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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 뜯는 아이

by silvergenuine

열 살 무렵이었나,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쑥을 뜯어보고 싶었다.

3월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때

우리집과 앞집 사이에는 남향의 경사면이 있었고

거기에 어린 쑥이 먼저 자라나고 있었다.

작은 플라스틱 소쿠리에 연필 깎는 칼을 들고 쑥을 뜯으니 말끔하게 조금씩 모여지는 쑥이 예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쑥을 뜯는데만 몰두했다.

마당에서 일을 보던 어른들은 오며 가며 입을 대셨다.

"벌써 쑥이 있더나?"

"바람 분다, 감기 들린다. 그만 하고 들어가라."

"알았어요, 좀만 더 뜯고요."


반소쿠리쯤 되는 쑥을 엄마에게 드리니

헛수고로 버리지 않으시고

저녁에 계란물, 콩가루 입혀 쑥국을 끓여주셨다.

"아이구야, 쑥국 끓일 만큼 뜯었네!"

"어린 쑥이라 연하고 맛나네!"

뜯을 때는 오고 가는 어른들 잔소리에 눈치를 봤지만,

쑥국을 먹을 때는 감탄 일색에 쑥스럽고,

내가 뜯은 쑥이 진짜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났다.

그 뒤로도 쑥 뜯는 게 너무 좋은데,

언니나 동네 친구들은 그런 것에 별로 흥미가 없어해서

그냥 혼자 쑥을 뜯어오곤 했다.

그러면 여지없이 추운데 쑥 뜯는다고 엄마에게 혼부터 한 번 나고 그래도 양이 좀 되면 쑥국 좀 끓여달라고 졸라보곤 했다.

어른이 되고 엄마가 된 지금도 쑥 뜯는게 재미있다. 남편이나 아들들은 전혀 흥미 없어하지만,

남편에게 부탁해 쑥이 깨끗한 곳으로 나들이가서 쑥을 뜯곤 한다.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 멸치육수에 된장을 풀고,

쑥에 계란물을 입혀 쑥국을 끓인다. 그렇게 쑥국을 먹고 나면 올해의 봄을 한그릇 먹은 것처럼 진짜 봄이구나 싶은 거다. 그냥 지나가면 서운하지.


올해 쑥은 이제 쑥국은 말고 쑥떡할 만큼 자라고 있는 듯하다. 쑥떡은 손 큰 엄마의 전문분야. 매번 냉동실에 넣어놓고 먹어라 하며 주시면 귀찮다는듯 받아왔는데, 올해는 웬 일로 쑥떡이 당긴다. 먼저 엄마에게 해달라고 하면 무리하실까봐 그냥 있어야겠다 싶다. 하시면 주시고, 안 하시면 안 주시겠지. 쑥떡...


쑥, 봄쑥. 내년 봄에도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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