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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냐, 나도 아프다.

by silvergenuine Mar 12. 2025

 학급의 한해살이 중 교사가 가장 긴장하는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답은 단연코 새 학기 첫 주이다.

2월 말 새학기 준비 기간부터 3월 첫 주 적응 기간까지 보내고 나면 딱 그 주말에 긴장이 풀리면서 몸살감기가 오곤 했다. 이제는 경력이 좀 쌓여서인가, 주말 몸살주의보를 발령하고 경계 태세를 하면 비교적 무사히 다음 주를 맞기도 한다.


 몹시 바쁘고, 아이들은 긴장해서 본색이 아직 드러나지 않는 3월 첫 주를 넘기고 나면, 슬슬 학급 운영이 궤도에 올라선다.  

  그러다 어느새 3월 하순 쯤 되면 ‘학부모 상담주간’이 찾아온다. (이제는 다시 수시상담으로 바뀌며 상담주간이 없어지는 학교도 많긴 하다)

 코로나 이전에는 대면상담이 많은 편이었는데, 코로나를 거치면서 대부분이 전화상담을 신청하는 추세로 바뀌었다. 상담 신청을 받으면 일정표를 작성하여 조정을 하고 학급알림장에 미리 안내를 드린다. 그리고 아이들이 하교한 후 그 날의 상담 일정에 맞게 알람을 맞춰 놓고 전화 상담을 진행한다.      


 1학년 담임이던 해, 3월 상담 주간 즈음하여 한쪽 귀가 중이염처럼 아파왔다.

상담 일정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이 곤란했는데, 그래도 전화상담이니 일단 병원에 가서 접수한 후 전화를 드리면 되겠다고 마음 먹고 병조퇴를 하고 동네 이비인후과에 갔다. 한창 환자들이 많은 3월이라 대기가 길어서 나름 여유를 갖고 상담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아이 어머니께서 상담 시간에 맞추어 학교에 와있다는 것이었다. 이게 웬 일...

 “전화 상담 아니셨나요?”

 “아닌데요, 전 대면 신청했는데요.”

 그녀의 목소리에 불쾌함과 짜증이 묻어난다.

 죄송하다. 하지만 난 이미 병원인 걸. 솔직하게 말씀드리자.

 “대부분 전화 상담을 신청하셔서 제가 착각했나봐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중이염으로 귀가 아파서 지금 병원에 와있는데, 죄송하지만 전화로 상담해도 될까요?”

 그 말에 아이 어머니의 태도가 바뀌었다.

 “저런, 어떡해요. 상담은 괜찮으니 선생님 치료 잘 받으세요.”

 “너무 죄송합니다. 그래도 통화하신 김에 지금 상담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는 아이에 대해 10분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우리반 남학생 중에서 사회성과 수업 태도, 기초학력, 운동 기능 등이 제일 뛰어난 아이였기에 칭찬 밖에 해줄 말이 없었다. 덕분에 상담도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어머니는 아이가 마음이 여려서 자기 의사표현을 제대로 못하지는 않는지 염려하셨지만, 내가 교실에서 본 바로는 오히려 익살스런 표정과 행동으로 아이들을 웃기는 등 자기 존재를 잘 드러내는 아이였고 담임 옆에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툭 던지고 가기도 하는 아이였다.

 서로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전화를 끊고 난 뒤 불현듯 아이 엄마는 아이가 생활하는 교실과 책상, 사물함, 작품 같은 게 궁금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전에 상담할 때 아이가 돌봄교실에 있다고 했기에 재빨리 아이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제가 없더라도 아이랑 교실에 들러서 둘러보고 가세요. 아이가 생활하는 공간이 궁금하실 텐데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벌써 아이랑 학교에서 나왔어요. 나중에 공개수업 때 보면 되죠.”

라며 사양하셨다.      


 아이들은 몸이 아프면 질병결석을 하면 된다. 교사도 몸이 아프면 ‘병가’를 사용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교실에 교사가 없으면 교실 상황은 어떻게 될까.

 “선생님 없이 오늘은 너희끼리 실컷 놀아봐.”

상상만 해본다. 엄청 신난데, 신나는 상황만 펼쳐지지는 않을 것 같다. 약육강식의 정글도 떠오른다.

 다 농담이고, 교사가 병가를 쓰더라도 절대 일과 시간에 아이들끼리만 둘 수 없는 게 법이다.

그래서 병가를 쓰려면 전담수업 등으로 수업이 없는 동료 교사를 찾아 보결 수업을 부탁드려야 한다.

보결을 부탁하는 주체는 ‘본인이 직접, 또는 학년부장이나 교무부장님이, 학교가 크면 보결업무 담당 선생님이’ 가 된다.

 만약 병가가 하루이틀이 아니라 수술 등의 일정으로 길어지게 되면 시간강사나 기간제 교사를 채용하게 되는데, 그건 교감 선생님의 일이다.     

 아이가 결석한다고 하여 그 자리에 앉힐 대체 학생을 구하지 않지만, 교사는 자기 역할을 대신할 대체 인력을 구해야 하기에 몸이 좀 아프다고 쉽사리 자리를 비울 수가 없다.

 코로나 19 자가격리, 독감 같은 전염병일 때는 타의를 빌려 병가를 썼지만 감기 몸살 정도는 웬만해선 출근해서 수업은 한 뒤, 병조퇴의 은총을 받는다.   

  

 교사인 남편은 40대에 접어들던 해, 새학기 기간을 넘기며 생애 처음으로 대상포진에 당첨되었다. 여태 겪어본 통증 중 가장 아프다고 했다. 감기로 쿨럭거리던 내가 대상포진 남편에게 말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미안, 대상포진이 더 아플 것 같다.”

 그래도 우리 모두 출근은 했다.


  부모의 몸과 마음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듯, 교사의 몸과 마음 또한 학급에 영향을 미친다.

내 주변을 위해 내가 먼저 편안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자.

아프지 말고, 아파도 오래 아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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