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30년이 다 되어가는 우리 학교의 하수관이 막혀 결국 땅을 파고 막힌 하수관을 뚫는 대공사를 했다. 그 현장을 생생하게 지켜보신 교장선생님께서 아침 방송 시간에 그 막힌 하수관에서 어떤 것들이 나왔는지 말씀해주셨다. 예상대로 물티슈와 생리대가 있었고, 예상 밖에 가위, 연필, 지우개, 자 같은 학용품, 과자와 사탕 껍질 등등이 나와서 놀랍고 우려스러웠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간식을 가져와 선생님과 친구들 몰래 화장실에서 먹기도 한다는 거야 알고 있었지만, 증거 인멸을 위해 변기에 쓰레기를 넣고 물을 내려버렸다니, 충격적이었다.
교실에서 사탕이나 젤리 같은 것을 입에 넣으면 교사가 알기도 전에 주변 친구들이 먼저 눈치채고 이르기 일쑤다.
“너 뭐 먹어? 선생니임, 얘 입에 뭐 먹어요!” 라고 외치면 그 무안은 또 어떻게 감당하나.
그래서 안 먹든지, 먹으려면 몰래 화장실에서 먹든지, 때로는 단짝 친구를 화장실 칸에 데려가 같이 먹고 오기도 한다. 쓰레기는 주머니에 살짝 넣으면 좋을텐데, 변기에 버리지 말아다오. 슬쩍 흘리듯 버리지도 말고.
바나나 우정
나 4학년 때였다. 반에서 공부로 1등 하던, 누가 봐도 똑똑하고 반듯한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하루는 다른 친구들 몰래 나를 복도 끝으로 불러내는 것이었다.
“왜? 무슨 일인데?”
묻는 내 말에 자기 주머니에서 노란 바나나 하나를 쓱 꺼내 “이거 우리 둘이 같이 먹자.”
라고 하며 나에게 반을 건넸다. 바나나를 흔하게 먹던 시절이 아니어서 바나나의 유혹은 더 크게 다가왔고, 반에서 잘 나가는 그 친구가 나만 특별히 대해준다는 기분에 우쭐함까지 느끼며 난 고마운 마음으로 바나나를 받아 먹었다. 그리고 그 친구와 끈끈한 유대감을 느끼며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슬쩍 보며 교실로 돌아왔었다.
바나나 껍질의 행방은 모르겠다. 아마도 그 친구가 잘 처리해줬겠지.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들키지 않는다면 소소한 일탈은 해봄직도 하다.
발바닥 동전
누군가 그랬다. 교사들이 그래도 착한 사람들 집단이라고. 착하다의 의미가 여러모로 쓰일 수 있지만, 여기서 착하다는 말은 이타적이란 의미보다는 성실하고 남에게 사기치지 아니하며 다소 소심하여 나쁜 짓거리를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쓰인 것 같다.
내가 국민학교 3학년이던 당시, 동네 양아치 조무래기들이 오락실, 문구점 등지에서 국딩들 돈을 뜯어내는 건 흔한 일이었고 그 때문인지 학교에 용돈을 들고 오지 말라는 지침이 생겼다. 돈을 가져오면 그건 고자질의 대상이 되었다.
등교할 때면 부모님께서 올 때 과자 사먹으라며 백원, 이백원 쥐어주시곤 하셨는데, 그 돈을 어떻게 숨겨서 가지고 있을까 고민하다가 양말 속에 넣었고 동전은 발바닥 쪽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다. 하교할 때 실내화를 벗어 신주머니에 넣고 가려는데 선생님께서 나를 호명하시며 교탁으로 오라시는 것이었다. 잔뜩 긴장했지만, 선생님은 다행히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셨고, 인사하고 돌아서서 나오는데 발바닥에 동그란 동전 자국이 보일까봐 내 걸음걸이가 어색해졌다. 뒤통수에 선생님의 시선이 꽂히는 기분이 들었고 정말 선생님께서 나를 다시 부르셨다.
“너 어디 불편하니?”
“아니요! 괜찮아요.”
선생님은 살짝 갸우뚱하시며 날 그냥 보내주셨고, 난 교문을 나선 후에 양말 속 동전을 꺼내며 다시는 동전을 양말 속에 숨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선생님께서 내 발바닥 동전의 동그란 윤곽을 보신 건 아니셨을 거다. 만약 포착하셨다면, 소심한 여학생이 나름대로 용돈을 숨기고 조마조마했다는 사실에 피식하셨으려나...
이제 나도 내가 그런 상황을 본 교사라면 마냥 혼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지. 20대 교사 때도 다 이해했을까, 나이를 먹을수록 너르게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