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단골 사장님의 건승을 빌며

뿅하고 사라진 뽕사장님!

by silvergenuine

둘째가 수학 문제집 한 권을 클리어하고 외식권을 획득했다.

아이가 선택한 음식점은 두 살배기 때부터 같이 방문해오던 퓨전 짬뽕집.

처음 방문했을 때 은은한 불맛이 나는 색다른 짬뽕들과 겉바속쫀한 꿔바로우맛에 반해 10년 째 단골을 유지해오는 곳이다.

크림짬뽕, 얼큰한 마늘짬뽕, 블랙뽕(짜장면), 꿔바로우, 깐풍새우, 피자 같은 다양한 메뉴가 제각각 맛있고, 학원가의 학생들을 타겟으로 해서인지 가성비도 뛰어난 곳이다.

2018년 학급문집 맛집소개코너에 실은 글

우리 가족 모두가 아끼는 이 단골집이 혹시라도 사라질까봐

항상 손님이 붐비며 오래오래 그 곳에서 장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별 다섯개를 꽉 채워 음식점 후기를 쓰기도 했다.


2020년 연말이었나, 코로나로 전국민이 외식을 접고 배달이 성행하던 때 우리가족은 그 식당 음식이 먹고 싶었고, 뜨거운 음식을 담을 수 있게 남편이 집에 있던 스텐 냄비를 들고 테이크아웃 주문을 하러 갔다.

가보니 가게에 손님이 한 테이블도 없었고, 사장님은 어치피 다른 손님도 없고 음식을 담아가면 면이 불고 맛이 떨어지니 매장에 와서 식사를 하면 좋겠다고 권하셨다. 집에서 남편의 연락을 받고 아이들과 가게에 가보니 정말 매장이 텅 비어있었다. 가게를 전세낸 듯 자리를 잡고 음식을 기다리는데, 하나둘 손님이 들며 어느새 매장이 만석이 되었다.

다른 손님을 끌어들이는 이런 손님이나 현상을 부르는 무슨 용어가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어쨌든 마치 우리가 손님들을 몰고 온 것 같아 기분이 좋고 뿌듯하기까지 했다.

사장님도 이 일이 인상 깊으셨는지 이후 우리 가족이 방문하면 꼭 두 캔씩 음료 서비스를 챙겨주시곤 했다. 손사레를 치며 사양해도 매번 챙겨주셔서 아이들을 위해 한 캔만 나눠먹고 나머지 한 캔은 두고 나왔다. 서비스가 죄송스러워도 워낙 좋아하는 음식점이라 두세달에 한 번은 꼭 방문했다. 챙겨주시는 마음이 감사해서 작년 가을에는 친정에서 따온 단감을 챙겨가 식사가 끝난 후 선물로 드리기도 했었다.

그 곳에서 몇몇 지인들에게 식사대접을 하기도 했었는데 우리 덕에 맛집을 알게 되었다며 자기들도 단골이 되었다고 말해줘서 기뻐하기도 했었고.


우리 가족은 집에서 먹든 외식을 하든 그릇에 담긴 음식은 웬만하면 싹싹 다 먹는다.

더군다나 단골인 이 식당에서는 음식을 남겨본 적이 없다. 면과 건더기까지 싹 먹은 후, 식기들을 종류별로 분류해 컵은 컵끼리, 앞접시는 앞접시끼리 모으고, 수저류는 큰 그릇에 모아넣고, 사용한 휴지로는 식탁에 흘린 소스를 닦아 한 군데 모아두고 나온다.

"제가 치울게요, 그냥 두세요."

라고 여사장님이 만류하면 우린 쑥쓰럽게

"네, 알겠어요."

라고 말은 하지만, 모르는 척 그렇게 정리해두고 나오는 게 마음이 편하고 재미있었다.


이런 우리에게 진심을 다해 음식을 서빙해주시는 여사장님은 언젠가부터 우리 아들들을 눈여겨보다 본인도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며 육아고충에 대해 말씀하시고 공감대를 나누곤 했다.

그러다 자연스레 우리집 셋째 고명딸 임신 소식도 전하게 되었고 사장님 부부는 진심으로 축하해주셨다.


출산과 육아로 최근 외식을 접고 있다가

둘째 외식권을 핑계로 오랜만에 그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 막내딸도 꼭 싸안고 가서 처음으로 인사시켜주려 했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가게는 믿기지 않게도 텅 비어 있고

임대 문의와 부동산 연락처만 붙어있었다.


얼마 전만 해도 장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문을 닫았다고?

어디로 이전을 한 건가?

그러면 안내글이라도 붙여둘텐데

임대 문의 밖에 없잖아.

무슨 일이지?

사장님 첫째도 여기 초등학교 다닌댔는데 그럼 아이는 전학 간 건가?

이렇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신 건 아니겠지?

어디 다른 곳에서 영업하시겠지?


당혹스럽고 섭섭한 마음에 온가족이 걱정을 했다.

아이들이 인터넷에 검색해보라고 성화다.

"엄마, 빨리 인터넷에 검색해봐, 어디로 갔는지 알아보게."

찾아봐도 아직 같은 상호라든가 정보가 없다.

"검색해도 안 나온다. 나중에 같은 상호로 문을 열면 그 땐 검색되겠지."

그 와중에 첫째가 말장난을 했다.

"우리 뽕 사장님이 뿅 하고 사라져버렸어."

"아, 진짜 뿅 사라져버리셨네. 어디로 가셨을까? 너무 서운하다.

나중에 검색해서 어디로 갔는지 알게 되면 우리 그 가게 꼭 찾아가자."

아이들과 다짐하듯 약속을 하며 황망한 마음을 달랬다.


가게 이전인 거면 다행인 거라고, 다른 별 일은 없기를 바랐다.

집에 와서 다시 한번 가게 이름을 검색해보니

작년까지 맛집 인플루언서들이 올린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가족이 이토록 아끼는 식당인데

몇몇 인플루언서들이 '무난하게 맛 괜찮은 짬뽕집', '기본은 한다', '국물에 기름이 둥둥', '옆 테이블이 우리보다 늦게 시켰는데 그 쪽이 5분 일찍 나와서 황당' 등등 무심하게 적은 글들이 눈에 들어와 내가 다 속이 상했다.

물론 '최애맛집', '대존맛' 이런 포스팅도 있었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인 평가가 더 세게 다가오기도 하는게 사실일 것이다.

"맛집 블로거가 가게 와서 갑질하면서 요구 잘 안 들어주면 이런 식으로 포스팅하는 거 아니야? 그런 인플루언서가 손님으로 오면 사장님이 너무 환멸 느껴지겠다."

"요새 손님이 줄어드는게 보였어. 임대료도 나갈텐데 가게가 북적북적해야 유지를 하지, 사장님 요새 많이 힘드셨던 거 아니야?"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억측을 하며 속상해했다.


좋아하는 맛집은 많지만 이렇게 10년 동안 자주 가봤던 곳은 처음이었다.

사장님과 개인적인 얘기까지 할 정도록 마음을 열어본 것도 처음이었는데

이렇게 아무 흔적도 없이 정말 뿅 사라져버리시다니...

서운한 마음도 크지만

염려되는 마음이 더 크다.


부디 어디서든 건강하고, 가족들과 평안하시고,

어딘가에 다시 문을 연다면 크게 성업하시기를 바랍니다.

인터넷을 눈여겨 보다

어디 불맛이 인상적인 퓨전짬뽕집이 있다고 한다면 혹시나 하여 찾아가 보렵니다.

우연히든 필연이든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볼게요.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3화내 생애의 자전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