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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줘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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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genuine

전업주부로 살아오시던 어머님께서 얼마전 시니어 일자리 첫 월급을 받으셨다.

어르신들께서 조를 이루어 공원과 숲속 산책길을 순찰하는 일인데, 어르신들이 운동과 인간관계를 꾸준히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의 일자리효도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큰 돈은 아니지만, 어머님께서는 그 돈을 기쁘게 쓰고 싶어하셨다.

그래서 아들 가족에게 한 턱 쏘시겠다며 먹고 싶은 것을 물어오셨다.

우리가 사드려야하지만, 이번에는 기꺼이 얻어먹겠다하며 자주 가는 동네 중국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만삭인 몸이라 뭘 많이 먹을 수가 없어서 머리를 또록또록 굴리며 메뉴를 궁리했다.

평소 아들들과 중식을 먹으면 탕수육이 필수이기 때문에 정작 내가 좋아하는 양장피는 주문을 못 했었다.

이번에 시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 탕수육 하나에 양장피도 하나 시키고

난 많이 먹으면 숨이 차니, 따로 내 식사메뉴를 시키지 않고 아들과 남편의 짜장면과 짬뽕 한 젓가락씩 얻어 먹으면 딱 좋겠다고 남편과 이야기를 나눴다.


시간 맞춰 중국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시부모님께서 이미 식당에 와계시다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네, 저희도 가고 있어요, 금방 도착해요."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뭐 시킬지 미리 말씀드릴 걸 그랬나? 아니다, 금방 가서 말씀드리면 되겠지? 설마 미리 시켜놓으시진 않으시겠지?"

설마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중국집에 도착해보니 우와...

이미 1인 1간짜장 통일에 탕수육 2개를 주문해놓으셨다고 하신다.

어머님, 아버님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탕수육을 좋아하니 넉넉하게 시키고,

짜장면 보다는 간짜장에 채소가 더 많고 고급이라 생각되니 간짜장으로 통일시켜 주문하신 것이다.

아이들은 간짜장에 듬뿍 든 양파를 버거워해서 일반짜장면을 더 선호하는데...

난 간짜장 한 그릇 다 못 먹을텐데...남편은 짬뽕인데...

나 양장피 먹고 싶었는데...


남편과 내가 황당해하며

"물어보고 시키시지 그냥 다 시켜놓으시면 어떡해요?"

"왜? 너희 탕수육 좋아하잖아."

"뭐 먹을지 생각하면서 왔는데, 미리 다 시켜놓으셔서 너무 놀라워요."

내가 웃고 있는지 찡그리고 있는지 표정관리가 안 되는 상태에서

"아버님, 왜 이렇게 일방적이세요?"

하고 속에 있는 말을 해버렸다. 그래도 감사하게도 두 분다 웃으며 들어주시며

"너희 먹고 싶은거 있으면 더 시켜라. 더 시키면 된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음식이 빨리 나오는 식당이라 취소를 할 수도 없고 추가로 뭘 더 시키면 다 먹을 수가 없다.

음식을 잘 남기지 않는 우리 식구이기에

"그럼 너무 많아서 다 못 먹어요."

"임산부가 많이 먹어야지, 더 시켜라."

"이제 만삭이라 많이 먹으면 숨이 차서 힘들어요."

"그러냐? 그럼 남겨서 싸가면 되지. 먹고 싶은 거 시켜라."

"싸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나중에 먹고 싶은 거 먹을게요. 이것도 괜찮아요."

하며 겨우 분위기를 진정시키고 주문하신대로 음식들을 먹었다.


자식들을 향한 부모님의 행동은 본의 아니게 일방적일 때가 있다.

자식들의 생각을 물어보고 조율해보면 될텐데

당신들께서 좋다고 생각하시는대로 결정하고 그게 자식을 위한 거라고 여기신다.

주시는 마음은 정성인데, 받는 입장에서는 그게 불편할 때가 있다.

그래도 어쩌겠나.

정작 당신들의 옛 가정에서 대화와 소통으로 소소한 것들을 결정해본 경험이 없이 자라신 분들인데,

지금 이 정도로 우리들을 위해주시고 표정관리 안되는 내 투정을 들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 엄마한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해줘도 지랄"

시골에 있는 친정에 갈 때마다 엄마는 밑반찬과 먹을거리를 넘치게 싸주신다.

손이 어찌나 크신지

얼마 전엔 어디서 돼지고기를 싸게 판다고

우리 온다는 소식에 왕창 사놓으셨다가 챙겨주셨다.

"고기는 우리가 사먹으면 되지, 이렇게 사두면 어떡해."

냉장고기라 냉동하긴 아까워 급하게 요리해서 며칠을 먹었다.


어디 냉이가 지천이라고 친구들과 한 자루를 캐오셔서는

며칠을 혼자 티비 보며 앉아 다듬고 씻어 챙겨주셨다.

"우리밭 냉이랑 뿌리가 다르다. 이런 게 맛있어. 이거 다듬는다고 밤 늦게까지 앉아있었더니 감기기운이 오더라. 요거 가져가서 송송 썰어서 냉동실에 넣어 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어라."

이것 말고도 시금치, 대파, 쌀, 달걀, 파김치, 오징어채, 구워먹고 남은 돼지고기, 맛있게 먹고 남은 닭죽까지...

"놔두면 누가 다 먹노, 너희가 가져가서 먹고 치워라."

"알겠어, 엄마가 음식 상해서 버리는게 한둘이가, 내가 가져가께."

바리바리 트렁크에 싣고 집으로 돌아와 정리를 하고 먹어나가야 하는데, 내가 호강에 받쳤는지 그게 힘이 든다.


싸주신 냉이를 끌러보니 이게 묵직하긴 했어도 분명 한 봉지였는데,

어찌나 꽉꽉 눌러담았는지 그 양이 한 다라이다.

시어머님 좀 드리게 한 봉지 담고,

당장 우리 먹을 한 뭉치를 꺼내고도 여전히 한 봉지라 갑자기 내 속에 부아가 치밀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무슨 냉이를 이리 많이 해, 몸 아파가면서. 얼마나 무겁게 들고 와가지고, 며칠을 다듬고, 감기 걸리고. 진짜 엄마는 왜 욕심을 부려. 그냥 한 번 맛있게 먹을 만큼만 해주지. 난 어차피 냉동실에 뭐 들어가면 못 찾아먹어. 특히 나물, 파, 고추, 떡 이런 거 냉동실 들어가면 결국 안 먹고 못 먹어, 그러니까 자꾸 가져가서 냉동실에 넣으라고 좀 하지마."

"아이고, 해줘도 지ㄹ...(하다가 얼버무리신다, 지금은 딸이 임산부라 조심하셨다.) 이제 안 해줄꾸마!"

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그래도 앞으로도 손이 큰 걸 어찌 못 하실거다.


전화를 끊고 내 맘도 편치 못하다.

평생 농사로 고생하셔서 허리야, 어깨야, 무릎이야 돌아가며 편찮으시다는 우리 엄마.

엄마가 이 세상에 안 계시게 되면 지금의 이런 퍼주심들을 버거워한 내 마음이 죄송함으로 남고

이 모든게 아쉽고 그리울 거라는 걸 알지만,

울 엄마 진짜 좀, 적당히 좀, 손 좀 줄여주소.

그저 엄마도 건강이나 더 챙기고, 재밌고 행복하게 사시소.

엄마가 웃으며 잘 살아야 나도 맘 편히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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