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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 아들들 공부는 좀 하나?

그냥 해요

by silvergenuine

두 아들은 예체능에 별로 특기가 없다.


악기 연주는 교육과정에 있는 리코더를 수행평가를 위해 부는 정도이고, 그나마 둘째가 방과후 피아노를 꾸준히 다니는데 일반 피아노 학원처럼 콩쿠르나 연주회를 하지 않기 때문에 혼자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경지는 결코 아니다. 아이는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짧은 곡이나마 한 소절씩 연주하면서 뿌듯해한다. 피아노를 통해 손가락 소근육 힘도 기르고, 오선악보의 계이름을 읽을 수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

올해는 둘다 처음으로 바이올린 방과후를 하게 되었는데, 첫 날 다녀오더니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어떤 게 재밌었어?"

"오늘 '라'를 배웠어."

"선생님이 활에 힘을 어떻게 줘야하는지 알려주셨는데, 진짜 소리가 달라져서 신기했어."

"오호, 아주 중요한 걸 배웠구나!"


엄마, 아빠를 닮아서 운동신경은 고만고만하다. 남들처럼 태권도 배우고, 방과후 배드민턴, 피구부 같은 운동을 하며 적당히 즐기는 편이다. 운동선수가 되는 코스를 밟다가 국가 대표가 되지는 못 하더라도, 체대도 가고 체육 관련 강사라도 되려면 운동회 계주 대표 정도는 당당히 꿰찰 수 있어야 운동 쪽으로 떡잎을 점쳐 볼텐데. 축구 같은 운동을 엄청나게 좋아해서 틈만 나면 운동장에 가서 누구하고든 공을 차고 있어야 나중에 조기 축구동호회라도 나가지 않을까? 그런데 전혀 그런 성향의 사나이들이 아닌 우리 두 아들이다.


옆집 아들은 선이 남달라서 아이돌 보면서 춤도 간드러지게 따라 추던데, 그루브라곤 없는 두 아들이 학교 예술 강사님께 배웠다며 아이돌 댄스를 추는 모습을 보고 물개 박수를 치며 웃참 챌린지를 하기도 했다.

“와, 정말 열심히 춘다. 멋있다!”

박자가 어딘지 모르게 어긋나고 의욕을 앞세운 뻣뻣함이 참 인간적이었다. 부모가 교정해줄 수 있는 안목이 없으니 감탄만 할 뿐이다.


미술은 미술교과시간에 성실히 표현활동에 참여하고 튀어나가지 않게 색칠하고 반듯반듯하게 종이접기를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미술 분야로 진로를 꿈꿔볼 정도는 아니다.

쉬는 시간에 그림 그리는 게 제일 행복한 아이들 중에서 웹툰작가나 미술가들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둘다 1학년 때부터 컴퓨터 방과후를 다니긴 했지만 딱히 프로그래밍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유튜브를 잘 보긴 하지만 직접 영상을 만들어 올리려는 욕구는 없어보인다. 최근 첫째가 자기가 하는 닌텐도 게임을 녹화하여 유튜브에 올리고 싶다고 해서 캡쳐보드를 지원해줬으나(알고 보니 큰아들 용돈으로 산거), 편집에서 막히니 손을 놓은 상태다. 옆집 딸은 영상 편집이 취미라 스스로 공부해가며 하고 있다는데 음...


이런 두 아들이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자기주도학습다.

이제 초 6, 4학년이 되는 두 아들은 아직 영어나 수학 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다.

엄마인 내가 학원 정보에 어두우며, 어떤 학원을 많이들 다닌다고 들어도 상담 받으러 가거나 테스트를 받게 데리고 다닐 만한 부지런함이 없는 것이 한 몫 하긴 한다.

대신 학교 방과후 강좌는 본인들이 원하는 것으로 함께 시간표를 짜서 치열하게 신청을 해준다. 인기 많은 강좌의 경우 수강신청에 실패하기도 하는데 아이들도 그럴만하다는 걸 알기에 상황을 이해한다.



첫 아이가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전화상담을 하는데, 다른 과목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수학이 좀 부족하다고 하셨다. 아이의 수감각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던 나는 어떤 부분에서 부족한지 여쭤 보았다.

“수학 단원평가 점수가 70~80점 정도에요. 다른 친구들은 90점 이상이 많아요.”

“아, 그렇군요, 우리 아이가 수학 문제집 같은 걸 풀어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집에서 보충할 수 있도록 할게요.”

그 상담 이후, 연산 문제집과 일반 수학 문제집을 한 학기에 1권 정도 집에서 풀도록 했다.

처음에 어떻게 적응시켰는지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절대적 원칙 하나는 하루에 할 분량을 반드시 끝낸 후 그 날의 만화영상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첫째가 문제집을 풀기 시작하니 둘째도 자연스럽게 자기 수준의 문제집을 같은 분량만큼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주말이나 공휴일 등 빨간 날을 제외한 모든 평일에 수학 문제집을 하루 2장씩 풀고 있다. 풀고 나면 엄마나 아빠 중 여력이 되는 사람이 채점을 해주고 오답풀이까지 봐준다.

여기서 여력이 된다는 것은 일단 집에 있어야 하며, 지금 집안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만약 엄마가 설거지를 하고 있는 타이밍에 “엄마, 채점해 줘.”하고 들고 온다면 “아빠한테 해달라고 해.”가 되는 것이다.

둘다 여력이 없을 때는 아이 스스로 채점하게도 한다. 습관이 잡혀서인지 거짓으로 채점하는 꼼수는 보이지 않는다. 엄마, 아빠 퇴근하기 전에 답지를 보고 베껴놓는 일도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엄마, 아빠가 자기들 학습 수준을 파악하고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아이가 풀이 과정을 직접 설명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조금씩 자기 실력을 키워와서인지 자기가 이해한 방식대로 풀이 과정도 성의있게 곧잘 쓴다.

영어는 첫째는 독해문제집, 둘째는 초등 영단어 문제집으로 공부하고 있다. 요즘에는 QR코드를 이용해 원어민의 발음을 들을 수 있게 영어교재를 만들어서 집에서 듣기와 말하기도 함께 익힐 수 있다. 월, 수, 금에는 한 챕터 정도 진도를 나가고 화, 목요일에는 복습을 하는 정도로 꾸준히 하고 있다. 언어 학습은 반복을 통해 어휘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루 세 단원 정도 다시 읽어보는 방식으로 복습을 반복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단어나 문장 테스트를 한다. 처음에는 어려워하더니 이제 제법 틀이 잡혔다.

수학, 영어에 더해 한자 훈음 공부나 초등 어휘력 퍼즐집을 풀며 학습이나 일상에 사용되는 어휘를 두루 익히도록 하고 있다.

학교 다녀와서 보고 싶은 책(주로 만화책)을 보며 뒹굴거리다가도 너무 늦기 전에 하루 몫의 공부를 시작하는 것을 보면 공부 습관이 잡힌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


<외적 보상>

1. 게임

평일에 빠짐없이 공부 분량을 다 해내고 나면 금, 토, 일에는 본인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정해진 시간만큼 할 수 있다. 스마트폰 게임보다는 닌텐도를 하다 보니 어린이날이나 크리스마스 선물도 게임칩인 경우가 많았다. 안하는 게임칩은 당근으로 좀 팔자고 해도 보물처럼 계속 끼고 있다.

2. 외식권

주말 게임에 더해 두 아들이 아주 좋아하는 보상이 있으니 바로 외식권이다. 수학이든, 영어든, 한자든 간에 한 권의 문제집을 완전히 풀고 나면 그 문제집은 가차없이 재활용 종이로 분리배출할 수 있고, 아이에게는 외식권이라는 카드가 쥐어진다. 이 외식권이 있으면 본인이 원하는 날에 원하는 메뉴로 온 가족이 외식을 한다.

외식권 사용처의 압도적 1위는 각종 프랜차이즈 치킨, 2위는 우리 동네 단골 퓨전 이탈리안 식당, 3위는 중국집이다.

이 범주를 벗어난 적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 조경규 작가님의 [오무라이스 잼잼]이라는 음식책을 탐독하더니 거기에 나오는 음식들로 범위를 확장할 기세다.

얼마 전에 오잼 '납작만두편'을 읽고는 우리 주변에 파는 데가 있는지 궁금해했다. 검색을 통해 맛집 두 군데를 찾아뒀었는데, 어제 첫째가 수학 문제집을 클리어하고는

“나 수학문제집 다 풀었어. 외식권 획득!”

하고 외쳤다. 옆에 있던 둘째가

“그럼 납작만두 먹으러 가자.”

하고 호응했다.

“오, 저번에 말했던 납작만두, 좋지!”

하고 나도 같이 신나 한다.

매일 꾸준히 하다보니 현행 진도를 따라잡아 한, 두 학기 정도 선행도 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중고등학교 선행까지 하는 학생들 중에 정작 현행에서 구멍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던데, 다행히 두 아들은 현행은 학교 수업에서 다시금 단단히 다지며 잘 해나가고 있는 모습이다. 집에서 해봤다고 학교 수업 시간에 대충 하는 것 같지는 않다. 미리 공부해 볼 때 헤매었던 부분을 학교에서 배우고 나면 확실히 자기 것이 된 것이 보인다.

그런 걸 보면 수학 교육과정이 아이들 인지 발달에 맞게 단계적으로 잘 짜여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고등학교 수학은 염려스럽다. 나도 너무 어려웠었고, 지금은 하나도 생각이 안 나기 때문에...


지금은 자기주도학습으로 충분히 해내고 있지만, 입시 경쟁이 치열할 때, 본인이 필요하다고 부탁하면 사교육도 지원해줄 것이다.

지금까지 굳혀둔 학원비로는 부부의 노후 및 추후 아이들에게 크게 목돈이 들어갈 일들에 대비하려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스스로 공부해나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참 고맙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을 종종 표현하곤 한다.

“너희가 지금 이렇게 스스로 하고 있으니 엄마아빠가 저축도 할 수 있고 참 고맙다. 잘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잘 쓰자. 함께 여행가는 것도 좋고.”

주변 친구들이 수학, 영어 학원에 다니며 학교에서도 학원 숙제하느라 힘들다고 푸념하는 걸 자주 보다 보니 우리 아이들은 자기들도 학원에 보낼까봐 지레 겁을 먹고 있다.

간혹 집에서 불성실하게 공부하거나 하기 싫다고 떼를 쓰면

“그럼 학원 가서 공부하자. 일주일에 3번, 2시간씩 영어학원 가고, 수학도 그렇게 가면 되겠네.”

라고 엄포를 놓는다.

덥석 “아, 네, 그럴게요.”라고 할까봐 좀 긴장했는데, 아직까지는 이 엄포가 통했다.

학원에 다니면 학원 수강 시간만큼 수업을 듣고, 집에 와서 또 학원숙제를 해야하니 지금보다 공부 시간이 적어도 세 배는 늘 것이다. 게다가 학원 오갈 시간에 지금은 집에서 뒹굴 수도 있으니 집에서 스스로 문제집 푸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나도 동의하는 바다. 집에서 수학 2장은 길어봤자 30분, 영어도 30분이 안 걸린다. 그래, 일단 지금은 이 정도만 하자구!


어른이 짜준 계획표대로 살아가느라 허덕이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아낼 시간도, 의욕도 부족할 것 같다.

아이들이 원하는 걸 스스로 꾸준히 해본 경험이 있고, 마음껏 여유도 부려본 사람이면 좋겠다.

성실하게, 즐겁게 살다보면 너희 인생 진로도 찾고 독립할 날도 오겠지. 사랑한다.


<이 글을 읽고 난 큰아들이 하고 싶은 말이 많다기에 이 자리에 본인이 직접 덧붙입니다>


(큰아들)


1. 꾸준함: 얼마전부터 매일 매일 윗몸일으키기를 하더니 시작한지 벌써 몇달이 되었고 일기도 꾸준히(스스로) 잘쓴다.


2. 시를 잘쓰는 낭만 넘치는 큰아들


3. 운동신경: 격동초 스포츠클럽(피구부)에서 내야 공격수로 (맹)활약하고 있으며 1학년 겨울부터 해온 태권도를 지금까지 다니며 올해 6월 3품단 심사를 보러간다. 또한 2023년 10월 7일 품새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구경시켜주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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