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수유를 하는 요즘, 우리 꽃봄에게 엄마의 존재는 본인의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분유나 유축 수유를 병행한다면 상황에 따라 누군가 엄마를 대신하여 아가를 안고 먹여줄 수 있지만, 오직 엄마품에서 모유만 먹는 지금은 하루 12번, 총 4~6시간 가량 걸리는 수유시간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온전한 엄마의 몫이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엄마의 시간, 체력, 끈기를 요구한다.
분유수유로 이 역할을 다른 양육자와 분담할 수 있고, 게다가 모유수유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통밤잠을 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직수완모에 현타가 오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겐 모유수유로 아기를 키우는 기쁨이 크기에 그것만으로 분유수유를 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셋째 모유수유를 하면서 첫째, 둘째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유두 통증을 겪게 되어 삼칠일 즈음까지 칼로 도려내는 아픔을 느껴야했다. 하루하루 지나면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텼지만, 나아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더 버텨야하나 너무 막막했다. 모유수유를 포기할 자신이 없었지만 이대로라면 불가항력으로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통증에 이성을 잃어가며 모유수유를 계속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모두 나에게 우울감을 줄 것 같았다. 가슴통증으로 모유수유를 포기해야했던 엄마들에게 완모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짓일 수 있는지 깨달으며 긴 통증의 늪을 지났다.
아기의 단설소대로 깊은 젖물림이 되지 않아 생겼던 문제로 소아과 시술 후 원인이 제거되고 상처가 아물면서 이제 그런 극심한 통증은 없다.
다만 시도 때도 없는 젖물림을 하고 있다.
젖먹이다 보면 잠들어버리고 눕히고 돌아서면 깨서 잠투정하고, 놀아주려해도 젖물고 자고 싶어하고, 안아재워 눕혀도 끄앙 깬다. 이제는 엄마, 아빠를 식별해서 젖물잠을 원할 때 아빠가 안아서 재우려하면 끝내 울다가 엄마가 안아들어야 젖을 주겠나보다 하고 그치지만, 시한폭탄처럼 제한시간 안에 젖을 물리지 않으면 다시 울음에 시동을 건다.
젖물잠을 하려다가도 배가 너무 불러서인지 젖을 빨다가 쁘앙 울 때는 엄마든 아빠든 안아재우면 되는데 잠들었다고 고이 눕혀놓고 살며시 빠져나와 이제 이 잠은 두 시간은 잘 잠인가 하고 방심하는 순간을 노려 곧 잠에서 깨어 다시 날 재우거라 한다. 혹시 좀 놀다자면 안 되겠냐고 세운 무릎에 앉혀 눈을 맞추면 10분을 못 놀고 금세 난 자야되겠다는 모드. 이 모든 눈치싸움이 불과 한 시간도 안 걸려 일어나는 과정이고 아직 낮잠을 몇 번 잔다고 말할 수 있는 루틴도 없는 시기인지라 하루에도 몇 번을 이 행위를 반복한다.
요즘 유튜브가 발달하여 십년전 육아 때와 달리 아는 것은 많아져서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자책까지 드는 건 덤이다. 소아청소년전문의나 수유전문가 분들이 먹놀잠과 수면교육을 강조하며 부모가 미리 공부하고, 아기가 우는 거 겁내지 말고 당연하게 되는 거라 여기고 행하면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강연 들을 때의 오홍~하는 마음과 달리 실전은 결국 아기에게 따라가고 만다. 울다가 목이 쉬는 게 보이고, 숨 넘어갈 듯 온몸을 바르르 떨며 음소거 울음을 우는 걸 보면 아기의 세상이 무너지기 전에 엄마가 여기 있다는 걸 엄마품과 젖으로 얼른 알려줘야할 것만 같다.
돌아서면 밥 차린다고 돌밥돌밥이라더니 우리 아기는 돌젖돌젖이다. 삼시세끼 아니고 10끼, 13끼?
그래도 참 용하게도 딱 30일을 채우고 31일차 되는 날 엄마가 저녁을 먹는 내내 바운서에 앉아서 기다려주었다. 그 다음날도 엄마의 세 끼 중 한 끼는 그렇게 기다려주었다. 그 행동이 얼마나 고맙고 부모의 여유가 되던지.
그렇게 밥을 먹고 다시 낮잠 전쟁이 시작되어 위에 서술한 젖먹기-잠들기-깨기-기저귀갈기-안아재우기-깨기-젖물려재우기-살며시 나왔다가 깨서 다시 안아재우려다 안 되어서 젖물려재우기를 하고는 결국 엄마도 옆에서 잠이 들었다. 집안일, 독서, 브런치 읽기와 쓰기, 스마트폰 삼매경이든 뭐든 아기가 허락해야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팽개치고 그냥 아기랑 낮잠에 들었더니 결국 두 시간 가까이 자버렸다. 꿈까지 꾸며 자다가 깨어보니 아기는 아직 깊이 자고 있었다.
아기가 허락한 건 자기와 엄마가 함께 자는 낮잠이었나. 문득 아이가 엄마를 쉬게 하려고 엄마를 낮잠 재우려고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곤히 잠든 아기를 보며 남편이 아기는 주변에 기척이 있어야 자기가 혼자 있지 않다는 안도감이 들어 맘놓고 잘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데, 그 덕분에 엄마도 아기 핑계로 당당하게 누워잘 수 있나보다하는 고마움을 가지기로 했다.
(인 줄 알았는데, 웬 걸 엄마가 옆에 누워 같이 좀 자보려해도 금세 깨어나 젖을 또 달라는 건지, 안으라는 건지, 놀고 싶다는 건지, 기저귀가 젖었는지..누워있게 두지를 않는군. 고마 같이 좀 자자요~)
돌젖돌젖 사이사이 기저귀 갈고, 놀아주고 재우고, 눈치껏 삼시세끼 찾아먹고 하다보면 매일매일이 너무 비슷해 시간이 삭제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 시간이 제대로 흘렀다는 증거는 하루하루 살이 붙고 자라는 아기, 어제와 다르게 눈을 맞추고 유의미한 웃음을 웃어준 너. 콩나물에 물주듯 부모의 시간을 부어 널 키우고 있다.
엄마는 둥지에서 알을 품는 새처럼 너와 함께 집안을 지키고 아빠는 먹이를 구해오는 새처럼 장을 봐오곤 해. 네가 좀더 자라면 우리 함께 집 밖을 누벼보자.
요즘 브런치 라문숙 작가님의 출간도서 [전업주부입니디만]을 읽고 있다.
...기다린다는 건 시간을 들인다는 거고 시간을 들일 수 있다는 건 시간이 많다는 뜻이니 야채 기르는 건 호사다. 그 귀한 시간을 마구 써가면서 마당에서 풀 뽑고 마른 가지를 자르고 물을 주는 것이다. 이보다 더 사치스러운 삶은 찾아보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으로 종종 흡족해하는 것도 요맘때다.
-마당에서 사치스럽게 <전업주부입니다만 p.83>
난 나의 귀한 시간을 우리 꽃봄이를 위해 마음껏 쓰고 있으니 더없이 사치스러운 육아 중이고 이런 사치가 허락된 지금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출산휴가 동안 산후도우미도 없이 아내의 산후조리와 꽃봄이 돌봄에 온시간과 온몸, 온마음을 사치스럽게 헌신해준 남편에게 감사를 전한다.
꽃봄이가 우리 가족에게 와줘서 웃을 일이 많다.
배냇짓 웃음에 모두가 따라웃고
작은 손발이 신기하고, 쌀알만큼 작은 손톱, 발톱에 감탄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빵긋한 배를 보아도
목욕하는 모습도,
하품하다 젖달라고 울어버리는 것도,
젖달라고 입이 돌아가 숨가쁘게 젖을 찾는 모습,
똘망똘망한 표정 끝에 뿌르르륵 똥을 누고 마는 타이밍이나
아빠 말에 대답하듯 나오는 앙앙 소리들, 이제 막 시작된 순간의 옹알이들,
잠 자는 숨소리, 깰 때 오징어 굽듯 켜대는 기지개, 재채기할 때마다 만세하듯 올라가는 손발,
귀 옆까지 팔을 올리고 자는 나비잠..
몸짓과 표정, 소리 하나하나가 너무 애틋하고 그리워질 것 같아서 사진과 영상에 더 담아놓고 싶고, 내 기억에 깊이 심어놓고 싶다.
손갈 것 없는 첫째와 둘째처럼 얼른 자라주면 좋을 것 같지만, 부모가 보채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버릴 것이기에 넌 네 속도대로 자라라, 우리는 눈길과 손길을 주고 너의 순간들을 최대한 우리 안에 담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