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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례 인사

by silvergenuine

아침에 출근하면 나보다 먼저 교실에 온 아이들이 삼삼오오 노는 소리가 복도 끝에서부터 들려온다

뒷문을 기웃거리다 나를 먼저 발견한 아이가 나에게 인사부터 하기보다 교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친다.

"선생님 온다!"

친구들에게 제일 먼저 선생님 출근 소식을 전하는게 더 중요한가 보다. 망보나?


교실에 들어서며 아이들에게

“안녕하세요?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네면 아이들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아침에 친구들을 만나면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떠들어지는게 예사라 그런 아이들을 보며 난 교사 컴퓨터를 켜고 일과 준비부터 한다.

그러다 정규 등교시간인 8시 40분이 되면 짐짓 엄하게

"이제 앉아서 각자 아침 독서 하세요."

안내를 하는데, 스스로 책을 잡고 보는 아이들이 참 드물다.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그림그리기, 종이접기, 멍때리기 다 허용할 판이다.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도록 아침활동을 관리하며 뒤늦게 등교하는 아이들을 맞이하며 눈인사를 나눈다.

그러다 1교시 시작종이 울리면 바로

“국어책 준비합니다.”

정도로 수업을 시작하곤 한다.


아침 등교는 들쭉날쭉하지만, 마칠 때는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교실을 나서야하기에 다함께 인사를 하고 마치게 된다. 흐지부지 헤어지긴 서운하니깐 제대로 인사하며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어릴 땐 주로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 경례."

"감사합니다." / “안녕히 계세요.”

이렇게 종례 인사를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신규 때도 "선생님께 경례"를 받으며

'와, 내가 교사가 되긴 되었구나.'

하고 감회가 새롭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다른 선생님들의 사례를 듣다보니 기존의 이런 인사는 너무 식상하고 권위적으로 여겨졌다. 애살 많은 선생님들은 저마다의 종례 인사 또는 아침 수업 시작 인사도 가지고 있는데, 우리반도 해야하나 솔깃한 마음에 나도 몇 번 따라해본 적도 있었다.

그런데 어떤 인사말들은 외우기도 어렵고 오글거리기도 해서인지 꾸준히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나의 꾸준함 부족 때문이기도 하고.


그러다 3년째 유지하고 있는 종례인사가 있으니


일일반장: “차렷!”

다른 아이들: (메아리로)“차렷!”

일일반장: “공수!”

다른 아이들: (메아리로)“공수!”

일일반장: “다함께 인사“

아이들 모두와 교사: (동시에) "감사합니다."


차렷은 주의환기, 공수는 예의를 갖춘 자세, 그리고 다함께 인사는 교사와 아이 모두가 다함께 서로 인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건 선생님께 인사하자는 신호 뿐 아니라, 아이들이 서로에게, 또 내가 아이들에게, 그리고 무사히 하루일과를 보냈다는 우주론적 감사함까지 내 나름대로 의미부여해서 사용하는 인사 구호다.

간단하면서도 일방적이지 않은 어감에 3년째 잘 유지해오고 있다.


이렇게 인사를 나누고 나면, 감사합니다와 동시에 교실문을 빠르게 나서는 아이들도 있지만, 일부러 나에게 다가와 안아주며 안겼다가 가는 아이들도 있다. 물론 1학년이니깐.

“선생님, 수고하셨어요.”

“내일 만나요.”

“선생님, 주말 잘 보내세요.”

하고 아이들이 먼저 이런 인사말을 건네는게 용하다.

“응, 고마워. 너두 주말 잘 보내.”

라고 대답하며 인사를 나눈다. 그러면 그 모습을 본 다른 아이들도 용기를 내서

“선생님 주말 잘 보내세요.”

하고 덩달아 한마디 더 인사하며 교실을 나선다.

그런 모습이 예뻐 뒷문까지 배웅하며 복도로 사라지는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주곤 한다. 그리고는 뒷문을 스르륵 닫으며 혼자 남는 교실에 찾아오는 고요를 받아들인다.

수업시간,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정신없이 돌아가던 아이들과의 일과시간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조용해진 교실에서 청소기를 돌리고 책상줄을 맞추며 내 마음도 정돈한다. 내 교탁은 아직도 어수선하지만.


아이들과 있을 때는 집중할 수 없었던 업무들을 그제야 제대로 들여다보며 메신저로 요청된 동교교사들의 업무협조처리도 하고, 접수된 공문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하나 처리해나간다. 다음 수업 준비도 해놓고.

되도록이면 집으로 학교일은 가져가지 말자는 게 내가 추구하는 워라밸이다. 집에 가면 집안일 해야 하고 내 아이들도 봐주고, 나도 쉬어야지.

우리 학생들도 마찬가지. 나와의 시간은 그 뿐, 오후에 각자의 일정들을 소화하고 자신들의 소중한 가정으로 가는 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별탈 없이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길 바라며, 하루하루 감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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