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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하는 아이들

by silvergenuine

얼마전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강남학군지에서의 경험을 책으로 엮어내신 한 선생님의 인터뷰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1학년 입학준비] 정서진)

강남 학군지에서 십 여년간 학생들을 교육해오면서 아이들의 인성과 행동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가정에서 자녀의 인성, 기본생활습관, 기초학력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하는지 말씀해주셨다. 공감가는 내용도 있었고, 어떤 내용은 우리 학교 1학년 아이들과는 참 달라서 신기하기도 했다.

가장 놀라웠던 내용이 1학년 아이들에게 심부름 하나를 시키려해도 아이들이 상당히 귀찮아하며

“아, 왜 나한테 시켜요? 안 하면 안 돼요?”

라고 하며 겨우 심부름거리를 받아 교실문을 확 열고 나가서는 문을 닫지도 않고 그대로 갔다 온다는 것이었다.

학군지라고 할 수 없는 우리반 1학년 아이들에게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다. 우리반 아이들은 선생님의 심부름을 너무너무너무 하고 싶어한다.


입학 초기에는 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라 심부름을 시킬 수가 없었기에 처음에는 내가 직접 다 해야 했다.

할 일을 들고 내가 교실을 나서면

“선생님 어디 가요? 선생님 따라가야지!”

하며 졸래졸래 따라오는 아이들이 기본 서너명은 되었다. 어떨 때는 예닐곱 명이 내 뒤를 졸졸 따르니 난 꼭 엄마닭이 된 것 같았고, 옆반 선생님은 우릴 보고 ‘백설공주와 난쟁이들’이라고 별명을 지어주시기도 했다.


1학년 1반 옆에 옆에 있는 1학년 3반이 어디 있는 줄도 모르던 아이들이 어느새 2학년 교실도 찾아가고, 교무실, 분리배출장소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되고, 보건실도 자기들끼리 찾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점차 아이들끼리만 심부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심부름에 대한 아이들의 의욕이 대부분 엄청 강하다. 또 유달리 인정욕구가 강해 친구 심부름을 빼앗아가면서까지 자기가 하려는 아이도 있어서 그런 행동을 교정해줘야할 때도 많았다.

옆 반에 안내장을 전해줄 일이 있으면 아이들을 둘러보며 누굴 심부름 보낼지 고민을 한다.

일단은 매일 번호 순서대로 바뀌며 돌아가는 일일반장을 주시하며 심부름을 할만한 상황인지 살핀다. 그 아이가 친구들과 한창 재미나게 놀고 있는 상황이면 방해를 하고 싶지가 않다. 대신, 놀고 있는 친구 무리에 쉽사리 끼지 못하고 곁에서 기웃거리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를 부른다.

“이거 옆 반 선생님께 좀 전해주세요.”

하며 안내장을 건네면 그 아이는 빛나는 얼굴로 심부름거리를 받아들고 뿌듯하게 교실문을 나선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선생님, 저도 같이 가면 안 돼요?”

하며 조르고,

“그래, 옆반 앞문까지만 같이 갔다와.”

라고 허락하면 신이 나서 심부름 가던 친구에게 달려가 그 안내장을 붙잡고 자기가 들겠다고 또 난리다.

“안 돼, 드는 건 원래 받은 친구만 들고, 너희는 같이 가기만 해.”

중재를 해준다. 심부름을 통해 학교를 탐험하며 자아효능감, 친구와의 유대감을 기르는 것 같다.


내가 분리배출할 종이와 플라스틱 상자를 챙기며

“분리 배출 같이 갈 사람?”

하고 외치면

“저요, 저요!”

하며 하며 네댓명이 서로 가겠다고 달려온다. 담임이 들 것도 없이 서로 들겠다고 나서기에 상자를 둘이 같이 들고 가는 게 다반사다. 그마저도 들 것이 없으면 어떻게든 분리배출 상자에 손이라도 대고 같이 가려고 한다. 분리배출하러 가는 아이들 표정은 소풍가는 것처럼 신나보인다.

아이들끼리 보내면 아무렇게나 쏟아붓고 오는 일이 생겨서 분리배출은 내가 꼭 같이 가서 종류별로 배출 자루에 제대로 넣도록 지켜보았더니 이제는 자기들끼리도 제법 잘한다.


쉬는 시간, 학습준비물실에 교구를 가지러 갈 때도 내 동선을 주목하는 몇몇 아이들이

“선생님 어디 가요? 같이 가요.”

하며 따라나서기 일쑤다. 그 아이들과 학습준비물실을 탐색하고 필요한 것을 바구니에 챙겨주면 의기양양하게 그걸 받아들고 교실로 간다.


아이들은 택배 배달도 너무 좋아한다. 급식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중앙현관 옆에 있는 행정실 앞을 지나게 되는데, 이 곳 복도에는 날마다 여러 택배 상자들이 쌓여 있다. 그러면 나는 내 물건이나 동료 선생님의 물건이 없나 살펴보고 들고 올 수 있는 것들을 챙긴다. 여기서 나의 병아리들이

“선생님, 제가 들까요?”

“저 주세요!”

라고 들이대면 웬만한 건 아이가 들도록 내어준다.

“무거울 것 같은데, 힘들면 말해. 선생님이 들게, 친구랑 교대해도 되고”

라고 말하면 오히려 슈퍼 파워가 솟아나는지

“안 무거운데요?”

하며 잘도 들고 간다.

뭐가 그렇게 다 해보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지 정말 대단한 에너지이다. 내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이런 행동이 힘이 되고 고마운 일이다.


같은 층의 1학년 교실이 아닌 2~6학년으로 심부름을 보낼 때는 그 학년에 형제자매가 있는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보낸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이 그 학년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또 자신의 형제자매를 일과 중 학교에서 마주치는 것을 상당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때, 아이를 혼자 보내기보다는 한 두명 정도 동행할 친구들 붙여주는데, 자기 할 일을 다 끝낸 친구에게 같이 다녀올 수 있는 우선권을 주곤 한다. 그렇게 심부름을 같이 다녀오며 학교 구조도 익히고, 자기들끼리도 더 친밀해진다.


다른 반 아이가 심부름을 오면 꼭 작은 간식 같은 걸 보상으로 챙겨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그 선생님의 철학과 습관 같은 것일 수 있는데, 심부름하고 간식까지 받은 아이는 그 뿌듯함이 하늘을 찌르고 교실에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부러움을 사곤 한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선생님 심부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아이들이 생길 텐데, 작은 간식을 챙겨주시는 동료 선생님의 마음 씀씀이가 배려 깊게 다가온다.

만약 강남 학군의 심부름을 귀찮아하는 아이가 심부름 간 반에서 젤리를 하나 받았다면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하다.

‘기뻐할까, 집에서도 자주 먹는 거라 괜찮다며 사양할까, 받아들고 집에 가서 얘기했는데 아이에게 해로운 걸 줬다고 엄마가 민원 전화를 하지는 않을까?’ 상상해본다.


유튜브에 언급된 그 아이들은 왜 그토록 의욕이 없어진 걸까? 1학년 아이들이 순수하게 지니고 있을 호기심과 에너지가 왜 그렇게 시들어 있을까?

어릴 때부터 온갖 학원에 다니고, 숙제하고, 시험 치고,

“넌 네 공부만 잘하면 된다, 다른 건 엄마아빠가 알아서 해줄게.”

라며 잡아끌고 밀어주는 환경에서 아이의 자발적 생각과 의욕은 배제당한 채 정말 ‘이것만 하면 된다는 말’에 세뇌되어 온 것일까.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원동력에 ‘결핍’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한 교육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반 아이들이 그렇게 심부름에 의욕이 강한 것은 뭔가가 결핍되어 있어서일까?

글쎄, 전부는 아니지만 몇몇 우리 반 친구들에게 일부 결핍이 있긴 하다.

심부름을 독식하고 싶어하는 그 친구는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 아빠와 살고 있는데, 타고난 인정욕에 애정결핍까지 더해져서 심부름 뿐 아니라 뭐든 주도하고 주목받고 싶어하는 면이 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학습력이 부족해서 공부로는 다른 친구들을 따를 수가 없는데, 힘과 눈치로 심부름을 먼저 찾아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런 예를 빼면, 우리 반 아이들의 심부름에 대한 의지는 자아효능감과 사회구성원과의 관계 욕구, 그리고 담임선생님에 대한 애정과 동경 같은 것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사실은 국민학교) 때는 선생님 심부름을 반장이나 똑똑한 애들이 도맡아 하곤 했다.

난 선생님 심부름을 별로 해본 적이 없는데, 5학년 때 어쩐 일인지 우리 선생님께서 수업 중에 나를 지목해 옆 반 선생님께 자를 갖다주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나에게 심부름을 시켜주신 것에 우쭐하고 엄청 설레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수업 시간 중에 심부름을 간 거라 앞문을 노크하고 그 교실에 들어가는데, 그 반 수업이 중지되고 아이들 눈이 다 나한테 쏠려서 엄청나게 긴장해 버렸다. 옆 반 선생님께 두 손으로 자를 건네드리고는 뒤돌지도 못하고 뒷걸음질로 그 교실을 나섰던 게 부끄러움과 함께 내 기억에 남아있다. 그 뒤로 그런 심부름을 해본 적이 없다. 다시 또 했다면 심부름 처음해보는 사람 같지 않게 자연스럽게 했을텐데.


교사가 대단해서 어린 아이들을 부려먹는 것이 아니다.

아이로서는 그런 경험들이 쌓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신감을 기르고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아이에게 다 해주지 말자. 할 수 있는 심부름은 시키고, 유치원 가면 요구르트 뚜껑 정도는 스스로 떼게 하자. 급식 시간에 음료 뚜껑을 스스로 여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뿌듯한 경험이다. 아직 서툰 친구의 요구르트 뚜껑을 대신 따주면서 고마움의 표현을 주고 받는 것도 사회성 발달에 필요한 경험이다.


도움을 준 아이에게 건네는 ‘고맙다’는 한 마디가 아이를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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