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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이 있어 좋겠수~

by silvergenuine

다른 직장인들이 교사에게 제일 부러워하는 것이 방학일 것이다.

교사들도 학기말이 다가오면 좀비처럼 커피를 찾아마시며 방학식, 종업식이 다가오고 있음에 위안을 삼는다.

낮게 시작하는 연봉, 수업과 생활지도 뿐 아니라 학교 업무 수행, 각종 민원 응대까지 교사로서의 삶이 녹록치 않음을 어필하면

“그래도 교사들은 방학이 있잖아요. 방학 때도 월급 나오고 얼마나 좋아요.”

라고 단골 반박이 따르곤 한다. 굳이 여기서

“방학 때도 공문 오면 담당 교사가 처리해야 하고, 방학 때 학급 아이들 잘 지내는지 관리 책임도 있어요. 방학 때 연수 들으며 자기 계발도 해야 하고, 다음 학기, 다음 학년 준비 기간에 출근도 하구요. 우리 나라 교사가 겸직이 안 되니깐 방학 때도 의무를 부여하고 월급을 주는 거죠, 다 없애고 겸직가능하게 하면 방학 때 사교육 뛰는 교사도 생길 걸요? 게다가 교사는 방학이 있는 대신 따로 연차를 거의 쓰지 않아요. 학기 중에 개인적인 일로 하루 연가라도 쓰려면 동료 교사들에게 수업 보결을 부탁해야 해서 그게 쉽지가 않거든요.”

라고 바득바득 방학 좋을 것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솔직히 방학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 그리고 다른 직장인들에게도 프랑스처럼 한 달짜리 바캉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계속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창의력, 의욕도 솟아날 테니깐. 직장인들에게도 방학을! 아니 방업을!



교사들은 방학 때 무엇을 할까?

일단 방학이 시작되면 널부러져 휴식하는 시간을 가지며 충전을 한다. 교육청에서 준비한 여러 직무연수를 골라 듣기도 하고, 학기 중에는 엄두 내지 못했던 국외 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출산과 육아를 하는 교사라면 여느 학부모처럼 방학은 온전히 본인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기간이 된다. 아직 어린이집 단계라면 방학 기간이 서로 달라서 자신만의 시간이 좀 생기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그 때부터는 아이들 방학과 기간이 겹치니 그냥 육아모드다.


출산 전에는 방학을 이용해 국외여행을 좀 다니기도 했었는데, 덕분에 ‘세계의 여러 나라’ 같은 교과 내용을 가르칠 때 아이들에게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을 들려줄 수 있어서 좋았다.

20년 묵어가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선생님이 그 나라에 갔을 때 어디를 가보았고, 사람들이 어땠으며,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별별일들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들 눈이 반짝이고, 귀가 쫑긋쫑긋하는 게 보인다.

그런 걸 보면 교사가 정체되어 있으면 안 되겠구나, 뭐라도 자꾸 접하면서 아이들에게 간접경험을 물어다줄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직 이 세상 못 가본 곳이 많고 많으나, 교사라서 못 가본 곳을 하나 꼽으라면 가을 제주도를 말하고 싶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으로 봄 제주도를 가보았고, 교사가 된 후엔 여름방학, 겨울 방학 때 제주도에 가보았는데 가을 제주도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뭐가 다르겠냐고 하겠지만, 팔랑거리는 내 귀에 한 선생님이

“제주도는 가을에 가야 돼. 유채꽃 보러 갈 거 없어. 가을에 억새가 얼마나 멋지던지, 날씨는 또 얼마나 환상이고. 가을에 제주도에 안 가봤다니 안 됐다.”

하고 자랑하신 내용이 내 버킷리스트로 남았나보다. 추석 연휴에 가기에는 너무 비싸니깐 퇴직하면 항공기 싼 날로 골라서 가을 제주도에 꼭 가보려 한다.


아이들의 방학은 어떠한가? 이건 너무 가정차가 심하다.

방학 동안 국내외여행, 어학연수를 가는 아이들도 있고, 학원 방학 특강을 듣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집 아이들처럼 학교에서 다니던 방과후만 다녀와서 집에서 쉬다가 한 번씩 놀러다니는 애들도 있고, 그냥 집에서 휴대폰만 보다 왔다는 아이들도 있다.

라떼를 돌아보면 스마트폰도 없고, 낮에는 TV방송도 안 나오던 때였으니 온종일 동네 친구들이랑 놀다보면 어느새 개학이 코 앞이었다. 일기를 몰아쓰고, 그리기, 만들기, 독후감상문 같은 숙제를 하느라 허덕였는데, 요즘엔 방학 숙제도 거의 없으니 방학에 무엇을 할 것인가는 정말 가정에 달려 있다.


방학을 어찌 보내든 방학을 기다리는 건 교사나 학생이나 한 마음이긴 한데, 교실에서 함부로 그 마음을 내비치기엔 조심스럽다.

“앗싸, 방학 얼마 안 남았다. 학교 안 와도 된다”

하고 신나게 떠드는 아이를 내가 싸늘하게 바라보면,

“선생님, 전 방학이 되어서 슬퍼요, 선생님이랑 친구들을 못 보잖아요.”

라고 말하는 친구가 한 명 쯤은 꼭 있다.

“나도 그래, 방학 동안 너희 보고 싶을 거야. 방학 잘 보내고 많이 커서 와. 여름이라 새까매져서 오겠다.”

라고 대답한다. 진심이다. 아가가 잘 때 제일 예쁘지만 오래 자면 깨우고 싶어지듯이, 방학이 깊어지면 아이들이 궁금하고 보고 싶어진다.

“선생님도 방학 돼서 너무 좋거든, 학교 안 와도 돼서 너무 좋거든.”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도 서운할 테지.

내가 방학을 소중하게 보내듯, 아이들도 방학을 잘 보내고 오면 좋겠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는 개학날, 저마다 물고 온 이야깃거리가 너무 많아 왁자지껄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와중에 마음은 친구들에게 향한 채 쭈볏하게 자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아이도 눈 앞에 떠오른다.


학교는 해마다 학반이 바뀌니 새롭게 학급을 꾸리고 교사와 학생이 서로 적응을 해나가야 한다.

아이들과 공감대가 형성되면 척하면 딱인 관계가 되는데, 그러다 종업식을 하면 다시 모든게 포맷된다.

헤어짐의 아쉬움도, 새로운 시작에 대한 버거움도 있다.

그런데 종업식하고 바로 다음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한다면 얼마나 서운하고 어색할까.

학교의 한해살이에서 서로 쉬어가고 또 다음 해를 위한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방학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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