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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세요? 어쩐지...

티나요?

by silvergenuine Mar 17. 2025

"교사세요? 어쩐지..." 

“아, 티나요?”

 티내고 싶지 않았는데...  

틀에 박힌 교사 이미지로 보인다는 말로 들려서 속상하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쩐지” 라는 말은 무례할 가능성이 높다. 


신규 1년차, 친구들과 시내에서 만나기로 하여 나름대로 한껏 꾸미고 간 적이 있다. 거기서 같은 교대 선배를 딱 마주쳤는데, 날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어머, 이제 진짜 교사처럼 입었네.”

라고 하는 것이었다.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칭찬이야, 욕이야? 

 그 때 그 선배는 교사 댄스동아리를 하며 그 시절 보아처럼 입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선배의 그 표현은 불쾌하게 다가왔다.  

 하긴 다른 누가 그렇게 말했다 해도 ‘딱 교사처럼 입었다’고 하면 기분이 좋지만은 않겠다.  

 어떤 직업이든 비슷한 기분일까? 

“진짜 치과 의사처럼 입었네.”

“딱 애 엄마처럼 입었네.”

“농부같이 입었네.”

“연예인처럼 입었네.”

“업소 여자 같이 입었네.”

00처럼 옷을 입었다고 말을 해버리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00에 대한 이미지로 그 말을 받아들이게 된다. 

무슨 의도에서 말했든 듣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니 함부로 말할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반대로 “어머나, 교사 같지 않게 입었네.” 라고 말해도 이상하긴 하겠다만, 진심을 담은 칭찬이 아니라면 차라리 아무 말 안해도 좋을 것 같다.      


 직업이 교사인 학부모들은 본인 자녀의 학부모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 아무래도 학부모 모임에서 담임 교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난무할 수 있는데, 그런 자리에 교사가 섞여있으면 서로 곤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학교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다 보니 괜히 그런 자리에서 학교의 대변자가 되었다간 눈총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냥 더불어 학교와 교사들을 욕하고 있을 수도 없고.     


 첫 아이가 1학년 입학을 했을 때 처음에는 학부모 단톡방에 가입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엄마들 대부분이 있는 단톡방에서 빠져있다는 것이 오히려 “00엄마는 왜 없대요? 뭐하는 사람이지?”하며 궁금증을 자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단톡방 가입 의사를 물으면 기꺼이 가입하게 되었다. 

 단톡방 안에서는 굳이 서로의 직업을 밝힐 일이 없지만, 단체로 키즈 까페 같은 곳에 가게 되면 엄마들도 자연스레 오프라인 만남을 갖게 된다. 

 “저는 초등교사입니다.”

라고 굳이 먼저 말하지 않아도 되지만, 혹시나 학교나 교사 뒷담을 신나게 했는데 내가 교사인 것을 나중에 알게 되면 뒤통수 맞은 기분이 들게 만들까봐 신경이 쓰인다. 

 우려와 달리 내가 가본 학부모 모임은 학교나 교사 뒷담을 하고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키즈까페에서 신나게 노는 동안, 엄마들은 아이들 먹을 간식을 챙기고 서로의 아이들에 대해 좋은 말들을 주고 받으며 다소 낯설고 어색한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한 번은 1학년이 된 둘째가 동네 놀이터에 놀고 있을 때 마침 같은 반 엄마들 네 분이 이미 친분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다가가서 인사드리니 우리 아들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반겨주셨다. 

 얘기를 나누던 중, 한 아이가 넘어져 손이 까졌길래 내가 가방에 있던 밴드를 꺼내 붙여주었다. 다정함을 시전하여

 “아프지? 그래도 흉 안 지고 금방 나을 상처 같다. 따가울 텐데 울지도 않고 씩씩하네.”

말을 해줬더니, 아이가 자리를 뜬 후 다른 엄마들이

“혹시 교사세요?”

“아, 네, 맞아요.”

“어쩐지, 말투가 딱 교사 같으셨어요.”

“아, 진짜요? 제 말투가 교사 같았어요?”

“네, 사실 저희도 다 교사에요, 이분은 어린이집 교사 출신이고, 이분은 학원 선생님이고, 이 분은 중학교 교사인데 휴직 중이세요.”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니 교사 말투라는 표현을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보통은 ‘말하는 게 딱 교사 같다’고 하면 남에게 지적하고 훈계하려는 말투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아서 결코 듣기 좋으라고 하는 표현이 아닌 경우가 많다. 

 온라인 상에서 ‘교사 배우자를 둔 사람이 상대방의 말투 때문에 힘들다, 교사 부모의 아이들이 엄마아빠의 말투 때문에 듣기가 싫다‘고 하는 하소연을 가끔 보게 되는데, 내 가족이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한다면 마음이 괴로울 것 같다. 

 말투 뒤에 숨어있는 마음과 생각을 봐줘야 하는데, 말투를 부정하고 듣기를 거부하면 소통을 할 수가 없다. 내 가족이 “교사 같은 말투로 말하지마”라고 말하면서 거부하면 난 어떻게 말해야 될까? 일단, 시범을 보여달라고 해야겠다.      

 교사 같다, 엄마 같다, 아무렴 어떨까?

 내가 교사를, 엄마를 좋은 이미지로 가지고 있으면 기분 상할 일이 아니겠지.


누구나 틀에 갇히는 걸 싫어한다. 

환경에 따라, 직업에 따라 부여되는 이미지를 그대로 입지 않고 

나만의 정체성을 지니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 아닐까?

그러니 남을 함부로 틀에 가두지는 않는지 서로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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