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생일을 맞아 가족과 외식을 하러 갔다.
화장실이 건물 안 공용화장실이라 찾아가려면 좀 헤맬 수도 있는 곳에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작은 아들이 먼저 화장실에 다녀왔다.
"엄마도 화장실 다녀올께, 화장실 어디에 있어?"
"화장실이 가게 밖에 있어서 좀 헷갈릴 수 있는데, 내가 같이 가줄까?"
"아니야, 넌 자리 지키고 있어. 엄마 혼자 다녀올게"
그리고 화장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나보다 먼저 화장실을 찾고 있던 큰 아들이 보였다.
"너 화장실 찾아? 엄마도 화장실 찾는데, 이 쪽은 아니야?"
라고 말하는데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아이가 사라진 쪽을 보니 화장실 표지가 있어서
"아유, 나 좀 데려 가지, 혼자 가버리냐."
혼잣말을 하며 뒤따라 나갔다.
마침 먼저 화장실에 다녀오던 남편과 마주쳤다.
"큰 아들이랑 화장실 찾고 있었는데 자기 혼자 이리 가버린 거 있지. 너무해."라고 일러버렸다.
"아유, 울 아들 아직 멀었어."
라고 대답한 남편이 화장실 가는 코너에서 나를 기다리겠다고 했다.
"아니야, 먼저 가, 나 혼자 갈 수 있어."
"아니, 기다릴건데?"
그런 남편을 두고 볼 일을 마치고 나오니, 말씀하신 대로 통로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말은 가라고 했지만, 정말 있으니 큰 아들에게 서운했던 기분도 다 풀리고, 마음이 달달해졌다.
"진짜 기다렸네!"
"기다리지, 그럼."
"큰 아들은 화장실에서 나왔어? 갔어?"
라고 하며 둘이 걸어오는데 아들이 되돌아 오는 것이었다.
"왜 돌아와?"
"같이 가려구."
아들은 이런 것 같다. 타고난 배려와 다정함이 아니더라도 부모의 행동, 특히 아내를 대하는 아빠의 행동을 보고 배워나가는 것 같다.
우리 아들이 아빠를 보고 배워 훗날 자기 아내에게 이런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면 염려없이 장가 보내도 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제일 먼저 화장실 다녀온 둘째는
애초에 엄마에게 "같이 가줄까?" 를 했었다.
모태 배려와 챙김이 있는 둘째 아들, 네가 1등 먹어라.
ps. 이 글 읽고 서운해버린 우리 열세살 큰 아들의 숨겨둔 다정 10가지 공개
1. 하루 한 번 이상 "엄마, 아빠 사랑해"를 표현해줍니다. (둘째도!!!)
2. 아침 식사 후 종종 핸드 드립 커피를 내려줍니다.(둘째는 점심에!!!)
3. 엄마의 무거운 짐을 기꺼이 들어줍니다.(둘째도 가끔~)
4. 등교길에 분리배출을 해주곤 합니다.(둘째도 가끔~)
5. 같이 낮잠 자려다 본인 혼자 그만 일어날 때 눈 감은 엄마볼에 뽀뽀를 해주고 자리를 뜹니다.(둘째도!!!)
6. 주말에 늦잠 자고 싶은 엄마아빠를 대신해 밥솥에 밥을 안쳐줍니다.
7. 밤새 늦둥이 셋째 동생 돌보다 모처럼 낮잠에 든 엄마아빠를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조용 집에 있다가 태권도학원에 갔다왔지요.(둘째도~~)
8. 아직 엄마아빠와 자고 싶은 열세살입니다.(둘째도)
9. 종종 닭다리를 사양하며 엄마아빠에게 양보합니다. 배부른 척하며 맛있는 반찬을 엄마아빠에게 챙겨주기도 합니다.
10. 할아버지, (외)할머니께 예의바르게 안부 전화를 드리곤 합니다.(둘째는 폰이 없어 ㅠㅠ)
큰 아들이 ps를 읽고 기분이 좀 좋아졌다고 합니다.
칭찬에 금세 기분이 풀려 촌스럽게 웃어주는 우리 큰 아들에게 참 고맙네요. 딱 네 아빠다. 넌 좋은 남편이 될거야.
※( )안의 둘째도!!는 둘째 아들이 뒤늦게 덧붙였습니다. 둘째는 브런치글을 안 읽겠다고 사양하더니 최근에 형이 관심을 보이니 본인도 덩달아 좀 읽네요. 자기도 형처럼 하는데 위 글에 언급해주지 않아서 서운해하기에 괄호 안에 본인이 직접 덧붙이도록 했습니다. (202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