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맛없고 비싼 액체'
종종 엄마아빠를 위해 핸드 드립 커피를 만들어주는 두 아들의 커피에 대한 평가.
그럼에도 아들이 커피를 내려주는 이유는 그 커피를 받아들며 고마워하고 행복해하는 부모 때문이다.
내 어린 시절 우리집 커피는 커피,프리마, 설탕의 3요소가 어우러진 커피였고 어린 입에도 프리마와 설탕을 잔뜩 넣은 커피는 맛있게 느껴졌다.
고등학생이 되어 졸음을 쫓으려 자판기 밀크 커피를 뽑아마시고, 대학시절에도 쉬는 시간이면 자판기 앞에 삼삼오오 모여들어 150원짜리 일반커피를 뽑아마셨다.
교사가 되고 나서는 동학년 선생님들과 막간의 쉬는 시간에 노란색 커피믹스를 함께 타마시며 당을 채우곤 했다.
고향에 파견근무를 하며 부모님과 지낼 때 손님이 오셔서 내가 노란 믹스 커피를 타드리면 딸이 엄청난 효도라도 행한 듯 즐거워하셨던 우리 아빠.
쓰고 구수하고 때론 산미가 있는 원두커피의 본맛을 모르던 그 이십대 시절, 한번씩 뉴스에 커피의 효능 같은 게 나오면 그게 달달한 믹스커피에도 해당되는 얘기인 줄 알고 막 많이 마셔도 되겠다며 좋아했는데, 지인이 믹스커피는 해당이 안 된다고 잘라말해서 아쉬워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 어떤 세련된 젊은 남선생님이 동학년 연구실에 자비를 들여 커피메이커를 앉혀놓고 신선한 원두로 내린 커피를 즐겨마시는 걸 보게 되었다. 그 공기에서는 고소한 참기름 방앗간 같은 냄새가 나서 그 때부터 신선한 원두커피는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2007년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즈음하여 프랜차이즈 커피붐이 일기 시작했고 나와 친구들은 아메리카노보다는 휘핑크림을 듬뿍 얹은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곤 했다.
그러다 10센치의 아메리카노 노래 때문이었는지 언젠가부터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되었다.
아메리카노 좋아 좋아 좋아
아메리카노 진해 진해 진해
어떻게 하노 시럽시럽 싫어
빼고 주세요 빼고 주세요
신혼 시절, 친구가 시내 한 까페의 핸드드립 강습에 같이 가보자고 하여 어영부영 따라가보았다가 사장님의 말빨에 홀려 핸드드립커피를 추앙하고 이에 필요한 드립서버, 드립퍼, 거름지, 핸드드립주전자, 핸드밀, 원두 등을 사가지고 집에 오게 되었다. 사장님이 내려준 커피와 사뭇 다른 맛이 났지만, 배운 대로 불림, 1차 드립, 2차 드립 등을 시전하며 남편에게 커피를 내려주었더니 언젠가부터 남편이 나보다 더 자주 커피를 내려주게 되었다.
바쁜 출근길에도 아침을 먹고 나면 같이 커피를 내려먹곤 했었는데, 첫 아이를 임신하고는 아예 커피를 입에 대지 않았다. 워낙 기다리던 임신이었기에 커피 뿐 아니라 음식점 음식도 잘 사먹지 않았어서 커피가 막 아쉽고 그렇진 않았다. 그런데 둘째 아이의 경우는 달라졌다. 임신 중에도 하루 한잔 정도 홀짝이더니, 수유 중에도 커피를 마시는게 하루 한번은 해도 되는 일처럼 여겨졌다. 하루 한잔의 커피를 마시든 마시지 않았든 두 아이는 별 차이가 없었고, 임산부가 커피를 마시면 아이가 까매진다는 엉터리 터부와 상관없이 오히려 둘째의 피부가 더 희다.
그리고 다시 임신과 출산, 모유수유.
주변 사람들은 나와 아기를 염려하여 커피 마셔도 되냐고 먼저 묻곤 한다. 그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그 바람에 한 잔 커피를 마시는 것에 내가 이래도 되는건지 스스로 아리송해져서 한 잔을 다 먹지 못하고 반 잔만 먹을게요하며 편하게 막 먹지도, 아예 안 먹지도 못하는 중간에 껴있다.
매일 핸드드립을 하는 우리집에서 신생아 모유수유를 하고 있는 요즘은
아직 한 잔 가득은 아닌 한모금, 그러다 두 모금, 세 모금 커피를 마시고 있다.
난 꼴랑 한모금 커피를 왜 굳이 마시는걸까?
씁쓸한 커피 한 모금에 따라오는 달콤한 초콜렛 한 조각 때문에? 그것도 좋긴 한데, 그보다 내가 놓치기 싫었던 건 함께 커피를 나누는 그 시간인 것 같다. 커피를 내리는 시간과 정성을 함께 맛보고
"커피 내려줘서 고마워."
"커피 맛있게 잘 내렸네!"
남편과 서로 눈을 맞추며 감탄하는 순간을 공유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고 이 글을 적으며 명료화해본다.
오늘 아침, 새벽 수유를 하고 늦잠을 자고 일어나 뒤늦게 아침식사자리에 합류했다. 이미 식사를 마치고 핸드드립 커피를 내린 남편이 내 몫으로 따라둔 커피부터 한 모금 마시며 커피 자체의 여유를 오랜만에 느꼈다. 마치 유럽여행의 호텔 조식에서마다 마주치던 커피에서 느낀 당연함 같기도 했고. 아, 밥 한 술 뜨기 전에 커피 한 모금부터 마셨더니 유럽여행이 소환되어온 거구나!
암튼 좋았다. 남편을 보며
"커피 너무 맛있다. 당신이 커피 내려놓아서 너무 좋다!"
라고 말할 수 있어 감사한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