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마!
늦둥이 셋째 꽃봄이가 태어났다.
신생아가 이렇게 작았었구나,
10년 만에 만난 아기는 오빠들보다 출생몸무게가 100그램은 더 나갔는데도
그저 너무 작고, 그리고 또 다시 너무 새롭다.
조리원 없이 집으로 와 관식과 어깨를 겨루는 남편의 산후조리를 받으며
모유수유와 천기저귀를 다시 실행하고 있다.
내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아있던 모유수유가 신생아 시기의 시간시간마다 얼마나 고난이었는지
이번에 다시 겪으면서야 깨닫게 되었다.
둘째 때는 이렇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은데 하며 꺼내본 육아일기에는
아기가 얼마나 자주 깨고, 간격 없이 젖을 먹고, 밤에는 얼마나 더 자주 깼는지 생생히 기록되어 있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난 내가 이렇게 다 잊어버릴 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은 매 순간 흐르고 있고, 아기는 자라고 있으니
또 세월이 흐르면
우리 꽃봄이를 기르던 시간에서도 힘든 일은 체에 걸러지고 그리운 순간들이 부모에게 남겠지.
출산한지 열흘이 지났다.
산모의 몸 회복도 이렇게 힘든 과정이었던가,
아래 통증으로 앉아서 수유하기가 힘들어 자꾸 눕수를 하고,
매번 오로를 처리하고,
첫째, 둘째 때보다도 유두가 훨씬 아파 결국 소아과에 가서 아기가 단설소대 시술을 받게 되었고,
이불 밖에 드러난 내 손목, 무릎은 이내 냉기가 들어찬 듯 시려 핫팩을 갖다대기 바쁘다.
낮에는 젖먹고 내리 잘 자던 아기가 밤만 되면 젖을 먹고도 금세 잠에서 깨어 또 젖을 찾아
밤이어도 차라리 자지말고 좀 깨어있다가 자보자며 달래보아도 결국 강성울음에 또 젖을 물려야 잠이 들고.
그렇게 새벽을 맞으면 그제야 두세시간 쯤 내리 자서 나도 잠을 잘 수 있었다.
오늘, 아침이 되어 아빠는 식사를 준비하러 주방에 가고
늦잠을 자고 일어난 큰 아들이 자고 있는 나와 꽃봄이에게 다가와 동생이 너무 귀엽다며 들여다 보았다.
그러다가
"어, 똥냄새 나는데? 똥 쌌나?"
하며 동생 기저귀 냄새를 킁킁 맡아본다.
"아닐텐데, 아까 새벽에 응가 기저귀 갈았어."
"똥 냄새가 나는데?"
"글쎄, 똥 안 쌌을 걸?"
"아, 엄마 입에서 냄새 나. 엄마 입냄새였어."
"헉, 말이 너무 심하다, 너 이 방에서 나가."
하고 아들을 내보낸 후 어안이 벙벙하고 당혹스러운 내 마음을 일단 외면했다.
이내 잠에서 깨어 보채는 아가를 안고 거실에 나온 나는 아들을 향해
"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네 입장을 좀 설명해봐."
"아니, 그냥 똥냄새가 났는데, 그게 입냄새였다고..."
"네가 그렇게 말을 하면 엄마 기분이 많이 상할 거라는 걸 정말 모르는 거야?"
내 목소리가 냉랭하고 격앙되자 부엌에 있던 아빠가 상황을 묻는다.
아이에게 직접 말해보라고 하니
"아침에 꽃봄이가 똥 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엄마 입냄새였다고..."
"헐, 엄마 기분 나빴겠다. 아들이 개념이 너무 없네"
하고 남편이 말을 하는데,
그제야 육아와 산후조리에 지친 내가 서럽고 봇물 터지듯 눈물이 흘러나왔다.
남이면 뭐 그런 놈이 다있냐며 욕하고 말겠다. 남편이면 그냥 정이 다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내 아들이다. 내가 키웠다. 내가 키운 아들이 저런 말을 나에게 했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그저 개념이 없는 게 아닌 것 같고, 일부러 나를 화나게 하고 싶었던 건가? 요즘 나에게 쌓인 게 많은가?
내가 첫째에게 유난히 화를 잘 낸다는 남편의 피드백들이 아프고 싫던 나였다. 오늘 아침 아들의 발언은 자기 방식의 복수인가. 온갖 생각을 하며, 그 와중에 손바닥에 입바람을 불어 내 입냄새를 확인해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냥 축 늘어져 눈물만 흘렸다.
남편이 와서 아기처럼 날 달래주고, 지금 몸과 마음이 힘든 엄마를 잘 배려하라며 아들을 나무랐다.
아들은 나름대로 눈치를 보며 죄송하다고 하는데, 내 마음이 차갑다.
하지만 갓난 꽃봄이를 보며 하이톤으로 "그랬쪄요?"하는 내가 맘 편히 셋째를 예뻐하려면
첫째, 둘째와의 사이도 애정 가득 편안해야한다. 함께 늦둥이 동생을 환영한 우리 가족이다.
큰 아들의 무례한 말에 결론을 내렸다.
"니 말이 똥이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고, 했더라도 입 밖에 내놓니, 그러면 그건 니 말이 똥인거다.
그 똥이 나한테 묻어버렸다. 나도 나를 닦아야겠지만, 큰 아들이 나를 닦아줘야 할거다.
그리고 앞으로는 입으로 똥을 내뱉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시켜야겠다.
똥 같은 생각과 말이 애초에 네 안에 떠오르지 않으면 좋으련만,
몽글뭉글 떠올랐다면 그저 잘 삭혀 네 거름으로 만들어라. 그걸 입 밖에 내지 않는 배려와 묵직함이 널 키울 테니까.
엄마가 여기에 이 일화를 써서 네가 속상하다면 반영할게.
아들,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고, 엄마는 네가 훌륭한 어른으로 자랄 거라고 믿는다.
훗날 이 일을 다시 얘기하게 될 때 아들이 머쓱하게 웃으며
"내가 진짜 왜 그랬나 몰라, 엄마 많이 힘빠지고 속상했겠다, 죄송했어요."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