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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제자가 찾아오면

그 아이가 대단한 거다

by silvergenuine Mar 05. 2025

 흔히 6학년 제자가 남는다고들 이야기한다. 

 1~5학년의 종업식과 6학년 졸업식은 의미 자체가 다르기도 하다. 

종업식은 초등학교 안에서 학년과 반이 바뀌는 거라 이별이라는 느낌이 적지만, 

6학년 졸업식은 익숙했던 초등학교를 떠나 중학교라는 낯선 공간을 향해 뿔뿔이 흩어지는 과정이라 

6학년 시절이 더 애틋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6학년 아이들은 졸업식이 다가올 때면 그런 아쉬움을 나누며 언제 다시 만나자는 이야기, 내년 스승의 날에 선생님 찾아오자는 이야기들을 하곤 한다. 

 교사로서도 학생들을 졸업시키려면 종업식보다 훨씬 더 감상에 젖어 들게 된다. 

 처음 6학년 담임을 맡아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며 나 스스로 좀 잘하고 있다고 자아도취에 빠져있던 3년 차 교사 시절, 졸업식을 앞두고 윤도현 밴드의 ‘나는 나비’를 틀어놓고 아이들이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기를 응원하며 밤에 혼자 훌쩍거리기도 했었다. 

 그 아이들과 헤어지기 싫다는 마음을 서로 표현하며 학급문집에 아이들이 스무살이 되는 해 2월의 어느 날짜에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적어 넣었었다.

학급문집 표지제목, 김형이 접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그 날짜에 나는 그 초등학교 운동장에 갔다.

 ‘과연 몇 명이나 올까? 이제 스무살인 녀석들이 돈이 어딨겠어, 내가 고기 사줘야지.’

 큰 맘 먹고 가려는데 남편이 아무도 안 왔을 거라며 김을 뺐다. 

“아무도 안 오더라도 나는 갈래”

라고 하며 찾아간 운동장에 진짜 아무도 안 왔다. 

내 마음은요? 

그리움은 각자의 몫인 걸. 그 운동장에 동행해준 남편, 아이와 함께 변해버린 학교 모습을 둘러보며 헛헛한 마음을 달랬다. 


  그 뒤에도 6학년 담임을 4번 정도 더 했다. 그 때마다 아이들은 졸업을 아쉬워하며 졸업 후에 선생님을 찾아올 거라며 약속을 하곤 했다. 내 결혼식에 와준 제자들도 있었고, 결혼하며 타시도 전출을 한 나를 보겠다고 여학생들끼리 신혼집에 찾아와 하룻밤 자고 간 적도 있었다. 

 돌아보면 모두 고마운 마음들인데, 사람의 인연이 계속 이어나가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먼저 연락을 하려 해도 괜한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날 기억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주저하게 되는 마음들도 있을 것이고, 생활에 치여 미뤄두다 보면 엄두 냈던 마음도 어느새 저 멀리 밀려있게 되겠지.     


 간혹 SNS에서 제자들의 근황이 보이면 잘 지내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놓이고 반갑다. 

 제자가 찾아오면, 우리의 인생에서 1년을 함께 한 인연을 기억하고 시간과 정성을 내어준 것에 고마운 마음이 크다. 

 오지 않는다 하여 섭섭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 역시 옛 은사님들을 찾아뵙지 못하는 제자이기 때문이다.

평범했던 나를 기억해주실지도 모르겠고, 사실 은사님들 소식도 잘 모른다. 

 고등학교 때 동아리 활동을 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신 선생님이 계신데, 한 번은 내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선생님을 노려보며 대들었던 기억이 있다. 너무 죄송한데, 찾아 뵙고 사죄드리지도 못했다. 우연히라도 뵌다면 먼저 다가가서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소속 교육청이 다르니 마주칠 우연도 없는 것 같다. 

 우연만을 기대하며, 옛 은사님을 일부러 찾아뵐 성의도 없는 내가 어떻게 내 제자들에게 찾아오지 않는다고 섭섭한 마음을 낼 수 있을까. 

 하지만 그건 믿는다. 내가 옛 선생님들을 이렇게 떠올리며 추억하듯이, 우리 제자들도 자신의 학창 시절을 돌아보며 그 기억 한 켠에 있는 나를 한 번씩 꺼내봐줄 거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나에 대한 좋은 기억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난 교육 현장의 과도기를 두루 겪은 사람이다. 체벌이 허용되던 시절에 매도 들었고, 단체기합도 줬었다. 지금의 나라면 때리지 않을 것이고 단체기합도 안 줄테지만, 그 때의 나는 그런 행동을 했었고 부끄럽게 기억한다. 맞은 아이도 내가 그렇게 맞을 짓을 했나 나를 원망할 수 있고, 자기 잘못 없이 단체 기합을 받아야 했던 아이들은 나를 아주 밉게 기억할 것 같다. 

 혹시라도 나에게 그 마음을 전해온다면 이제 성인이 된 그 아이에게 내가 부족한 스승이었음을 시인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내가 부족한 게 많았어. 그런 안 좋은 기억을 가져가게 해서 미안해. 표현해줘서 고맙고, 잘 살아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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