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은? 몰라...
6학년이 된 큰 아들, 초등 6학년의 꽃은 아무래도 수학여행이지.
선배들 가는 거 보며 자기도 6학년 되면 갈 거라고 얼마나 기다려왔을까?
경복궁, 국립중앙박물관 다른데 다 몰라도 에버랜드만큼은 친구들과 삼삼오오 돌아다니며 놀아보고 싶었을텐데.
"드디어 올해 수학여행 간다!"
"아들아, 올해 수학여행 못 갈거다."
"왜!" (화가 난다)
"2022년에 강원도 속초에서 현장체험학습 갔던 한 학생이 주차장에서 버스에 치어 안타깝게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어. 그 때 버스에서 내린 학생들을 줄 세워서 담임 선생님이 앞장서서 이동했는데, 그 학생이 신발끈을 묶는다고 뒤쳐졌었대. 그런데 버스가 이동하면서 그 학생을 치게 된거야. 아마 버스 기사도 사각지대라 못 봤겠지. 그래도 교통사고니까 버스 기사에게 유죄판결이 났어. 그런데 그 담임 선생님에 대해서도 과실치사로 고소가 들어온거야. 그에 대한 1심 판결 결과가 올해 2월에 났는데,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래."
"그런다고 우리가 왜 수학여행을 못 가는데? 왜 하필 우리 갈 때 그러는데! 너무해"
"신발끈을 묶을 때 주위를 잘 살펴야하지만 아직 아이라서 주변 인식이 잘 안 되었을거야. 머리로는 알아도 시야가 좁으니까. 그 사건에서 사망한 아이는 죽음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겪었어. 그 아이의 부모님은 너무 슬프시고. 우리가 거기에 원망을 할 수는 없어. 버스 기사님 입장도 너무 안타까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고였어. 그런데 그 사건에서 담임 선생님은 무슨 잘못을 한 것 같아?"
"담임 선생님은 잘못이 없잖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이번 1심 판결에서 담당 판사가 담임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유죄 판결을 내린거야. 엄마는 처음에 그 판결을 들었을 때 그 사건을 잘 모르고서 교사가 어디 혼자 화장실에 갔거나 다른 곳에 가 있었는 줄 알았어.
그런데 버스 내리면서 아이들 줄 세우며 인원 점검하고 앞장서서 걸어서 건물 입구 쪽으로 이동한거래.
물론 버스가 처음부터 안전한 곳에 주차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놀이공원 주차장에 버스들이 몰리면 제대로 주차하지 못한 채로 내리게 될 때도 있어.
그런데 판사의 판결문을 보면 줄 세워서 이동하는 동안 교사가 18~30미터 동안 뒤를 돌아 살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유죄로 판결한거래.
그 판결로 그 담임은 당연퇴직으로 교사를 그만 둬야 한대. 무슨 말인지 알겠어? 더이상 교사를 못하게 되었다고."
"너무한 거 아니야?"
"너무해. 엄마도 해마다 반 학생들 데리고 현장체험학습 다니잖아. 가기 전에 사전답사해서 위험한 건 없는지 미리 점검하고 안전계획도 세우고, 현장학습 가서도 계속 아이들 안전을 살펴.
그런데 줄 서서 이동할 때 내가 앞에 있다가 뒤에 있는 학생이 다치면 그게 담임 책임이야.
그렇다고 담임이 줄 뒤에서 지켜보면서 따라가다가 앞에 있는 학생이 다치면 그것도 담임 책임이야.
그래서 현장학습 가면 앞에서 뒤돌아 서서 걷는 선생님들도 많아.
엄마는 재작년에 우리반 뒤에서 지켜보면서 가다가, 도로 건너기 전에 다시 우리반 앞으로 가려고 뛰다가 내가 넘어져 구른 적도 있어. 그만큼 담임은 현장학습 가면 아이들 안전에 엄청 신경을 쓴다고.
그런데 그 1심 판사가 그 담임 교사에게 유죄 판결을 내려서 그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야 된대. 만약 넌 엄마가 현장학습 갔다가 그런 일을 겪어서 유죄를 받고 교사를 그만 두게 되면 어떨 것 같아? 엄마가 그렇게 되어도 돼?"
"안 되지."
"엄마도, 다른 선생님들도 그렇게 되기 싫어.
안전 사고가 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도 그런 일이 생기면 고발이 들어올 수 있고,
거기에 그 판사의 판결이 선례가 되어서 유죄가 되면 교직을 이어갈 수가 없어.
아무리 학교가 힘들다고 해도 그렇게 억울하게 떠나고 싶지는 않아. 그래서 학교 선생님들이 현장체험학습을 가면 안 되겠다고 마음을 먹은 거야."
"으앙, 그래도 가고 싶어."
"엄마도 힘들어도 현장체험학습 가자는 사람이었어. 너희처럼 엄마아빠가 여기 저기 데리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지만, 가정 환경으로 놀이공원, 과학관, 체험관에 못 가보는 아이들도 많아. 그래서 학교현장체험학습이 그런 격차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 건데,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너희는 우리 가족끼리 갈 수 있잖아."
"친구들이랑 가는 거랑 어떻게 같아? 친구들이랑 가고 싶다고."
"그러게, 친구들이랑 가면 더 재미있을텐데, 지금 1심 판결대로라면 학교는 대부분 현장체험학습 보류할거야. 지금 2심 판결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2심에서 그 교사에게 무죄가 나온다면 2학기 때는 갈지도 몰라."
"2심 판결 무죄 나오면 좋겠다."
"엄마도 그랬으면 좋겠어. 그런데 과연 그럴지 모르겠다. 그 1심 판사는 자기 판결 때문에 전국의 현장체험학습이 보류되고 있는 걸 알고는 있을까?
너희 현장체험학습 못 가는 것에 대해서는 학교 말고 그 판사를 원망하도록 해.
엄마는 그 판사의 판결이 일방적이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 자기 판결로 이런 파장이 일고, 전국 교사와 학생들이 선처를 바란다고 애원해도 그 판사는 아마 자기 판결을 바꾸려 하지 않을 걸? 자기가 맞다고 생각하고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으려 하겠지"
"너무해."
"맞어, 너무해. 2심 판결 기다려보자."
가정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 안전사고다. 그런 경우 부모에게 안타까운 순간의 사고로 과실치사 혐의를 씌우고 감옥에 보내지는 않는다. 그런데 인솔교사에게는 그런 판결을 내렸다. 가혹하다.
과연 합법적이고 타당한 판결일까?
언론들은 그 판결로 인한 현장체험학습 보류 내지 취소 현상에 대해 교사들의 설문 응답 결과, 교육부와 교육청의 대응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를 하고 있다. 이번 속초 사고로 학교안전법 개정안이 나오고 시행령이 더 구체화되었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은 현장체험학습 운영 안내 메뉴얼의 안전관련 체크리스트를 손보며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자기들이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보여주려한다.
난 이번 속초 1심 판결을 바라보는 언론과 사회의 프레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교육부의 대응과 언론보도에는 판사의 판결이 절대적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현재 항소를 하고 2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지만,
1심 판결이 합당한가, 판결문의 근거에 어떤 오류가 있는가에 대한 분석과 보도가 없다.
학교안전관련법과 시행령, 현장 상황의 불가피성에 대한 분석없이 그 판결 결과의 파장대로 흘러가며 교사들을 이기적인 집단으로 프레임을 씌우고 학교와 학부모를 갈라치기 하는 사회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언론은 자꾸만 교육 당국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하는데, 교육당국 말고 사법부에 대해 논해줬으면 한다.
2년 전 현장학습 노란버스법 때도 현장체험학습 안전사고에 대한 논란 때문에 현장학습을 취소한 학교가 제법 많았다. 그 때 우리 학교는 학교장이 "내가 책임을 질테니 우리 학교는 아이들을 위해서 현장학습을 가자"고 교사들을 설득했다. 그런 말씀이 보호막이 되어줄 수는 없지만, 교사들도 교육적 의도를 가지고 현장체험학습을 강행했었다. 나도 기꺼이 현장체험학습을 갔었고.
하지만, 이번 판결은 선을 넘었다. 나조차도 단호하다. 2심도 1심대로라면 교육현장에서 현장체험학습은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