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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바이, 상담 주간

 주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한 주일 동안

by silvergenuine Feb 24. 2025

학기당 한 번이던 학부모 상담 주간이 연 1회로 줄더니 요즘은 수시 상담으로 옮겨가며 상담주간이 많이 사라져가는 추세이다.      


 격동의 20년 간 학교 생활을 해오면서 상담주간이 없던 시절에는 1년 내내 서로 연락 한 번 해보지 않는 학부모가 부지기수였고, 선배 교사들은 웬만한 일로는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연락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다.      

 그러다 2010년 즈음, 상담 주간이 생기면서 일주일의 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학부모 상담 주간을 운영하게 되었다. 당시 고학년의 경우 한 반에 5~6명 정도만 신청하는 수준이었는데, 세월이 흐른 요즘에는 고학년도 80% 이상은 신청하는 추세가 되었다. 딱히 상담거리가 없어도 상담 주간에 상담 신청을 안 하면 관심 없는 학부모로 보일까 봐 덩달아 신청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교육적으로 주고받을 정보가 크게 없다면 ‘잘하고 있다 / 잘 부탁드린다’로 끝나기 마련인 상담이었기에

이렇게 시기를 정해 상담 주간을 운영하는게 필요하겠냐,

정말 상담이 필요한 경우라면 어차피 또 상담을 하게 되지 않느냐,

형식적인 상담을 위한 상담은 괜한 행정력 낭비가 아닌가 하는 비판의 목소리들이 누적되어 나왔다.      

 이에 상담 주간의 존속 여부와 운영 시기에 대한 설문조사를 해마다 실시해온 결과, 상담 주간을 정해두지 말고 언제든 교사나 학부모가 필요할 때 연락하는 수시 상담으로 바꾸자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었다.       

 우리 학교도 재작년 학기별 1회 상담주간에서 작년 연 1회 상담주간으로 줄더니 올해는 수시 상담으로 바뀌었다.


 담임 입장에서는 아이들 하교 후 상담스케줄에 맞춰 연락을 취하는게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다. 일주일의 상담 주간 일정이 꽉 차면 그 주 오후에는 상담 운영에만 에너지를 집중하게 된다. 시간이 겹치지 않게 조율한 상담 일정과 교사의 발신번호를 미리 학급알림장에 공지해두고, 상담 일정에 따라 알람을 맞춰 순서대로 전화를 돌린다.

 그러면 대부분의 학부모님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반응을 보여주시며 전화를 받는데, 간혹 열에 두 분 정도는 상담을 잊고 계시다가 깜짝 놀라며 전화를 받거나, 혹은 모르는 번호라고 안 받기도 하신다.

 안 받으면 두 세 번 더 전화해보고

 [00어머님, 상담 전화 드렸는데 연결이 안 되네요, 다음에 상담 필요하실 때 연락주세요.]

 정도로 문자를 남기고 종결한다. 사정이 있겠지, 급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하고 보류해 둔다.    

 

 상담이 꼭 필요한 아이들도 있는데, 막상 학부모님께서 먼저 상담 신청을 잘 안 하시는 경우가 많다.

평소 학교에서 친구들과 갈등이 잦고 크고 작은 문제를 많이 일으키면 가정에서는 아이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학교 생활에 대해 어떻게 전달받고 인식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내가 먼저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상담신청을 안 하시니 그냥 믿고 맡기시나 보다 하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너무 답답할 땐 학부모님의 교육방식을 들어보고 가정의 협조를 구하고 싶은 마음에 내가 먼저 '혹시 상담 가능하시냐'고 요청드리기도 한다. 담임을 믿나보다 했는데 막상 사고가 생기면 담임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것도 이러한 학부모님들인 경우가 많아서 먼저 연락하는 것이 훗날 보험이 되기도 한다.

 

 아이가 안전사고로 다치거나, 친구와의 싸움으로 물리적 외상을 입게 되면 필히 가정 연락을 취하게 되기에 학교에서 가정으로 먼저 연락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아이가 학교 생활을 무난하게 해나가고 있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서로 굳이 연락하지 않는 일상에서 담임의 갑작스런 연락은 학부모를 불안하게 한다.

 "앗,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아, 어머님, 다름이 아니라 오늘 우리 00이가 ……."


 웬만해서는 교사든 학부모든 먼저 상담을 요청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서, 그저 우리 아이가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한번 들어보고 싶은 학부모의 마음에서는 상담 주간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울 수 있다. 혹은 굳이 안해도 되는 상담을 불편하게 감수했던 분이라면 홀가분할 수도 있고.


 학부모로서의 나의 입장은 상담 주간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해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반반이다.

우리 아이가 잘 하고 있다는 담임선생님의 한 말씀 듣지 못해도 뭐 어때, 내가 내 아이를 보고 들으면 알 수 있는 걸. 안 좋은 일로 상담할 일이 없다면 감사한 한 해인 걸로.

       

 하지만 존경하는 한 선생님의 학급운영 꿀팁 중,

"담임아, 아이의 문제로만 연락하지 말고, 칭찬거리를 가지고 학부모에게 먼저 연락해보라.

그 가정이 더 행복해지고, 아이는 다음날 빛이 나는 얼굴로 등교할 것이다."

이 말씀을 기억한다. 처음에 몇 명 시도해보긴 했는데, 담임의 전화에 놀란 학부모님 마음부터 안심시키는 과정이 송구스러웠다. 그래도 이런 칭찬의 전화가 필요한 아이도 있을 것이기에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노련함과 애정, 꾸준함을 내 안에서 끌어내야겠다.


굿 바이, 상담 주간. 멀리 안 나가도 될까?

언젠가 다시 돌아올텐가? 돌아오면 오는대로 반겨줄게. 버거웠지만, 좋은 점도 많은 녀석인 알지,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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