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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검사 이야기

도시락은 싸기 싫고, 급식은 맘에 안 들고, 먹을 만큼 먹고 버리렴?

by silvergenuine

요즘엔 민원 때문에 급식 검사를 하지 않는 선생님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급식 검사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급식을 다 먹은 학생에게 ‘알’이라는 보상을 주기도 했는데, 결국 알을 받는 아이들만 계속 받고,

안 먹는 아이들은 그냥 알을 포기하는 것 같아서 알 제도는 몇 년 전부터 그만 두었다.


대신 급식을 고루 다 먹은 아이들은 바로 검사를 통과해서 남는 점심 시간을 자유롭게 누리게 하고,

덜 먹은 친구들은 담임이 다 먹을 때까지 조금씩이라도 더 먹으며 기다리도록 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보상이 쉬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 방법이 알 보상보다 오히려 효과가 좋았다. 대충 검사받고 가보려고 나에게 간을 보던 아이들도

“이것도 먹어야지, 아니면 그냥 앉아서 기다리든지.”

라고 하면 금세 싹 먹고 다시 검사받으러 오기도 잘한다.

통계적으로 빨리 먹는 친구들은 10분 이내에 다 먹고 가고 없고, 보통 속도의 친구들은 20분 이내, 끝까지 먹는 시늉하며 앉아있다 나와 같이 급식실을 나서는 친구들은 25~30분 정도의 시간을 식사에 사용한다.

내가 밥을 꽤 천천히 먹기에 이 방식을 사용해도 나는 괜찮은데, 다만 급식실 테이블을 닦아주시는 위생 도우미분들께서 매번 꼴찌로 다 먹는 우리반 주변에서 행주와 바가지를 들고 서서 상당히 눈치를 주신다. 아이들은 그걸 신경쓰지 않지만, 난 눈치를 보며 우리반 말고 어느 반이 더 남아있나 계속 두리번거리게 된다.

3학년 담임할 때만 해도 이 방법이 퍽 효과적이다 싶었는데 1학년 담임이 되고 보니 아이들 식습관이 정말 말이 아니었다. 가정과 어린이집에서 하던 방식대로 먹고 싶은 만큼만 먹고 남은 잔반을 고스란히 들고 와서 “그만 먹고 싶어요.”, “배 불러요.”, “저 이거 원래 안 먹어요.”라고 말하며 음식이 잔뜩 남은 식판을 내 앞에 내밀었다. 학급의 급식 규칙을 교실에서 설명하고 왔음에도 그게 자신의 행동과 연결되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이니깐, 하다보면 규칙을 익히겠지 생각하며 덜 먹은 아이들에게 자기 급식 자리에 앉아 조금이라도 더 먹거나 그냥 기다리라고 했다.


입학하고 급식을 한지 나흘쯤 지났나, 한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아이가 급식에서 국수를 남겼고, 다른 반찬들이랑 다 섞었는데 선생님이 그것을 먹으라고 해서 눈물을 흘리며 남은 국수를 조금씩 먹었다는 것이었다. 그런 전화를 받자니 속이 상했다. 어머니 역시 자기 아이가 내 말을 잘못 알아듣고 그랬던 게 아닐까 하여 전화를 해본 것이라고 했다. 아이가 다녔던 어린이집에서 급식 관련한 아동학대 이슈가 있어서 아이와 자신이 이 부분에 트라우마가 있다고도 했다. 어머니에게 급식 지도 방법을 설명하고, 나는 남은 반찬이랑 섞인 것을 먹으라고 하지 않았으며, 이미 잔반을 섞어놓아서 먹지 못하니 그냥 선생님이 가자고 할 때까지 자기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했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가 검사 받을 때 잔반을 모두 섞어오는 바람에 더 먹어볼 수 있는 것도 못 먹게 되니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아줄 것도 당부했다. 그 통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그 뒤로 아이는 잔반을 섞어오지는 않았으나 음식 섭취에 상당히 보수적이어서 싫어하거나 안 먹어본 음식은

끝내 입에 잘 넣지 않고 급식실에서 시간을 떼웠다. 먹지 않으면서 담임을 기다리는 시간이 지겨울 만도 한데, 그 아이 뿐 아니라 거의 절반 이상의 아이들이 급식실에서 하염없이 그냥 시간을 보냈다. 지켜보는 내가 더 시간이 아까웠다.

그러다 3월 중순, 학교교육과정 설명회를 하고 교실에 모인 학부모님들께 급식 지도에 대한 내 입장을 전했다.

난 세 가지 이유에서 아이들이 급식을 잘 먹기를 바란다.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서,

급식실 직원분들의 노고가 헛되이 버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 지구를 보호해야 하니깐.

1학년 수준에 맞게 상당히 적은 양을 배식하고 있으며 더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더 받으러 갈 수 있다. 배식받은 음식을 깨끗이 먹는 것은 아이들 각자의 몫이니 아이들이 함께 노력해주길 바라며, 가정에서도 담임과 아이를 믿고 격려해주길 바란다고 말씀드렸다.

여전히 그 어머니는 불안하고 불만이 있어 보였다.

“00 어머님, 더 안 먹는 친구들도 있어서 저는 그게 더 걱정이에요, 00이 잘 하고 있으니 너무 염려마세요.”

라고 호소했다. 제법 잘 먹는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들 급식 검사하려면 선생님 고생이 많으시겠네요.”

라고 웃으며 말씀해주시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지나간 어느 3월 하순의 오후, 교무부장님께서 갑자기 내 폰으로 전화를 하셨다.

“지금 교장실로 빨리 오세요. 그 반 학부모들 우르르 몰려와서 지금 교장실에 앉아 있어, 빨리 와봐요.”

‘그래야만 했나요? 알았어요, 하고 싶은대로 다해보세요, 난 할 만큼 했고, 그게 싫다면 내가 그만 할래, 속상하고, 학급 운영에 아무 노력도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 무기력해. 교장실 가서 학부모님들 얘기 다 들어주고, 당신 아이들에게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건 없을 것 같으니 난 정신과 진단서 떼고 이만 병가 들어갈게요, 새로운 담임과 잘 해보세요.’ 라고 혼자 마음을 정리했다.

빨리 오라고 재촉했건만 화장실에 들러 거울 한번 보고 ‘됐어, 괜찮아.’라고 추스른 후 교장실 문을 노크했다.

굳은 얼굴로 문을 빼꼼히 열고 안을 살피는데, 웬걸, 학부모님은 한 분도 안 보이고 우리 학교 부장선생님들이 다 모여계셨다. 부장회의인 걸 내가 모르고 있었나보다, 신참 부장인 내가 늦자 선배부장님들께서 나를 놀려먹은 것이었다.

“아, 뭐에요!”

“빨리 와. 놀랐어? 표정이 왜 그렇게 심각해?”

“안 그래도 급식 지도 때문에 민원 들어올까봐 요새 신경쓰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래서 학부모님들 진짜 온 줄 알았죠.”

“아이고, 무슨 생각을 하며 온거야? 어쩌려고?”

“그냥 날 잡아무라 하고 왔어요. 병가도 쓰려고 했구요.”

날 바라보시는 교장 선생님 눈빛은 위로로 받아들였다.

곧 부장회의 안건으로 넘어가 회의를 진행했다. 너무 주목을 받아서인가 쿵쾅거리는 심장을 안도와 함께 가라앉히며 귓등으로 회의에 참석한 것 같다.


그 뒤로 급식 지도 관련 민원은 한 번도 없이 1년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한번 더 소동이 있긴 했었다.

아무리 지도를 해도 우리 1학년 꼬꼬마 아이들이 정성스런 반찬들을 고스란히 남길 때가 많아서 안 먹을 거면 받지 말라고 했더니, 국은 당연스레 받지 않고 반찬은 세 가지 중 한 개만 받아 먹고는 양념도 안 묻은 너무 깨끗한 식판으로 검사를 받는 아이들이 점점 생겨났던 것이었다. 결국 딱 1가지만 안 받을 수 있다는 규칙으로 바꾸었더니 또 그냥 앉아서 기다리는 친구들이 다시 많이 늘긴 했으나 그래도 3월보다는 많은 발전이 있었다.

혼자서는 식사에 집중을 못해서 남들 다 가도록 몇 술 먹지 못하는 걸 보고 내 자리로 불러 반찬을 올려 밥을 떠주면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친구가 있었다. 그게 용하다가도 다시 혼자 두면 또 식판의 음식이 그대로 있기 일쑤여서 왜 혼자서는 꾸준하게 못 먹나 갑갑하기도 했다. 설마... 내가 계속 먹여주길 바라서? 내 잘못인가...

한편

"요것만 먹어봐"

하고 내가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내밀면 두려움에 질린 눈빛으로 끝내 입을 다물고 있던 남학생이 있었는데, 이 아이는 그래도 12월이 될 무렵, 새로운 음식을 입에 넣을 수 있는 경지에는 이르게 되었다. 그러면서 꼭 하는 말이 “어, 맛있는데?”였다. 그러면서 더 먹지는 않아서 그 말에 별로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1학년이라 더 심한 것도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은 방식으로 급식 검사를 하는 어느 6학년 담임반에서는 매일 27명 중 23명 정도가 정말 김치 하나 안 남기고 깨끗이 다 먹는다고 했다. “나도 6학년 담임할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아, 1학년이니깐, 내년에는 조금 나아지겠지. 끝내 편식하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좋은 습관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이 있을 거야. 어쨌든 나 올해 너무 힘들었다. 괜히 너무 애쓴 것도 같고. 내년에는 또 어떠려나?”

계속 애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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