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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사랑의 여름

모기(2)

by silvergenuine

어릴 때 언니랑 동네를 누비며 오디, 산딸기, 까마중 같은 걸 따먹는 걸 좋아했었다.

지금의 나라면 오디 한 움큼이야 금방 따겠지만, 어릴 적에는 한 움큼을 따는 데에도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언니와 오디를 밥 한 공기만큼 따와선 뭔가로 쿵쿵 찧고 짜며 오디 주스를 만들어보겠다고 애써보던 기억이 난다. 새까만 오디즙 몇 모금에 감질이 났더랜다.

열 살 무렵 6월의 어느 한 낮, 언니는 친구들이 좋아 놀러나가고 나 혼자 집 뒤 공터에 오디를 따러 갔다. 나뭇가지를 당겨가며 까만 오디를 골라따는 데에 몰입한 나는 어느새 모기 떼의 표적이 되어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스미는 햇살도 모기들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이것만 더 따고' 하며 오디를 따모으다 보니 어느새 종이컵 한 컵이 가득 찼다. 오디를 들고 집에 돌아오니 그제야 모기 물린 곳들이 가렵기 시작했다. 드러난 팔다리마다 수십군데 모기에 물려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그 꼴을 보고

"아이고, 아를 잡아놨네, 오디 그거 뭐라고, 오디 따러 가지 마라."

하고 야단을 치셨다. 모기에 물린 괴로움보다 엄마아빠 성화가 더 곤란스러웠다.

오디 그게 뭐라고, 모기의 맹공에 오기를 부리고 싶었던 건지, 그 얼마 뒤에 난 또 같은 장소에 오디를 따러 갔다. 역시나 또 수십 방을 물려 돌아왔고, 또 혼이 났다.


그렇게 모기에 대한 면역이 생긴건지 우리나

라 보통의 모기에게 물린 건 한두 시간의 가려움이 지나가면 이내 괜찮아진다. 그 한두 시간이 모기에 대한 원망과 저주, 가려움을 따라 마구 긁을 것인가, 스님처럼 관하며 견딜 것인가 하는 고민들로 평온하진 못하지만 말이다.


문제는 아이들이다. 피부가 민감한 둘째 강별이는 모기에 물리면 반응이 남다르다. 다섯 살 때 캠핑장에서 귀가 뻥튀기 떡뻥처럼 부푼 걸 보고 무슨 병에 걸린 줄 알고 응급실에 가야하나 호들갑을 떨었었다. 다행히 시간이 좀 지나 별 조치없이 가라앉는 걸 보고 모기에 물린 것 때문인 걸 알았다. 이제는 그 정도로 부풀지는 않지만 조심스런 마음이다.

막내 아기 꽃봄이는 아직 모기에게 제대로 물린 적은 없는 것 같다. 며칠 전 안방에 모기가 또 들어왔는데 이 모기가 양심은 있었는지 아기는 두고 엄마아빠만 물었다. 그래도 혹시나 아기도 물게 될까봐 불을 켜고 모기를 찾아보았지만 결국 검거에 실패, 아기모기장으로 아기만은 사수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사람들이 모여있을 때 유독 모기에게 더 잘 물리는 사람이 있곤 하다. 한 지인이 자기가 그런 사람이라며 아이들과 한 방에 자면 모기가 자기만 물어서 아이들은 무사히 잔다고 한다. 그런 자신의 남다름이 아이들을 위할 때는 기분이 괜찮은데, 같이 사는 남편이 "당신 덕분에 난 모기 안 물렸네."라고 말하는 모습에 성질이 확 났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옛 사람들의 효행 중에 '조문효도'라는 게 있다.

蚤(벼룩 조), 蚊(모기 문). 주무시는 부모님 옆에 자식이 맨몸으로 누워 벼룩과 모기를 유인하여 부모님은 편안히 주무시도록 하는 것이다. 지극한 효성이지만, 과연 그 효도를 받는 부모가 맘이 편했겠나 싶다. 내리사랑의 부모는 자식을 위해선 내가 대신 물리는 게 낫다는 마음이다. 그래도 내리받은 사랑을 늙은 부모님께 돌려드리려는 효심이 요즘 세상에 귀감이 된다.


오디 딴답시고 모기밥이 되어온 딸래미를 바라본 부모님 마음은 어떠셨을까? 지지리 말도 안 듣는 딸래미라 물려도 샘통이라고 생각 하셨을...리가 없다. "오디 그거 뭐라고" 하셨던 말씀 너머에 있는 그 마음을 이제야 헤아린다. 내 아이에게 모기 한 마리의 접근조차 허락하고 싶지 않은 부모가 되어서야 나의 부모님께 그런 몰골을 보여드렸던 내가 죄송스러워진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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