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바꾸고 싶니? 네네네네네!
교실 자리 바꾸는 걸 대부분의 아이들이 좋아한다.
진짜진짜 친한 친구가 앞뒤옆에 앉아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리 재배치에 어떤 새로운 기대를 품는 것 같다. 아니면 싫어하는 친구와 멀리 앉고 싶거나.
나 초등학교 때는 한 달 정도 기간이 지나면 1→2→3→4분단으로 통째로 이동시켜주셨던 게 기억난다. 짝꿍은 자주 바뀌지 않았는데, 그마저도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정말 1년 내내 같은 자리, 같은 짝꿍을 유지시켜 주셨었다. 분단 한 번만 이동시켜주시면 우리 반에서 젤 괜찮은 남학생이랑 통로를 사이에 두고 앉을 수 있었는데, 그대로 졸업까지 갈 줄이야. 그래도 그 때는 아무도 선생님께 자리바꿔달라 말도 못 꺼냈었다. 아, 라떼...
개학 첫날 아이들은 새로운 교실에 쭈뼛쭈뼛 들어와 아는 친구들의 얼굴을 찾으며 어디에 앉을지 몰라 두리번거린다.
“일단 앉고 싶은 자리에 앉으세요.” 할 수도 있고, 교사가 미리 준비한 좌석 이름표를 찾아 앉게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첫 만남을 가진 후 본격적으로 교실 자리를 정할 때 우선 아이들의 키를 고려하곤 한다. 특히 학급당 학생 수가 많았던 예전에는 키 순서대로 앉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학급당 인원수가 20명 남짓인 요즘에는 책상 간 간격이 넓어져서 시야가 더 확보되기에 키는 살짝 참조하는 정도가 되었다.
한번 자리가 정해지면 학급 규칙에 따라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또 자리를 바꾼다.
코로나 때는 교실 안 거리두기를 위해 짝 없이 앉히도록 하는 지침도 있었는데, 코로나가 감기처럼 받아들여진 후로 다시 짝꿍은 옵션이 되었다. 1학년 담임인 나는 처음 적응 기간에는 한 명씩 떨어져 앉히다가 어느 정도 반 아이들 사이에 친밀도가 올라갔을 때 아이들이 서로 돕고 배우라고 짝을 지어 앉혀주었다. 그리고 기간을 딱 떨어지게 정하지는 앉았지만 대략 한 달에 한 번 정도 자리를 바꾸었다.
랜덤 뽑기를 통해 일대일로 자리를 맞바꾸기도 하고, 뽑힌 순서대로 자리를 이동하기도 한다. 교과 내용과 연계해서 속담의 앞뒤 구절 맞추기, 이야기와 주인공 짝 맞추기 등등 갖가지 방법을 사용해봤지만, 별도의 준비 없이 공평하게 자리를 바꾸는 데는 랜덤 제비뽑기 만한 게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랜덤으로 자리를 바꾸고 나면 교사가 보기에 퍽 난감한 매칭인 아이들이 꼭 있다. 한마디로 서로 너무 좋아 죽거나, 서로 너무 안 맞아서 힘든 아이들이다.
서로 죽이 맞는 아이들이 붙어 앉으면 같이 할 말도 많고 사부작사부작 할 일도 많아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때로는 수업에 방해가 되기도 하는데 수업 시간에 지적을 자주 받게 된다.
반면 서로의 결이 맞지 않아, 또는 성격이 너무 비슷해서 붙어 있으면 꼭 갈등을 빚게 되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 아이들은 틈틈이 교사에게 서로를 고자질한다. 이런 문제는 한 교실 안에 있으면 자연스레 모두에게 공유되는 것이기 때문에 같은 반 아이들의 동의와 교사의 권위를 통해 바로 자리 조정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한 아이가 유독 한 친구에게만 잔소리를 해대는 경우가 있다. 잔소리를 들을 만한 행동을 하는 것도 있겠지만, 유달리 잔소리를 한다는 것은 잔소리하는 아이의 문제인 경우도 있다. 이럴 때 나는 “수업 준비나 태도로 수업에 방해가 된다면 선생님이 직접 얘기할 테니 그걸 네가 직접 친구에게 지적하지 않길 바래. 네가 직접 뭐라고 하면 친구 감정이 상하고 또 친구가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아서 서로 언성을 높이면 수업에 더 방해가 될 뿐이니 말이야.” 그럼에도 쉽게 고쳐지는 관계가 아니기에 다음에 자리배치할 때는 잔소리쟁이 친구 눈에 표적학생이 잘 보이지 않도록 멀찌감치 떨어뜨려 앉게 하는 것이 요령이다.
학부모 민원 중에 아이의 교실 자리 배치를 바꿔달라는 내용이 간혹 있다.
동종업계 교사 학부모에게 자리배치 민원전화를 받았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분개하던 옆반 선생님이 떠오른다.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교우관계에서는 영악함이 엿보였고 수업 시간, 쉬는 시간에 주변에 앉은 친구들과 자꾸 문제를 일으키자 그 학생 주변에 조용하고 줏대 있는 학생들이 앉도록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 뒤, 그 학생의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와서 자기 아이가 주변에 친한 친구가 없어서 심심하다고 속상해하니 조정을 좀 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라면 집에서 아이가 그런 말을 전한다고 하면, 같은 경험을 지닌 교사로서 아이의 학교생활 태도부터 돌아보도록 했을 것 같다.
자녀 말에 그대로 휘둘리는 것은 무엇이며, 그런 이유로 자기 아이만 자리를 바꿔줄 수 없다는 것쯤은 알 텐데 그게 무슨 경우인가 싶었다. 본인들은 끝내 모르겠지만, 이런 일화는 그 아이와 학부모 모두에게 오점으로 남게 된다.
자리배치에 필수적으로 붙는 옵션이 하나더 있으니 바로 시력이다. 교우관계와 수업 집중도를 반영해서 앉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시력은 우선적으로 반드시 챙겨봐야 한다. 우리반에 수업 태도는 나쁘지 않은데 칠판 화면의 글자를 읽어보라 하면 유독 눈을 찌푸리고 제대로 못 읽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교과서 글자는 크게 잘 읽는데 화면에 있는 문장을 못 읽는 것을 보고, 원인이 시력이라는 감이 왔다. 초등학교에서 시력검사는 2학년 때 처음으로 하기에 1학년 때 시력은 바로 파악되지 않는 데다가 부모님들도 웬만한 시력저하는 놓치는 경우가 많아서 안경은 2학년이 되어서 쓰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 친구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일단은 앞자리로 옮기고 나중에 자리를 바꿀 때도 앞자리에 계속 앉을 수 있게 배려해주었다. 이 때 시력 좋은 아이들에게 자리 배려를 부탁하면 뿌듯하게 협조해주는 경우가 많다.
한편, 1학년 우리반에 한글 읽기가 아직 서툰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날부터인가 화면의 문장을 읽으라고 하면 “안 보여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얘도 시력이 나빠졌나하고 걱정이 되는 한편 혹시나 싶어 그 아이가 잘 읽는 쉬운 낱말과 숫자들을 보여주었더니 막힘없이 술술 읽는 것이었다. “시력 괜찮네.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안 보인다고 말하지말고, 어떻게 읽는지 배우도록 하자.” 하고 타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