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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서 성적이란

작은 성취를 채워나가는 널 응원하고 싶어.

by silvergenuine

6학년 과학 전담을 한 적이 있다.

전구와 전지의 직렬, 병렬연결에 따른 밝기의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모둠별로 전기회로를 연결해보고 실험관찰책에 같이 기록을 했다. 4인 1조의 모둠 실험활동을 살펴보며 학생들이 흥미를 가지고 잘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줄로 연결한 직렬, 나란하게 연결한 병렬의 의미도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배운 것을 바탕으로 지필 평가를 쳐보니 개념을 잡지 못하고 반도 못 맞추는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수업을 한다고 했는데 결과가 그러하니 힘이 빠지고,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생각했던 아이들에게 배신감마저 들었다. 평소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발문에 대답도 잘해서 당연히 학습 내용을 잘 습득했다고 여겼던 한 학생에게 의아한 마음에 물어보았다.

“너 이 문제를 왜 틀렸니?”

“문제를 대충 봐서 틀렸어요.”

어떤 오개념이 있어서가 아니라, 문제를 잘못 봐서 틀렸다라...

모른다고 하는 것보다 자신이 점수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시험을 대충 봤다고 하는게 자신의 능력치를 들키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고 여겨서 그렇게 말해버린 걸까?

쿨한 듯 그냥 문제를 대충 봤을 뿐이라고 말하는 아이의 태도에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회식 자리에서 그 반 담임 선생님과 담소를 나누며 이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다.

“과학 시간에 직접 실험 다해보고 발표도 하면서 저는 아이들이 잘 이해한 줄 알았는데, 시험 점수를 보고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막 틀릴 수가 있을까요? 문제 좀 잘 읽고 잘 풀어보지, 알면서도 그렇게 틀린 걸까요?”

그 선생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셨다.

“살면서 시험 문제 한 두 개 더 맞고 틀리는게 그렇게 중요한가?”

앗, 뭔가 핀트가 어긋나는 느낌!

옆에서 같이 듣던 다른 선생님도 말씀하셨다.

“그래, 시험 점수 안 중요하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 하면서 즐겁게 살면 되지.”

두 분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 자리에서 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뭔가 답답하고 억울했다. 나만 못된 교사가 된 기분. 뭐지? 왜 억울하지?


그날 밤, 무거운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깨어났는데 내 생각들이 정리되어 떠올랐다.

나는 처음부터 학생들의 점수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태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였다.

이불킥을 하는 마음으로 내 생각을 혼잣말로 정리해보았다.


“저는요, 배운 내용을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시험 문제를 틀려서 제가 ‘이걸 왜 틀렸니’라고 했을 때 ‘문제를 대충 봐서 틀렸어요’ 라고 말하는 걸 듣고 그 태도에 대해서 실망스러웠다는 걸 말하고 싶던 거였어요. 만약 아이가 좀더 진지하게 자기가 그 문제를 왜 틀렸는지 생각해보고, 문제를 잘못 봤다면 뭘 잘못 봤는지, 내용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면 뭘 잘못 알았었는지 성의있게 생각하고 말해주었다면 실망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나는 열심히 가르쳤는데 그 학생은 그걸 가볍게 대했다는 서운함을 떠나서, 아이가 다른 뭔가를 대할 때도 그렇게 대충 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가 시험으로 학생들을 평가한다는 것은 아이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배우고 살아가는가를 보려는 것 같아요. 잘해보려는 마음으로 성의를 다하는 태도가 다른 과업들에도 전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회가 그걸로 줄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물론 사람마다 서로 잘하는 분야, 좋아하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학교 시험으로만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다는 거 알아요. 하지만 초등학교 수업 내용은 전문적인 분야가 아니라 기초학력과 일반상식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에 그 정도는 배우고 적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하고 싶은 분야를 꾸준히 파고 들어서 두각을 나타내고 진로를 잡을 수 있다면 학교 공부 좀 못해도 상관없는 건 맞아요. 하지만 어차피 수업 시간에 앉아 있을 거라면 그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박지성 선수가 수업 시간에 억지로 앉아 있어야 해서 그 시간에 축구 전술을 연구하고 있었다면 나름대로 시간을 잘 사용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저 딴 생각에 빠져 있거나, 내용이 이해 안 된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마음으로 시간만 때우면서 수업 시간을 흘려보내면 그건 너무 아깝잖아요.

어차피 해야 한다면 좀 잘해보려는 마음가짐과 실행력을 길렀으면 좋겠어요. 그런 태도가 다른 상황에도 전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의 수업 태도가 좋다’는 말은 결국 ‘사람과 삶에 대한 태도가 좋다’는 말로 나아가게 되는 거라고 봐요.

오은영 박사도 그런 얘기하시더라구요, 학창 시절에 열심히 공부했는데 지금 그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치열하게 공부했던 내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힘으로 다른 것도 해내고 노력하는 자신을 격려하고 뿌듯해할 수 있었다고요.


열심히 하는 그 태도가 아이의 인생에 필요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제 말이 두서 없이 들리셨을 수 있겠지만, 제가 말한 점수가 숫자만을 얘기한 게 아니라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요.”


4년 전에 이불킥하며 오타투성이로 메모해두었던 생각을 이 곳에 새로이 정리하며 글을 썼어요.

생각을 제대로 표현 못해서 새벽에 이불킥했던 저, 이 일로 인한 이불킥은 이걸로 끝!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적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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