져가서 가족에게 주면 좋겠다며 가방에 넣도록 했다.


서아가 다녀온 곳은 코타키나발루, 나도 처음 보는 지명이다. 실물화상기로 보고서의 사진을 보여주며 질의응답을 했다.

김선생: 거기가 어딥니까?

서아: 어디더라...동남아 어디였는데

친구들: 베트남! 태국! 필리핀!

김선생: 구글 지도를 찾아보겠습니다. 아, 말레이시아군요. 그곳 날씨는 어땠나요?

서아: 더웠어요.

김선생: 여러분도 궁금한 거 물어보세요.

친구들: 무슨 음식이 맛있었나요?

영어로 대화했나요?

누구랑 갔나요?

뭐가 제일 재미있었나요?

처음에는 쭈뼛대던 아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을 한다. 머리에 헬멧 같은 걸 쓰고 물속을 걷는 '씨워크'라는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바닷속에서 봤다는 생물들도 함께 검색해 본다.


따분하던 교실에 코타키나발루에서 불어온 바닷바람이 슬쩍 들렀다간다. 언제고 선생님도 한번 가봐야겠다. 너희들도 기억 한 켠에 이곳저곳들을 끼워두었다 각자의 인연이 닿을 때 가보길 바라.

서아가 가져온 망고 젤리의 감질맛이 각자의 삶 속에서 살아나 가득 채워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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