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꽃봄이가 78일 되던 날 낮잠으로 보채던 아이를 재울 겸 일찍 퇴근한 남편과 함께 유모차를 끌고 동네 도서관을 찾았다.
유모차에 아이를 재운 채로 자료실에서 책 좀 읽어볼까하고 폼을 잡았다. 그러나 이내 꼬물꼬물 깨려는 기미가 보여 큰소리로 울기 전에 얼른 짐을 챙겨 2층 로비로 나왔다.
남편이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난 대여한 책을 책소독기로 소독하기로 했다. 주어진 시간은 1분 남짓, 유모차의 아이를 어르며 기다리고 있는데 계단을 올라오시는 육십대 초반 즈음 되어보이는 젋은 할아버지를 포착했다. 왠지 우리를 주시하는 듯한 모습.
백일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다니면 지나가는 어르신들이 어여쁜 마음에 아기에 대해 이것저것 말씀을 건네시는 일이 잦다. 주로 "아기가 며칠 됐어요?"하고 물으실 때가 많은데, 100일을 미처 채우지 못한 일수를 솔직하게 공개하면 이내 "아이고, 백일도 안 된 애를 데리고 나왔어요?"하고 우려 섞인 반응을 돌려주실 때가 많았다. 그래서 대충 "3개월 차에요" 하고 얼버무려 대답하면 그냥 고개를 끄덕거리며 날짜 계산까지는 하지 않고 가시던 길을 가곤 하셨다.
어쨌거나 이 날 그 어르신을 보았을 때 우리에게 올 것 같은 직감을 느끼곤 유모차를 돌려 다른 방향으로 밀면서 아이를 어르는 척 했다. 그분의 동선대로라면 2층 로비에 있는 우리를 지나쳐 3층 계단으로 올라가고 계셨어야 했다. 그 시간을 계산하고 고개를 돌린 순간, 이미 그분이 내 바로 옆에 접근해 계셨던 것이다. 흠, 올 것이 왔군.
아니나 다를까,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질문을 건네셨다.
"아기가 며칠 됐어요?"
78일이라고 하면 잔소리 들을까봐 날짜를 살짝 부풀렸다.
"이제 80일 쯤 되었어요."
"그렇구나. 엄마, 아빠는 알아봐요?"
"당연히 알아보죠, 눈 마주치면 잘 웃어줘요."
"엄마, 아빠 보고 옹알이도 옹알옹알해요?"
"네, 엄마아빠 보고 웃어주고 옹알이도 잘 해요."
"아이고, 옹알옹알하면 정말 예쁘겠네."
속으로는 이야기가 언제 끝나나 생각하며 웃는 얼굴로 대화를 이어갔는데, 이분이 갑자기 웃옷 주머니를 주섬주섬 만지시는 거다.
'뭐지? 설마, 돈?'
전에도 아파트의 인사하고 지내는 이웃 어르신이 아기 손수건이라도 사라며 기어코 만 원짜리를 쥐여주고 지나가신 적도 있어서 그런 쪽으로 또 촉이 왔다.
'안 되는데... 처음 보는 분이 굳이 왜? 명함인가? 어디 아이 교육 관련 일이라도 하시는 분인가?'
차라리 명함이길 바라며 짧은 순간 혼자 머리를 굴리며 불안해했다.
그분이 지갑을 꺼내 여셨고, 거기서 꺼낸 것은 만 원도 명함도 아닌, 무려 오만 원 지폐였다. 이게 머선 일이고!
"자, 백일 선물이에요."
너무 당황해서 그 오만 원이 어쩌다 내 손에 있게 되었는지 지금은 기억도 안 난다. 내가 두 손으로 받은 건지, 아기 몸 위에 올려주신 것인지. 내 손에 들린 오만 원을 다시 그 분께 내밀며
"아니에요. 이걸 왜 주세요! 괜찮아요, 제발 도로 넣어두세요."
사양하며 돌려드리려다 바닥에 떨어뜨리기까지 했다. 다시 주워들고 계속 돌려드리려는데
"아기가 백일이 안 되어서 선물로 주는 거에요, 백일 지났으면 안 줬을 건데 백일 안 된 걸 알았으니 선물을 줘야지요. 괜찮으니깐 받아주세요"
난 사실 이걸 받고 싶은건가, 아닌가? 계속 사양하면 예의가 아닌 걸까?
어찌할 바를 모른 채로 그 돈을 받았고, 그분은 3층 계단으로 성큼성큼 올라가셨다. 상황 종료.
처음에 반쯤 닫힌 마음으로 그분을 대했던 내 태도가 죄송하면서 그분의 호의가 감사하고 얼떨떨했다. 그러면서 어쩐지 내 얼굴에는 웃음이 올라왔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남편을 만나 있었던 일을 전했다.
"여보, 이 돈 봐. 이거...블라블라블라..."
"뭐, 그래서 그냥 받았다고? 그걸 받으면 어떡해? 그분 부자야?"
"나도 모르지, 그냥 정말 주고 싶으셨나봐. 받으면서 생각했는데 우리가 직접 쓰진 못하겠고 우리 돈도 좀 보태서 아동관련 기부하면 좋을 것 같아"
"그래, 기부하면 되겠다. 그분 참 감사하네"
집으로 돌아와 그분에게 받은 만큼을 보태어 꽃봄이 이름으로 유니세프에 기부했다. 마음이 그제야 좀 편해졌다.
집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 꽃봄이는 귀한 늦둥이 셋째라고 주변 지인들에게서 축하와 선물도 많이 받았다. 우리가 주는 것보다 자꾸만 받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지인들에게는 앞으로 기회를 보아 감사한 마음을 돌려드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낯선 어른에게 받은 축하금은 그분에게 직접 되갚을 길이 없다. 그저 아기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하고 아껴주시는 그분의 마음을 다른 아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고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내가 아는 많은 가정은 자녀들에게 한없는 애정을 쏟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들이다. 그런데 뉴스에는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남들 모르게 학대를 당한 아이들이 자꾸만 나온다. 방임되고 학대당하는 아이들 때문에 관련 정책들이 나오면 '이럴 줄은 몰랐지?'라고 하는 듯 사각지대에 있던 또 다른 사건들이 드러난다. 출생신고, 예방접종관리, 초등학교 입학 시 소재 확인, 결석 원인 확인, 가정체험학습 중 아동신변안전 확인 의무, 아동학대신고의무자 교육 등 많은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구해주지 못한 아이들이 생긴다. 그리고 양육과 학대의 애매한 경계로 보이는 상황들을 주변인이 판단하고 개입하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다. 그리고 세계 곳곳의 상황 속에서 죽어가는 아이들.
한낱 개인인 사람들이 뉴스에 댓글을 단다. "어른들이 미안해." 라고.
우리 아기가 운다.
배가 고파서 울면 젖을 주고
잠이 와서 울면 안심시켜 재워주고
심심해서 울면 눈 마주쳐 말을 건넨다.
모든 아이들은 사랑 받아 마땅하다.
사랑받고 있다는 걸 온마음으로 느끼며 자라나기를.
낯선 어른이 우리 아기에게 건넨 선물이 사실은 세상 모든 아이를 향한 사랑임을 생각한다.
ps. 오늘 오전에 큰 아들이 현관문을 벌컥 열다 지나가는 어르신이 부딪칠 뻔 했다. 뒤따르던 나는 등짝을 때리며 "문 열 때 조심해야지!"하고 면박을 줬다. 아이가 투덜거렸다. 왜 때리냐고, 왜 몰아붙이냐고. 내 속에 천불이 났다. 반성 안 하냐고 쏘아붙였다. 아이는 아직도 억울해한다.
오후에 작은 아들은 복분자 음료를 먹다가 한 잔을 고스란히 거실 뽀로로 매트에 쏟았다. 아깝기도 하고, 닦아도 끈적할 것 같아 닦으면서 계속 열불이 났다. 한 번에 마셔야지 왜 옆에 뒀다가 쏟느냐고 화를 냈다. 나의 복식 발성이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사랑하는데 자애롭기가 왜 이리도 어려운지... 사랑받아 마땅한 아이들이란 글을 쓴 내 자신이 부끄러워 덧붙였다. 이럴 걸 왜 그렇게 화를 냈냐는 남편의 일침.